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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eyview Sep 05. 2020

'살아냄'을 아로새기며

배삼식 희곡 <화전가> 리뷰

1. 어지럽기만 하던 난시 안경이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이제 웬만한 활자들은 안경이 모아준 선명한 초점에 의지해 의미화되고 있다.

읽은 지 열 쪽 남짓, 140쪽짜리 희곡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짧은 분량. 벌써부터 눈물이 동공에 영글어버렸다. 안경에 맺히는 눈물 한두방울을, 페이지를 넘길 수록 감당할 수 없어, 초점 흐려진 흐릿한 시야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가며 읽어냈다.


2. 두 숨에 걸쳐 읽어낸 그들의 신산. 밀도 대신 농도를 택한 작가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백 살 먹은 나무는 아흔아홉 해의 죽음 위에 한 해의 삶을 살포시 얹어 놓고 있습니다. 얇은 피막 같은 그 삶도 지금은 동면 중입니다만, 나무는 또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겠지요. 지나간 죽음들을 가득 끌어안고 서서."

<1945>부터 배삼식 작가의 희곡을 무대로 접했다. 역사가 그리지 않은 서발턴들의 모습. 살갗을 지나간 공기에 아무도 그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기에 재현되지 않았고, 재현되지 않았기에 다음의 시야에는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그 숱한 '낱낱의' 서사.

저물어가는 생을 상기하는 씨, 권씨, 독골할매의 언어를 관통하는 단어. '시절'과 '팔자'만으로도 그네들의 생의 역사가 어떻게 얽어져왔는지 짐작이 가능해진다. 한국전쟁을 두 달 앞둔 시점, 봉아의 "맹년 봄에 또 가자"던 화전놀이는 반복되지 못할 것이다. 장림댁의 "한 미칠 싰다가 금방 오겠니더"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것이다. 월북한 남편에게 "가가 그 인간 귓방매이 한 대 올리뿌고, 고만에 갈라 설란다"라는 금실의 원망 섞인 소망 또한 무력해질 것이다.

김씨와 권씨와 독골할매의 지난 시간들처럼, '시절'은 녹록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팔자'라 여길 지도 모른다. '살아감'을 '살아냄'으로 아로새기며.


3. "빌것도 없는 인새이 와 이래 힘드"는지. "아름다운 것은 늘 안타깝고, 오직 이 안타까움만이 영영 돌고 돌아오는 것"은 왜인지.

아름다워서 서글픈 연극 <화전가>는 결국 폐막일을 채우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전염병이 앗아가는 것은 생때같은 목숨들뿐이 아니었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더욱 서글퍼진다. 무대를 준비한 마음들이 너무 애틋하게만 여겨지기에. 작가의 말처럼 '아름다운 것은 늘 안타깝고 오직 이 안타까움만이 영영 돌고 돌아오는 것'이니. 책장을 덮으며 오랜 시간 눈물을 쏟아낸 것은 이 처연한 눈부심을 간직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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