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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Apr 19.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24

24화 : 요셉과 마르다

[지난 줄거리]

아르델 국왕은 누가 백설인지를 두고 이븐 왕국 대신들에게 공개 거수투표를 진행한다. 모두 미뉴에트에게 손을 들었고 백설의 처형이 선포된다.

라오스는 이븐 왕국의 재상에게 윌리엄과 백설의 정략결혼이 최대 실책이면서 아르델 국왕이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백설이 처형이 선포되고 시리우스는 필립에게 달려가 백설을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그 과정에서 필립은 시리우스를 향한 마음을 드러냈고, 시리우스는 자신이 남자임을 고백한다.


24화 : 요셉과 마르다


—--



“국왕 폐하! 감옥에 갇혀 있던 계집이 사라졌습니다!”


이른 아침, 왕은 침대가 아닌 창가에 서서 백설이 사라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악의 없이 선하게 자신을 올려다보았던 백설의 눈동자가 머릿속에 맴돌아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요셉 왕자님, 왕비님이 사라졌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침소에서 뵈었는데 ..아니 대체 어딜 가신 건지”

아르델 국왕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사랑하던 어머니가 성에서 사라졌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봐도 왕과 왕비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보였다. 왕은 왕비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평소처럼 사냥을 하러 갔다.

어머니가 사라지고 요셉은 한동안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우울증을 앓았다.

왕은 왕비를 떠나보내고도 다시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룻밤의 적적함은 필요에 따라 다른 여인들로 채워질 뿐이었다.

당시 왕은 정복 전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르델 왕국의 부강함은 이 시기에 기반을 다져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 가지에 더 힘을 썼는데 바로 아르델 왕국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인 아들 요셉의 정략결혼처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형장을 마련해 두었던 걸 치워라.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당장 떠날 채비를 하라.”


아르델 국왕은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상쾌했다. 허리에 칼을 차고 활을 어깨에 걸었다. 문득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비추어보고 싶었다.


국왕은 거울 앞에 섰다. 머리는 새하얗게 새었고, 잠을 설쳐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다. 입술에 힘을 주어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웃는 얼굴에서 짙은 슬픔과 허무함이 배어 나왔다.


“국왕 폐하, 말을 준비시켰습니다.”



국왕 폐하께서 왕자님을 위해 멋진 말을 준비하셨습니다!”

열다섯의 요셉은 한껏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시녀들의 재촉에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 눈앞에는 근사한 장식이 달린 백마가 보였다.

보기보다 거친 녀석이나  다루어서  것으로 만들어라.”

요셉은 백마에 조심히 올라탔다. 평소에 배웠던 대로 힘차게 줄을 당겨 상쾌하게 달렸다. 어찌나 빠른지 금세 부왕이 타던 말을 앞질러 갔다.

주위와 속도를 맞추어 가야 하는  그만 무리를 놓치고 지나치게 질주한 탓에 요셉은  중턱에서 길을 잃고 설상가상으로 말의 고삐를 잘못 휘어잡는 바람에 말에서 고꾸라져 비탈을 따라 한참을 굴러 떨어졌다.

요셉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눈을  요셉의 앞에는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눈이  여자아이가 있었다.

 괜찮아?  위에서 굴러 떨어질 때부터 지켜봤어. 피를 많이 흘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약을 발라 두었으니까 상처는 금방 나을 거야. 배고프지? 이거 먹어.”

여자아이가 사과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사과를 받아  요셉은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의 눈동자가 왠지 익숙했다.

 이름은 마르다,  녀석은 마리아.  어디 살아? 바래다줄게.”

마르다는 어머니가 일찍 죽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다가 일곱 살이   새어머니를 맞이했다. 새어머니는  마리아를 았고  가족이 행복하게 았는데 전염병이 돌아 부모를 잃고 동생과  둘이 남게 되었다.

마르다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돌아간 요셉은 그날 이후 매일같이  안의 물건을 몰래 빼돌렸다가 마르다에게 갖다 주곤 했다.



“폐하, 도망친 계집이 있던 감옥에서 이상한 물건이 발견되었습니다. 얇은 나무 조각 표면에 난해한 무늬가 새겨진 펜던트인데 줄이 끊어지면서 떨어진 것 같습니다.”


왕은 펜던트를 한 손에 올려두고 찬찬히 살펴보더니 손끝으로 무늬를 따라 그려가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눈썹, 눈, 코, 입.. 엄마 얼굴…”



“마르다, 이 목걸이는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위해 만든 거야. 어머니가 사라지는 바람에 전해줄 수 없었지만 네게 이걸 주고 싶어. 나중에 결혼해서 아기 낳으면 목에 걸어주자. 사랑해 마르다..”

