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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Jul 26. 2020

나의 전생은 달팽이였을까?

며칠째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늦은 아침 식사를 마쳤다.

음악을 틀어놓고 싱크대 앞에 서서 고무장갑을 낀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주방 창문으로 저 멀리 야트막한 산의 푸르른 공기가 시원하게 뺨을 스친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해보았다.

가슴 깊숙이 오래 머금고 싶은 바람이다. 창밖에는 언제 쏟아질지 모를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소나기가 오려나?’ 오늘 오후는 외출하지 말고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느긋하게 책이나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하이틴 로맨스를 좋아했던 중학생 시절부터 유난히 잿빛 하늘의 구름 낀 날씨를 좋아했다. 혹시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햇빛 쨍한 날씨보다 비가 내리기 전 어둑해진 하늘의 구름 낀 날씨를 더 많이 좋아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춘기 그 시절 비가 내리는 날이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창밖 비 내리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의 정서는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도 이어졌다. 창 넓은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다양한 우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비 오는 날 예쁜 우산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첫 아르바이트 때 받은 돈으로 양산도 아닌 우산을 백화점에서 고르고 골라 사서 쓰고 다녔으니 말이다. 대학시절 내가 즐겨 다니던 지역의 카페들은 모조리 투어를 하며 성냥갑을 모으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또 가고 싶은 곳, 그중에서도 창이 넓고 밖을 바라보기 좋은 곳은 언제나 재방문 1순위였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친구들과 어김없이 찾아가고는 했었다.    


 사람은 에너지 파동이 비슷한 사람끼리 끌어당긴다고 한다.

나는 내 정서에 꼭 맞는 사람을 만났다. 비가 오면 함께 좋아해 주는 사람, 같이 창이 넓은 카페를 찾아가 커피 한 잔 마셔줄 수 있는 사람, 지금의 내 남편이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어느 광고의 카피 문구처럼 그는 나에게 오랜 세월 길들여졌나 보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소확행을 가지고 있다. 비 오는 날 카페 투어 대신 커피 향을 집안에서 누리고 싶다는 욕심에 오래전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원두의 구분법, 로스팅 방법 등 이론적인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날 이후 최고급 카페의 커피 향을 집안에서 즐기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이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그리고 핸드밀에 게이샤 원두를 갈아둔다. 거기까지가 남편의 역할, 그다음은 내가 커피를 내린다. 갈색 드립필터를 뜨거운 물로 씻어내고 곱게 갈아둔 원두에 둥글게 원을 그리며 정성껏 물줄기를 내린다. 커피는 향기부터 마신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집안 가득 커피 향이 가득하다. 그날의 기분에 맞는 커피잔을 선택하고 한잔 가득 모닝커피를 즐기는 아침은 눈뜬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아라비카 원두의 향은 밤새 잠들어있던 장기와 영혼까지도 깨어나게 해 준다. 중년을 향해가는 부부는 비 오는 날이면 아파트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느리게 느리게 드립을 하고 느리게 느리게 커피를 마신다.

비 오는 날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치유의 힘을 가진다.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수용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잿빛 하늘의 비구름 가득한 날 마시는 커피 한 모금, 나는 평화를 마신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는 비가 내렸던 기억이 참 많다.

평생의 단 한번 결혼식 날도 비가 내렸다. 3년 동안 가뭄이 심해서 경주 보문단지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논바닥이 갈라지듯 메말라 있던 시점이라 결혼식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도 그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혼 후 처음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던 날도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그 말이 궂은 날씨에 이사하는 것에 대한 위로의 말이라 생각은 하지만 그냥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 위로의 말처럼 잘 살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랬다. 아이들과 여름휴가를 갈 때도 태풍이 올라오는 날 휴가를 떠났다. 웬만한 부모였다면 그냥 휴가를 미루었을 법도 한데 비를 좋아하는 부모는 이 또한 추억이니 예정대로 떠나자고 뜻을 모았다. 강원도와 점점 가까워지고 계곡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계곡물이 서서 내려온다는 말, 동해의 집채만 한 파도가 해변을 집어삼킨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한계령, 미시령 고개를 넘고 나면 우리가 지나왔던 산길은 모두 산사태에 폐쇄가 되었다는 속보를 들어야만 했다. 리조트의 전원이 차단되고 주차장 옆 식수된 나무가 쓰러져 차를 덮쳤다. 어린아이들을 안고 촛불로 지새운 밤을 경험했다. 다음날 들린 삼척시내에서는 경량 차들이 떠내려 와 뒤집어진 채 도로를 막고 있었고 소방관들이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수해현장을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휴가의 즐거움은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에게 정신적 편안함과 설렘을 주었던 빗물이 우리 인간에게 고통과 두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경험한 것이다. 신은 편안함에 익숙해져 가는 인간들을 깨어있게 하기 위해 고통을 주시고 자연을 통해 겸손을 가르쳐 주시는 듯했다.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빗속에서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 앞 하천의 철교가 사라져 버렸다. 2002년 태풍 루사의 추억이다. 

