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노엘 Jan 06. 2024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

펜을 들지 못했다. 3년 정도.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바빠서라는 진부한 핑계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시간이 많았고 여가가 많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짧은 글 한 줄을 쓰지 못하고 3년이란 긴 시간을 지냈을까.


오랜 세월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남은 위대한 책들을 만났다. 바로 고전이다.

내가 읽은 책들은 서양 인문고전들이다. 평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읽고 싶어 하지만 도전하기 두려워하는 책들이다. 일반 도서와 다르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만 책장을 펼칠 수가 있다. 나도 그랬다. 거대한 산을 눈앞에 두고 심호흡을 가다듬듯 그렇게 의연한 자세로 마주했다. 마음속에 걱정이 가득했지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고전의 숲 앞에서 나는 작은 여행자에 불과했다. 이제는 그 길을 걷는데 내 모든 집중력과 에너지를 써야만 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숲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후회하냐고. 그건 절대 아니다. 아니 감사하다. 그 길을 걷지 않았다면 평생 두려워만 하고 발도 못 디디고 이 삶을 끝냈을 텐데 두렵지만 용기 내었던 것에 감사하다. 남들이 쉽게 걷지 못하는 고전의 숲에는 손길이 닿지 않는 원림의 풀들이 가득했다. 발걸음을 옮기며 이제는 주변을 돌아볼 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을 때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감동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때론 가슴이 떨리고 숨이 막힐 만큼 멋진 문장들을 만날 때는 발걸음을 멈추고 온몸으로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소중한 문장 하나가 아침 햇살이 되어 나의 온몸을 휘감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거칠게 다가오는 파도처럼 내 머리 위를 덮쳤다. 그럴 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꿈꾸듯 생각 없이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라 많이 부끄러웠다. 고전의 숲에 깊이 들어갈수록 놀라운 비경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지혜는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며 스스로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 앞에 보여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작품이 원전 번역본이 70여 작품, 참고도서가 100여 권.

눈 떠서 일상을 챙기는 시간 외에는 거의 책과 함께 살았다. 그렇게 고전의 숲을 헤매며 보고 느끼며 행복하기도 했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내가 글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의 산물이고 교만한 행동인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위대한 책들의 거대한 울림 앞에서 감히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한없이 작았고 보잘것없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원래 작았던 자존감이 더 작아지고 움츠러들어 소멸 직전까지 간 것 같았다. 이 일을 어쩌나.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생각여행을 잠시 다녀왔다. 고전 밖의 세상을 잠시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위대한 책들의 영웅들과 위인들도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고전의 숲에서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숲을 이루었지만 그 시작이 없었다면 숲이 존재했을까. 경이로운 고전의 세계도 시작은 작은 나무, 풀 한 포기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최근에 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마찬가지다. 황제의 개인 기록이지만 걸러지지 않은 생각의 편린들을 스스로 쏟아내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그분의 생각을 단 한 줄이라고 읽을 수 있었을까. 갑자기 주저앉은 자존감 속에서 작은 용기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시작은 조심스럽게 과정은 꾸준히 글을 써봐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3년 동안 철저하게 비워내고 소중한 문장들만 채우려 노력했던 내 머릿속을 이제는 흔들어 깨워야겠다. 그리고 천천히 담아둔 지혜들에 내 생각을 보태어 글을 써야겠다. 비록 더딘 걸음의 글이지만 자신감 있게 당당히 걷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시작이 반이라는 말, 그 말이 주는 용기에 발걸음을 옮긴다. 써 보자.

작가의 이전글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