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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 Oct 10. 2024

팝업 권하는 사회

성수 | 걸으며 생각한 것들



유독 길었던 더위가 금세 꺾이고 옷차림이 무거워진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들며 비로소 가을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짧은 계절을 만끽하기 위해 나들이를 나선다. 길거리에도 활기가 돌면서 삼삼오오 캐리어를 들고 움직이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더욱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업무 중 만나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들어보면 서울에서 꼭 들르는 관광지는 이제 단연 성수인 듯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층에게 힙한 동네 정도로만 생각되던 성수가 대표적 관광지가 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요새 성수에 가면 과거 신촌이나 홍대입구와 같은 젊은이들의 성지에 방문하던 느낌이 든다. 잘 닦인 거리에 기존에 있던 공장, 공방의 느낌을 테마로 한 벽돌건물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어딜 가도 줄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일상적이 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서울의 전통적인 번화가들이 코로나 유행을 기점으로 힘을 잃으면서, 대안으로 성수, 을지로, 문래 등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특색 있는 동네에 재능과 자본이 몰려들며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미관을 만들어냈고, 그 모습은 다시 SNS의 바람을 타고 젊은 층을 매료시켰다. 그중에서도 성수는 인근의 서울숲, 건대입구와 시너지를 내며 그 자체가 브랜드화되어 독보적으로 떠올랐다.



지금 성수는 팝업의 도시다. 어느 순간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팝업스토어는 이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또 성수로 몰려들어 팝업스토어는 성수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같은 공간에도 매주 다른 팝업스토어가 들어서고, 그때마다 예외 없이 사람이 가득 차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소비자는 특정 브랜드, 캐릭터, 셀러브리티에 대한 관심과 충성도를 표현하는 용도로, 또 같은 공간에서 즐기는 새로운 경험의 차원으로 팝업스토어를 방문한다.


팝업의 시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디어도 숏폼이 대세, 글도 X와 스레드로 대변되는 짧은 글이 인기이고, 대중가요조차도 2분대 길이로 점점 짧아지는 것을 보면 요새 사람들은 확실히 짧고 빠른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과연 상점마저 일회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전통적 관점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지루한 것을 못 견뎌하는 현대인. 야구팬 개인이 촬영한 치어리더의 응원 영상이 '삐끼삐끼 춤'으로 바이럴이 되어 수 일만에 전국을 휩쓸고 공중파 방송에 소개되었다가, 전 세계적으로 퍼진다. 하지만 모두가 그 춤을 알게 되면 이내 흥미를 잃고, 또 다른 컨텐츠를 찾는다. 급변하는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팝업스토어라는 형태는 분명 합리적이다. 게다가 정해진 기간만 연다는 희소성의 가치를 더한다면,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젊은 층에게는 최고의 선택지가 된다. 유행을 따르지만 또 특별해지고자 하는 심리가 만나는 오묘한 지점에 팝업스토어가 있다.


한편으로는 팝업스토어가 더 원초적인 형태의 상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상설시장이 있기 전에 이미 3일장, 5일장 등 약속된 날짜에 각자 상품을 가져와서 판매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그 이전으로 가면 정해진 기약도 없이 엿장수 마음대로, 물건이 나오는 대로 구매하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이름난 장인은 물건을 진열해 두고 팔지 않는다.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제공하고, 그 물건들은 항상 살 수 없기 때문에 값어치가 더 올라간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처럼 사람 이름이 곧 명품이 된다.


결국 팝업의 유행은 개인 또는 캐릭터가 브랜드화되어 가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 축구선수 손흥민은 단순한 운동선수이기보다는 하나의 브랜드에 가깝다(실제로 본인의 이름을 건 패션 브랜드가 있기도 하다). 손흥민 선수의 팬은 그의 축구경기를 즐기는 것뿐 아니라, 그가 출연한 방송을 시청하고 그가 쓴 책을 읽고 그가 만든 옷을 입음으로써 하나의 브랜드를 다면적으로 소비한다. 만약 손흥민 팝업스토어가 성수에서 일주일간 열린다고 하면, 전 세계 팬들이 몰려올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성공한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셀러브리티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기업과 유명 브랜드 안에서 개인을 표현하던 시대에서, 다시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성수/뚝섬]

https://www.google.com/maps/d/u/1/edit?mid=1-Ql_SgLA24almDpd1mZuV5BcKWa4pn4&usp=sharing


성수라고 하면 보통 성수역 남쪽에서 뚝섬역까지 이어지는 길거리를 말한다. 성수역 남쪽은 완전한 번화가가 되었고, 북쪽에는 그래도 아직 예전 느낌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성수역 남쪽도 곳곳에는 옛 수제화 거리의 흔적이 여전하고, 노포가 있어 성수만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성수역 3번 출구 앞으로 나오면 성수이로가 펼쳐지는데, 이곳이 이제 성수의 중심지가 되었다. 양옆으로 인도가 넓게 뻗어있고 눈을 즐겁게 하는 매장들이 늘어서 있어 마치 신촌의 백양로를 걷는 느낌이 든다. 이곳의 무드는 홍대보다는 조금 점잖고, 이태원이나 강남보다는 가볍다. 쇼핑하는 외국인 관광객들, 카페에서 대학생들, 팝업과 맛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섞여 만들어내는 자유로움이 성수를 만들어낸다.


성수역 3번 출구에서 바라본 성수이로


성수이로를 따라 내려가면 메인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연무장길이 나오고, 이 연무장길을 따라 팝업스토어가 늘어서 있다. 주말에는 역시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고, 평일 낮에는 비교적 한가롭게 주변 구경을 할 수 있다. 온갖 멋을 부린 매장들 사이로 보이는 옛날 건물들, 머리 위로 어지럽게 뻗어있는 전깃줄은 성수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주말의 성수


뚝섬역 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으면, 이제는 웨이팅 없이는 먹을 수 없는 '소문난 성수감자탕'이 나오고 아기자기한 편집샵과 브랜드매장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길을 쭉 따라가면 뚝섬역까지 이어지게 되고, 뚝섬역에서 서울숲 부근은 음식점이 많기 때문에 식사 약속을 잡기에도 좋다.


어딜가든 줄이 늘어선 성수


성수역 근처 랜드마크 중에서 크리스찬디올 매장이 있다.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을 비롯한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춰 사진을 찍는다. 성수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연무장길 쪽으로 접근하다 보면 크리스찬디올 매장이 나오고, 이쪽 길을 따라서 산책하는 것도 좋다.


성수와 팝업스토어를 주제로 글을 쓰던 와중에 브런치스토리 팝업이 성수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해 보았다. 연무장길에서 건대입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브런치스토리 팝업이 나온다. 작가 ID도 만들고, 다른 작가분들의 작업물도 보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작가분들이 오프라인으로 튀어나와 같이 계신다고 생각하니 두근거리는 경험이었다.


브런치스토리 팝업, 작가의 여정




2024.10

© Quasar


|| 걸으며 생각한 것들 || 걷기와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걸으면 생각이 차오르고, 달리면 생각이 비워지는 일들을 경험합니다. 걸으며 생각한 것들, 그리고 산책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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