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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eyview Mar 03. 2020

버려짐, 실존하는 주체가 되기 위하여

영화 <roma> 리뷰

70년대 멕시코시티의 한 마을 콜로니아 로마에 두 버려짐이 교차한다. 버려짐의 시기가 언제냐에 따라 백인 중산층 주부와 원주민 보모의 상황은 확연히 달라졌다.

클레오는 엄마가 되는 것과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모두를 '택'할 수 없었다. 의무와 책임만이 떠넘겨진 채로 산모로서의 노동과 보모로서의 노동이라는 이중의 사슬에 얽매인다. 고맙다고 해야할까. 아기는 떠나줬고, 클레오는 얽히고설킨 고통의 감정을 처연히 내뱉는다. '그 아기를 원치 않았'노라고. 이중의 억압에서 차마 내뱉을 수 없었던 그 반기적 언어를 울부짖으며 게워낸다. 영화에서 이 대사는 클레오의 첫 '의지'의 언어였다. 이 언어는 주체임을 박탈당했던 존재가, 우연히 주체가 되어 터져나온 기침처럼 들렸다. 그는 이제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아기의 죽음은 엄마의 죽음을 의미했고, 동시에 클레오의 생을 의미했다.

한편, 소피아는 자유를 찾아 떠난 안토니오의 몫까지 떠안으며 부모로서의 책임을 무겁게 짊어진다. 가정에 묶여 있던 소피아는 배우자의 변심으로 인해 사회로 떠밀려진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 여성은 이제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되어야 했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노동, 자녀를 애정과 관심으로 키우기 위한 노동. 클레오가 짊어진 이중의 노동이 해소되는 동시에, 소피아의 이중적 노동이 발생하지만, 영화는 이를 그리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조를 이루는 두 버려짐의 연대를 예측하게 함으로써 말이다.


영화 내내 변할 것 같지 않던 카메라워크는 말미에서야 변화를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기본적으로 클레오의 시점을 그려내는 카메라는, 어느 시공간에서든 수평을 유지한다. 흔들림 없이 평형을 유지하던 카메라는, 유산 후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클레오가 자신의 일상을 되찾는 장면에서 수직 상승한다. 인트로에서 마당 바닥을 청소하며 개똥을 치우던 클레오가, 말미에서는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마치 클레오의 무겁고 낮았던 삶이 한결 가볍게 날아오르는 듯하다.

소피아와 클레오는 우연히, 내던져졌다. 남편에게서, 그리고 아기에게서. 버려진 그들은 실존하는 주체가 되었고, 본질을 뚫고 나온 이 실존의 존재들은 연대를 아로새기며 일상의 억압을 견고히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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