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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Jul 27. 2020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만의 색깔 옷을  갖춰 입는 것

죽음의 공포를 느낄 만큼 아팠던 기억이 마흔다섯 되던 해였던 걸로 기억된다.

나 아직은 젊은데

나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내 아이들은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데

정작 엄마인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이런 불안과 걱정이 뒤범벅이 되어 나는 살고 싶어 졌다. 

건강하게 잘 살고 싶어 졌다. 

살고 싶어 약을 먹고, 살고 싶어 병원을 다녔다.

수축기 혈압이 190을 찍고 고혈압 진단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퇴행성관절염으로 걷는 것이 힘들었고, 원인모를 알러지성 질환들로 여러 가지 증상들에 늘어나는 약들과 함께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졌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도 남았다.     

하루는 병원 문을 열고 나오는데 솜털처럼 가벼운 햇살이 나의 볼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햇살의 따사로움을 가늘게 뜬 실눈으로 바라보다가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 이대로 시름시름 아프다가 죽긴 싫어. 나 건강하게 살아갈래. 나답게 살아볼래. 이제 더 이상 누구를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살아보고 싶은 모습으로 한 번이라도 살아볼래. 내겐 더 이상 시간이 많이 없을 수도 있어.’     


결혼 후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미래를 고민하다가 결혼 7년 차에 전업주부에서 학원 원장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을 선택한 나는 보란 듯이 당당히 성공하고 싶었다. 그렇게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나를 희생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많았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식사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사치였다. 선생님들이 가끔은 안쓰러워하며 이야기했다. ‘제발 앉아서 식사 좀 하세요.’ 나는 점심시간에 앉아서 밥을 먹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서 차를 한잔하는 것도 시간적 낭비라고 생각했다. 점심을 거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할 때는 서서 급하게 끼니를 때우고는 했었다. 몸은 하나인데 해야 할 일은 많았고 나는 시곗바늘의 초침만큼 바쁘게만 살았다. 아침 6시에 눈을 떠서 온전히 몸져누울 수 있는 밤 12시까지 헛되이 보내는 시간은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내게는 불을 끄고 고요히 누울 수 있는 취침 전 1~2분의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다 보니 내가 나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고 누군가가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온전히 일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내 인생 최고의 사명이자 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난 점점 아픔이 커져가고 있었다. 모르는 체했지만 몸은 계속 신호를 보냈다. 못 본채 외면하려 했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피로가 피로를 부르고 아픔은 아픔을 낳았다.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자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내 몸을 돌보지 못한 벌을 받는구나 라고.......

약을 먹으면 금방 나을 것 같았는데 평생을 약을 먹고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대략 난감했다. 이렇게 나의 인생은 시들어가는 걸까?


어느 날 곰곰이 약물치료가 아닌 대체의학에 대해 알아보던 중 내 몸이 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위로하며 지금까지 잘 살아왔지만 이제는 아프지 말고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노라고 내 마음과 약속을 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들을 가져보았다. 아들이 쓰다 남긴 받아쓰기 노트 한 면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의 강점들을 번호를 매겨가며 생각나는 대로 마구마구 적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안 나다가 생각이 나서 쓰고 나면 웃기기도 하고 왜 이렇게 생각이 막혔을까 화가 나기도 했다. 이것저것 아무 말대 잔치처럼 빈칸 채워 넣기 식으로 적어 내려가다 보니 하나의 단어가 연결고리가 되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데리고 왔다.     

내가 써놓은 글자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졌다.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했었구나.

내가 이런 것들을 하고 싶어 했구나.

나에게 이런 좋은 강점들이 있었구나.

모든 것이 과거형처럼 그랬었구나로 끝나는 생각들 속에서 나는 왜 이런 것들을 기억 속에 묻어두고만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아프고 병들어있는 내 모습이 회색빛 도시처럼 어둡게만 느껴졌다. 두 아들의 엄마, 학원의 원장, 한 남자의 아내, 한집안의 며느리, 그 어디에도 내 이름만으로 불려지는 곳은 하나도 없는 나. 나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이 들었다. 노트 위의 글자들이 알록달록 색깔 옷이 되어서 내게 입어보라고 유혹을 했다. 그 색깔 옷을 몸에 두르고 춤을 추듯 가볍게 움직이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니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내가 다시 살아나 건강한 모습, 생기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 듯하였다. 내 마음속의 숨져둔 색깔들을 끄집어내어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 옷을 만들어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쯤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나답게 한 번만 살아보자. 

내 모습으로 내 이름으로 한 번만 살아보자. 

더 늦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써버린 돈은 벌면 되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내게 맞는 색깔 옷을 찾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아이들에 대한 기대로 아이들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간섭하던 엄마의 마음을 내려놓았다.

내가 도와주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면 제대로 교육이 안 될 것만 같아 불안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것은 사랑을 넘어선 나의 욕심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자 아이들도 나도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잔소리가 줄고 웃을 수 있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기다리는 마음도 생겨났다. 두려웠지만 다른 세상을 열어주고자 큰 아들은 자사고 입학을, 둘째 아들은 유학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투자하던 시간이 남았다. 물론 아이들과 충분히 고민하고 상의해서 결정한 진로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결정의 혜택은 내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힘든 결정 뒤에 얻을 수 있었던 나의 혜택은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된 것이었다.

저녁시간 아이들을 돌보던 시간들을 내 몸을 돌보는 시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좋은 것은 아이들에게 모두 주고 싶었던 엄마는 이제 좋은 것은 내가 먼저 챙기는 엄마가 되었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하자 건강은 조금씩 회복되어 병원 가는 횟수가 뜸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약 없이도 지내는 건강한 몸이 되었다. 

내적 성장을 위한 공부를 위해 다양한 교육의 혜택을 나에게 부여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싶어 대학원 진학도 하면서 주경야독, 만학의 즐거움을 충분히 즐기게 되었다. 중년의 나이에 느리게 할 수 있는 공부야말로 정말 행복한 지적 활동임을 깨달았다.

삶의 행복을 더해줄 수 있는 취미활동으로 합창단 활동도 참여하게 되었다.

 잔잔히 노래만 부르는 활동이 아니라 뮤지컬의 춤과 노래를 병행한 쇼 콰이어 활동이 삶의 활력을 채워주었다. 내 삶의 비워진 것들이 하나하나 메꿔져 가는 기분이 들자 조금 더 용기 내어 순례자의 길에 도전하게 되었다. 800km를 완주하고 돌아오던 날 나를 마중 나온 남편이 건넨 장미꽃 한 송이는 그 어떤 우승컵보다 더 큰 영광의 선물이었고 나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고 돌아왔다. 그리고 글을 썼다. 절반의 인생을 살아온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 내 삶을 노래한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자녀와 부모의 동반성장'   ' 

지독하게 아팠던 경험 속에서 나는 나를 바로 세우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잃어버린 나만의 색깔을 찾고 싶어 하나하나 용기 있게 도전하고 해내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제 무채색에서 나만의 색깔 옷을 입은 내가 되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그것은 크고 작은 도전이었고

살아야겠다는 희망이었다.

아직 남은 절반의 인생 속에서 이제는 무채색이 아닌 나만의 색깔 옷을 입고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 생각해보며 브런치 작가 공모 3기에 도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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