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노엘 Dec 11. 2020

고요하게 맑아지고 싶은 하루를 기억하며.

세네카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남밀양 IC에서 올려서 가면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20년 운전경력자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길치인 아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고속도로 진입 전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네비가 시키는 대로 조심히 잘 찾아가 볼게. 걱정 말고.”     


금요일 3년 차 독서모임 참관을 신청해놓고 대구 팔공산에 위치한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를 향해 길을 나섰다. 하늘은 어둑하니 금세 비나 눈이라도 뿌려줄 것처럼 잔뜩 흐렸다.

남밀양 IC까지는 차가 많이 밀렸다.  

    

“출근시간이 겹쳐서 그런가?”    

 

첫 참관을 늦게 도착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IC를 통과하자마자 내 안의 다른 내가 핸들을 잡은 듯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청도 새마을 휴게소가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손짓을 했지만 늦지 않겠다는 각오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신나게 속도를 높였다.


11월 초 빨갛게 익은 단풍잎이 찬란하게 빛나던 가을에 한번 다녀오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도착한 팔공산 입구에는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들이 한 대도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일등으로 도착한 것이 틀림이 없다.     

2,3층 모두 독서토론 공간인데 오늘은 2층에서 진행이 되었다.

이곳의 진행방식이 궁금해서 처음 참관을 온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슬렁거렸다.

 참관자인 나는 누군가가 비워둔 자리에 앉는 것이 원칙이겠다 싶어서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으니

 상냥하신 교수님께서 편히 앉으라고 앞자리를 권해 주신다.


3년 동안 보고지내 서로 정이들만큼 든 선생님들은 살가운 인사를 나누각자  드립해둔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자리에 착석을 하셨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는 삶의 연륜이 느껴졌다.


스토아 철학의 주창자인 세네카의 에세이를 읽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위대한 저서 1년 차, 2년 차 책들을 이것저것 읽어낼 때보다 3년 차이지만 에세이는 확실히 쉽게 읽혔고 빠르게 흡수되어 여운이 남는 문장들이 많았다. 같은 텍스트라도 집에서 혼자 읽을 때와 함께 읽 것을 이야기 나누며 다시 읽어보는 느낌은  새로운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로 많은 시간을 허송하는 만큼 인생의 길이는 햇수가 아니라 시간을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하느냐로 따져야 하며, 철학이야말로 모든 시대의 위대한 인물과 사귀고 과거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까닭에 짧은 인생도 길게 만들어 준다는 내용을 읽어 나갔다.


‘우리는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오. 인생은 충분히 길며, 잘 쓰기만 하면 우리의 수명은 가장 큰일을 해내기에도 넉넉하지요.’


‘우리가 사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삶이 아니라 그저 시간일 따름이지요.’


우리는  습관처럼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서  지낸다.  바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누가  물어보기도  전에  바쁜  티를  낸다.

가장 귀한 시간을 타인을 위해서는 생각도 없이 내어주고 수다로, 비방으로, 푸념으로 낭비해버린다. 하루가  무엇때문에 바빴는지도  기억하지도 못한채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어준 적이 있는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얼마나  지치고 힘들어하는지 자신이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를 느끼고 시간을 내준 적이 있는가?

교수님께서 질문하셨다.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생각해 내느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타인의 말들,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정작 내 안의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던 것, 그것이 우리들의 삶이었구나 하는 것을 각자가 침묵 속에 깨닫고 있었을것이라  짐작해 보았다.


누군가가 손을 들고 낭독을 한다.

낮고 부드러운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시오.

언제 그대에게 확고한 계획이 있었는지,

얼마나 적은 날들이 그대의 의도대로 지나갔는지,

언제 그대가 자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지,

언제 그대의 얼굴이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

언제 그대의 마음에 두려움이 없었는지,

그토록 긴 세월 동안 그대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대가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그대의 인생을 빼앗아갔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근거 없는 괴로움과 어리석은 즐거움과 탐욕스러운 욕망과 매력적인 교제가 앗아갔으며,

그대의 것 중에서 얼마나 적은 것이

남아 있는지 말이오.

그러면 그대는 때가 되기도 전에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오.     


낭독 소리에 집중해서 들은 까닭인지 연륜이 묻어나는 회원들의 목소리에

후회와 탄식의 신음소리가 마스 밖으로

배여 나오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볼 필요도 없었다.

가장 최근까지도 시간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러줄 것처럼 오늘 안되면 내일 하지. 오늘만 날인가. 오늘 일은 내일로 하자. 늘 내일이 있다는 것에 묘한 위로를 받고  합리화에  너그러웠던  나를 떠올려본다.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만 집중하고 살았온 나를

내가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참 열심히 살았다는 막연한 느낌이 아닌 구체적인 확고한 계획, 의도한 바를 두려움 없이 해내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모르게 죽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고전을 통한 인문학적 성찰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보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것에서 삶의 방향성을 찾는 것인데......

 부족함조차도 깨닫지 못했을 때를  더듬어 기억해본다.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었던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럽기만 하다. 지금도 부족함 투성이지만 이제는 나의 무지를 알고 있기에 조금씩 책을 읽고 숙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방향을 정해 보았다.


뿌연 개울물이 맑아지려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맑고 투명한 개울 바닥이 보일 때까지.


내 삶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초단위로 쪼개는 것도 모자라

하루 24시간을 원망할만큼  시간이  늘어나길  바랬다.

내 인생은  뿌연  개울물과  같았다.

내안의  내가 보이질  않았다.


이제는 맑아지고  싶다.

내 인생의 맑은 기운,

가만히  내버려두고 기다려보리라.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이전 18화 눈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담은 글 그리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