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젤 따로국밥이었을 때

우로 3보, 유턴, 직진... 이제 알겠지!

by 이작가야

홍 집사(남편)가 한참 술을 많이 먹을 때가 있었다.

물론 직장생활과 무관하지 않으니 잔소리는 잔소리로 끝날수밖에 없다.

덜 마신다고 정신을 바짝 차린 다고 약속을 해도 소용없다.

본인이 이기지 못하면 끝을 맺을 수 있어야 하는데 본인의 의지도 약할뿐더러

홍 집사를 주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한다.


"아니 노래도 못하고 노래방은 더 안 좋아하는데 굳이 노래방까지 갈건 뭐냐고~"

"나는 안 가고 싶다고... 가면 노래도 안 하고 분명 잘 거라고 해도 가서 자더라도 같이

가자니 어째..."


나도 안다. 놀기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는 나는 가끔 노래방을 갈 일이 있으면 홍 집사 말대로

노래도 안 하고 잘 놀 줄도 모르는데 그냥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그냥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한편으론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지만 표정 관리하고 단속을 한다.

"암튼 앞으로 또 한 번 누구 손에 끌려서 집에 오면 알아서 해! 삼세판 알지?"

"넵!"





어쩌다 동료직원이 홍 집사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라도 하면 어찌나 미안하고 민망하던지...



"아유... 어떻게요 죄송해서요. 민폐네요 민폐 ㅠㅠㅠ 차도 한잔 못하시고 그냥 가셔서..."

"아아아 아닙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똑같이 술 먹고 똑같이 피곤한데 누구는 떡실신이 되고 누구는 떡실신을 집까지 데려다주어야 하고

그 아내는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고 그 사실을 알면 또 얼마나 속이 상할까 생각하니 속이 이만저만

상하는 게 아니다.


철석같이 약속을 한 홍 집사는 다행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술자리 끝까지는 가도 떡실신은 안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진다.


아침에 나간 사람이 들어와야 잠을 자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겠지 하고 잘 수 도 있지만 그래도 들어와야 맘이 놓인다.

야근에 회식에 술에 쩔어 들어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에 나가니 몸은 얼마나 힘들 것이며

한 집안의 가장이란 게 뭔지 마음이 짠하다.





돌아서면 짠하고 보면 열 받고 할 때가 있다.

"오늘 늦을 것 같은데 시골에서 동창이 올라와서 수원까지 가야 할 것 같아."

"왜 수원까지?"

"거기가 중간 지점이라서."

벌써 걱정이 된다. 수원에서 일산까지 어떻게 올 것인지 말이다.

"정신 챙겨서 잘 먹고 아예 택시 타고 와. 밤에 갈아타고 어쩌고 잠이라도 들면 큰일이야."

"알았어."


밤 12시가 다 돼가는데 소식이 없다.

그때만 해도 문자가 전부였는데 술이 들어갔으니 문자를 볼리도 없다.

소파에서 졸다 깨다 졸다 깨다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여보 나야."

"알아.ㅋ 어디?"

"집에 다와가 걱정 마슈!"

"알았어 조심해서 오슝."


시간이 늦었으니 1층 현관에 내려가 본다.

내려간 지 얼마 안 되어 곧 택시 한 대가 현관 앞에서 정지한다.

홍 집사가 내리는데 택시기사님이 홍 집사를 부른다.

"손님... 요금 주셔야죠!"

무슨 일인가 택시로 가 본다.

요금을 안 내고 내린다는 말 같은데...

조금 떨어져 보기만 한다.

홍 집사가 요금을 내자 택시는 부릉부릉 줄행랑을 친다.


순간 쏴하는 느낌...

'아차~ 택시 넘버를 보는 건데...'

나의 예상은 딱 들어맞았다.

다음날 확인해보니 홍 집사 친구가 밥값을 홍 집사가 냈으니 택시비를 기사님께 줬단다.

택시에서 깜박 잠이 든 홍 집사가 어리 하게 잠을 깨니 훌러덩 택시비를 이중으로 받아먹은 거다.

'에휴ㅠ'

수원에서 일산이니... 택시비가...




술이 해결책이 아니지만 술자리가 해결책이 될 수는 있다.

좀 편한 자리를 통해 대화를 하고 때론 타협도 하고 때론 비즈니스도 할 수 있다.


술자리에 홍 집사가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은 그의 유머감각 때문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던 안 마시던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으니 늘 사람들이 그를 찾는다.


약속도 없고 회식도 없다더니 갑자기 약속이 생겼단다.

그러려니 한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TV를 보다가 바람이 시원해 베란다로 나간다.

밤공기가 상쾌하다.




전화벨이 울린다.

홍 집사 전화다.

"여보 나야."

홍 집사 단골 멘트다.


'여보 나야.'


"엉! 어디야?"

코맹맹이 소리에 살짝 혀가 말렸다.

"여기가 어딜까요?"

"그르게 어딜까요?"

"집 앞인데?"

"집 앞?"

전화기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보니...


이런!


한 남자가 제자리에서 발은 땅에 붙은 채 앞뒤로 살짝살짝 움직인다.

계속 제자리다.

홍 집사다.


'어째 한동안 모범생이다~~~' 했다.


"내 말 잘 들엇!"

"넵!"

"우로 삼보!"

홍 집사가 우로 삼보 움직인다.

"유턴 ㅋㅋㅋ"

유턴을 한 홍 집사.

"이제 보이지 우리 집 1층 현관!"

"그르네 ㅋㅋㅋ 나도 알아~ 당신 심심할까 봐 장난친 거야~"

"뭐래니? 시꺼! 직진!"

"직진 OK!"


어이구 ㅋㅋㅋ

집에 들어온 상태를 보니 장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생각이 난다.

내가 생각해도 푸훕 웃음이 난다.


"우로 삼보, 유턴, 직진!"




아이가 어릴 때 맞벌이 부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쟁이다.

그나마 친정엄마가 가까이 사셔서 큰 도움을 받았지만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홍 집사는 일에 치이고 술에 치이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나는 키 작은 홍 집사를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부자는 아니지만 결혼해서 돈 걱정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내가 돈걱정을 하게 하질 않은 믿음직한 남편이다.


둘 다 퇴직을 한 지금 소주 한잔을 나누며 웃고 떠들 수 있음은 젊은 시절 아주 잠깐이었지만...

따로국밥으로 바빴을 때도 서로를 든든하게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여보~ 우리 참 열심히 살았네...

아들 어릴 때 서로 얼굴 볼 새도 없이 아침저녁으로 뛰어다녔으니...

우리가 그나마 그때 제일 따로국밥이었네... 그렇게 바쁠 때도 있었어 그취?"

"그러게..."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혹 집을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맬지라도

서로에게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래도 잘 살아가는 게 아닐까...





ps: 작가님들 오늘 내일 바쁘실듯 하여 혹

댓글 쓰실 시간 뺏고싶지 않아 댓글 허용 off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화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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