    

그에 반해 내 생애 잊지 못할 가장 행복한 비에 대한 추억은 한 달 동안 걸었던 산티아고 길에서의 체험이다. 인생이 막연히 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다. 

건강하게 열심히 살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새롭게 작성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 길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목표 설정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정보도 계획도 없이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부터 끊어놓고 남편을 설득했다. 일 년 중 내 인생의 비수기가 언제일까를 고민하다 보니 1월로 결정이 났고 12월 31일 한국을 떠나서 2018년 1월 1일 한 해의 시작을 순례자의 길 위에서 맞이했다. 1월의 스페인 북쪽 길은 우기에 속해서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태어나서 판초를 처음 입어 보았다. 6킬로의 배낭과 진흙길에 무거워진 신발, 그리고 판초를 입고 걷는 빗속에서의 행군은 낯선 고통이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여행후기를 살펴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진이 ‘용서의 언덕’이다. 산티아고 길의 3대 명소인 이 곳을 오르면서 순례자들이 바라는 공통된 마음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마음속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과 자신도 용서받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자갈길을 묵묵히 걸어서 올라간다. 출발점인 생장에서 4일 차에 걸을 수 있으며 팜플로나에서 레이나로 넘어가는 25km 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팜플로나 도시를 떠날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급기야 바람까지 동반해서 하염없이 내렸다.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용서의 언덕을 무사히 넘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새벽 일찍 발걸음을 옮겼다. 도시를 벗어나자 포도밭이 이어졌다. 1월의 앙상한 포도나무들은 두 팔 벌려 빗물을 받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순례 길은 흙탕물이 진흙과 함께 이리저리 흐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물웅덩이를 피해 조심조심 걸음을 걷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배낭을 멘 등줄기에는 땀이 흥건했고 허리를 펴기 위해 등을 곧게 펴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런데 그 느낌이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을 만큼 평화로움과 행복으로 느껴졌다.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즐겼다.

그리고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 한 줄기.     


‘나는 살아 있어. 

나는 살아 있어.

내가 살아 있어서 너무 좋아.

그리고 살아갈 거야.

이 느낌처럼 행복하게 잘 살아갈 거야.‘    

 

그랬다. 

빗물에 넘어지지 않고 비에 젖지 않기 위해 바닥만 보고 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빗물과 함께 내 얼굴에 내 온몸에 전율처럼 전해져 왔다. 너는 살아있고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것이라고 빗물이 나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비를 맞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한국에서는 비를 피하려고만 했었지 맞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빗속에서의 깨달음으로 그 힘들다는 구간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었고 나는 행복했다. 고통이 주는 행복이었다. 25km 구간의 끝 지점에서 비는 그쳐갔고 지평선 너머 커다랗게 떠있는 선물 같은 무지개를 만났다. 내가 빗속을 걷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축복 같은 무지개를 선물로 만난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비를 피하려고만 하지 맞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현실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길 위에서 느낀 한 가지 깨달음을 얻고부터 나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는 삶 속에서 우연처럼 만나게 되는 고통이다. 그 비를 피하려고만 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온몸으로 맞았을 때 더 큰 성장과 행복이 내 안에 걸어 들어옴을 느꼈다. 삶 속에서 부딪치는 고통의 순간들이 아프기도 하고 무작정 피하고만 싶을 때가 많았다. 이 고통이 왜 나에게만 주어지는 걸까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주어진 고통을 원망하고 아파하기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쳐 보리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더 크게 성장하고 채워지는 나를 만나리라.    

 

1,450km를 걷고 온 배우 심혜진 씨가 길을 걷기 전과 걷고 난 후의 달라진 점을 사람들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 순례자의 길을 걷고 온 후 삶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달라진 것은 제가 남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졌다는 것입니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걸었던 나의 완주 후 깨달음을 누군가가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는 것이라고. 

이왕이면 행복하게.

이왕이면 온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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