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가 해주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공동의 창작, 공동의 감상. 영화는 누가 뭐래도 사회적 예술이다. 인간과 인간의 연결이, 영화 제작 과정 안에 들어가 있고 영화의 생명력이 부여되는 과정에도 낱낱이 서려 있다.
그래서 <69세>는 소중하다. 언제부턴가 영화는 대사회적 발언이 되어야한다는 당위 속에, 본연의 것들을 잊은 채 온갖 작위성에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인지를 판가름하기 위하여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극장을 찾는다. 분주한 일상에 젖어 발견하지 못한, 실재하는 예외들을 마주하기 위함이다.
2. 어떤 장면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단연 예수정 배우의 손등을 비추는 장면.
효정(예수정 분)의 앙상한 손뼈 마디마디. 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주름진 살가죽.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자신의 인생을 끝낼 거냐고 다그치는 가해자의 아이러니한 발언에, 피해자로서의 효정은 '인생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고 답한다.
사건이 끝날지라도 생은 종결되지 않는다. 생이 지속되는 한, 사건의 여파 또한 사그라지지 않는다. '끝'을 간단히 여기는 우리에게, '말미'는 하루아침, 혹은 눈깜짝할 새 정도로 인식된다. 그러나 어쩌면 말미는 지독할 정도로 길고 지난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청춘과 절정이 짧아서 찬란한 것이라면, '청춘 이후'와 '절정 뒤'의 시간들은 끔찍이도 지리하다.
우리의 상상력은 절정에서 멈추어진다. 하향하여 마침내는 섞갈리고마는 시공간들은 어떻게 상상될 수 있을까. 효정은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에서 매듭지어지는 객체가 아니라, 이후 재생으로서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주체이다.
'이미 그 고통을 모두 겪고 살아남았음을 되새기'는 존재. 오드리 로드의 소중한 언어가 여기, 69세 효정으로써 구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