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소신 Dec 08. 2021

혹시 급매로 나온 땅 없나요?

주택 짓기 첫걸음, 땅 구하기

나는 남편과 둘이 자영업을 한다. 건축의 수많은 과정 중 한 가지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건축 쪽 일을 하지만 집을 짓는 일렬의 과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것을 먼저 밝히기 위해서다.


우리는 현재 도심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산골이나 외곽지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꾸역꾸역 도심을 가로지르며 오고 가는 것이 힘들어 '언젠가는 우리도 외곽으로 빠져서 살자'라고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옆에 지역으로 갔다가 정말 우연히 시간이 남았고 정말 우연히 옆에 부동산이 있길래 이 동네 시세는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부동산 바로 뒤에 있는 아파트가 내가 사는 지역에 비해 거의 반절이나 저렴했다. 아니 우리 집에서 30분밖에 안 걸리는데? 이야 이 동네 진짜 싸구나 싶었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 생각이 별로 없었고, 전원주택을 원했기 때문에 전원주택지 시세를 물었다. 그랬더니 헉할 정도로 비쌌다. 한동네인데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요...? 그러다 회심의 한마디를 남겼다. "혹시 급매로 나온 땅 없나요?" 중개인 아저씨는 씨익 미소를 띠며 마~침 너무 좋은 땅이 주인 사정으로 급매로 나온 것이 있다며 주소와 가격을 알려주었다. 이 가격에 여기가 가능하다고요?

남편과 함께 주소에 적힌 장소로 갔다.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어있고 그 마을의 끝집이었다. 땅 바로 뒤에는 산이 있고 보이지는 않지만 마을 앞쪽으로 작은 천이 흘렀다.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은 배산임수였다. 그리고 언덕을 좀 많이 올라와서 그런지 뷰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 땅 너무 좋다....!


문제는 땅이 200평이 넘었고 그곳에 우리끼리 집을 짓기에는 자금도 깡다구도 없었다. 남편은 친정엄마에게 어서 콜을 하라고 했다. 친정엄마는 다른 지역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계셨는데 그 집에 사연이 많은지라 그 집을 팔고 이쪽 지역에 집을 다시 짓겠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대뜸 같이 지어서 같이 살아요를 시전을 했고 무언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부동산의 흔한 레퍼토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땅 너무 인기가 많아서 먼저 채가는 사람이 임자'라고 했고 실제로도 시세에 비해 저렴하게 나온 것은 사실이었다. 부동산에 우리 말고도 그 땅을 노리는 자가 들락날락했다. 무엇인가 홀린 듯 3년 안에 대출금을 완납하는 조건으로 일부 대출을 받아서 땅을 구입했다.


건축허가는 내놨지만 오랫동안 건물을 짓고 있지 않아 시효가 지나면 건축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실제로 취소가 돼버리면 5년 정도 다시 허가를 받지 못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 펼쳐진다고 했고 그 앞쪽에 있는 한 부지가 실제로 건들지도 못하는 땅으로 나무만 심어놨다고 했다. 당시 땅주인은 그곳에 집을 지을 계획이 없고, 건축허가가 취소되면 팔지도 못해버리니 얼른 팔아버리려고 급매로 내놓은 것이었다.


그 동네를 탐방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사실 그곳이 문중의 땅(!)이었는데 개발해서 전원주택단지를 세웠다. 도시가스가 안 들어와서 개인 LPG통을 설치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것까지는 OK.

그런데 상수도도 안 들어온다. 왜냐하면 문중 중 세 명이 상수도 설치를 반대해서라고. 그래서 두 셋집이 큰 물탱크에 물을 받아서 공용으로 쓰고 있었다. 이것까지도 OK.


충격은 마을발전기금이었다. 마을을 보다가 우연히 마을 주민을 만나게 되었고 이것저것 사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이 마을은 단합이 잘돼서 단톡방도 있고 눈이 오면 다 같이 나와서 쓸고 관리도 잘하는 살기 좋은 마을이다. 그런데 이 마을 공동체에 들어오려면 마을발전기금을 내야 하고 300만 원이니 미리 알고 계세요 호호호.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새로 만들어진 마을에 들어가야 하는데도 마을발전기금을 내야 한다니? 그것도 300만 원? 이게 뭔가 싶었지만, 다들 낸다고 하고 우리 집을 만들 때 도로가 파손될 가능성이 크니 그것에 대한 보수 예비비라고 했다.

후에 마을 공동체에 편입되지 않은 다른 집주인과 우연히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마을발전기금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돈을 내라고 강요했지만 지금까지 누가 그 돈을 냈고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장부를 보여주면 내겠다. 내 돈이 어떻게 쓰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돈을 내냐고 하자 아무도 그걸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룰은 없다가 막 생겨난 룰이며 그녀가 첫 타자였는데 안 내고 버티고 있다는 것. 지금까지 아무도 안 내고 마을에 살다가 어느 정도 인원이 모이자 이제부터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한테 내자고 하자!라고 만든 룰이니 우리도 낼 필요 없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이 문제는 아직 현재 진행형)


아무튼 엄마가 20년 동안 잘 알고 있던 건축업자 지인과 같이 일을 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고 그 건축업자의 소개로 건축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했다.  용적률(쉽게 말하면 땅 전체 면적에서 몇%만 집을 지을 수 있는지)과 토지의 용도에 따르면 집 두 채를 짓지 못하고 무조건 한채만 지어야 한단다. 땅은 넓은데 집은 코딱지만큼만 지을 수 있다니. 그래서 2층짜리 집을 짓고 1층에는 친정식구들이 2층에는 우리 가족이 살기로 했다. 그래서 몇 차례 수정을 거쳐서 설계도면을 얼추 완성했다. 그 도면을 가지고 건축비를 상의하기 위해 건축업자를 만났는데, 오잉? 하면서 바뀌었네!!!! 하신다. 뭐가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니 땅의 용도가 그사이 바뀌었다고 한다.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결론적으로는 땅 200평에 한채만 지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두 채를 지을 수도 있고 용적률도 훨씬 늘어났다고 했다.

쓸데없이 마당만 휑하니 넓은 것보다는 집 두 채를 짓는 게 훨씬 이득인 상황. 문제는 집이 두채. 건축비도 두배. 여기까지 진행되는 사이 계절은 두 번이나 바뀌었고 집을 지으면 안 된다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당장 살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겨울 지나고 봄 되면 하자

어차피 설계도도 다시 수정해야 하니까


느긋하게 마음을 먹자라고 지내던 어느 날 건축사무소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땅 뒤쪽에 바위 쌓여있는 거 없애서 땅 면적을 늘리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오셔서 설명을 들으셔야 할 것 같아요"


집을 한 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두 채를 지으니 20년 직격탄을 정면으로 맞게 되는 것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