요셉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여인과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저 또한 아버지처럼 불행하게 지내길 바라십니까? 저는 어머니가 왜 아버지를 떠나셨는지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또한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으셨고.. 결국 사랑이 없는 결혼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거 아닙니까!”

진심을 전하려는 지나친 열정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치명적인 부분을 짓밟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무엇인지 아느냐?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다. 네 말대로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 불행을 공평하게 너에게도 나누어주겠다. 사랑 앞에서 모두가 공평하게 불행해질 수 있는 길이 정략결혼이다. 두 말 않는다. 전에 말한 대로 한 달 뒤에 오리온 왕국의 딸과 결혼이다. 물러가라.”

요셉은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 간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다. 부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수소문하여 마르다가 사는 곳을 찾아내 아르델 왕국 밖으로 쫓아냈다



“아르델 성 주변은 민가가 없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 밖으로 도주했다면 숨을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각자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서 찾아보고 먼저 발견한 쪽에서 나팔을 불어 신호를 보내라.”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이나 말이 지나간 발자국부터 숲에 나무가 휩쓸려 지나간 흔적까지 샅샅이 살펴가며 뒤졌다.


왕은 말을 타고 이동하다가 사람이 발로 걸어 숨을 만한 곳이 보이면 직접 내려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병사가 왕에게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폐하, 윌리엄 왕자도 같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답니다. 그 계집이 사라져 당황해서 윌리엄 왕자까지 살피지 못했는데 정황상 둘이 같이 도주한 게 아닐까 하고.. “


아르델 국왕은 입 주변이 파르르 떨렸다.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병사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외쳤다.


“아르델 국왕 이름으로 명한다. 지금부터 그 계집이나 윌리엄 왕자를 발견하면 즉각 처형하라. 활이든 칼이든 개의치 않는다. 혹여 봤음에도 처형을 망설이거나 주저하면 그 자도 즉시 참형이니라.”



불행한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한다. 미래의 희망과 기대를 품고 하루를 더 살아낼 필요나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 말의 의미를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보며 깨달았다.

부왕은 요셉의 정략결혼을 성사시키고 왕위 계승을 마무리한 후 얼마 못 가 세상을 떴다. 불행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있어 새삼 죽음이 놀랍지 않았다.

요셉은 미치도록 증오한 부왕을 닮아갔다. 오리온 왕국에서 온 왕비는 자상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여인이었다.

요셉이 자신에게 곁을 주지 않음을 알면서도 끝없이 사랑을 주고자 노력하고 애썼다. 그럼에도 어둠 속에 울부짖는 일곱 살의 악몽에 시달려 결혼을 하고 5년이 넘게 잠자리를 피했다.

국정 운영만큼은 부왕을 능가하는 탁월함을 보여 준 요셉은 오랜 기간 동안 괴롭혔던 이민족을 소탕하고 국경의 안전망을 구축하여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다져갔다.

그즈음에 왕비는 윌리엄을 출산했다. 한 명의 왕자가 더 있었지만 불길함을 우려해 조용히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이웃나라 이븐 왕국에서 이민족이 침입했을 때 군사적인 도움을 준 것에 답례를 하고자 초정했다. 마침 이븐 왕국의 왕비가 회임을 하여 많은 나라의 귀빈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연다고 전해왔다.

이븐 왕국 연회장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화려하게 꾸며진 꽃장식 앞에 한가득 부풀어 오른 배에 손을 올려 두고 활짝 웃고 있는 마르다가 있었다.

“마..르다..너가..왜..?”

요셉은 급한 용무를 핑계 삼아 왕비만을 들여보내고 그 길로 다시 아르델 왕국으로 돌아왔다. 대신들을 불러 모아 이븐 왕국에 곧 태어날 아기와 윌리엄 왕자의 정략결혼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두고 정략을 약속하는 전례가 없다고 신하들은 계속 만류했다.

요셉은 신하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븐 왕국을 정략결혼으로 차지한 후 어떻게 국가를 흡수하여 통일할 것인지 원대한 계획을 풀어냈다. 어안이 벙벙했으나 확신에 차 역설하는 국왕 앞에 반기를 드는 신하는 없었다. 신하들이 백설 공주와 윌리엄 왕자의 정략결혼에 시비를 걸 때면 아르델 왕국의 정복 사업을 읊고 또 읊으며 설득하고 강요했다.

‘모두가 사랑 앞에서 똑같이 공평하게 불행해지는 길은 정략결혼뿐이다..’


한편 필립은 한 바탕 난리가 난 성이 잠잠해진 틈을 타 조용히 빠져나왔다.


활과 화살을 들고 말에 올라탔다. 고삐를 잡아당겨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 필립의 뒤로 희미하게 피로 얼룩진 가느다란 리본이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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