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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Apr 20.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25

25화 : 필립의 결심

[지난 줄거리]

백설을 처형하기로 한 날 아침, 백설과 윌리엄이 사라졌다. 성은 발칵 뒤집혔고 국왕은 직접 무장을 하고 도망간 백설과 윌리엄을 처형하겠다고 선포한다.

아르델 국왕은 어린 시절 마르다라는 여인을 사랑했다. 부왕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마르다를 떠나보내고 말았다. 마르다는 이웃 나라 이븐 왕국의 왕비가 되어있었다.

아르델 국왕은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저주하며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낳은 딸과 자신의 아들이 정략결혼을 밀어붙였다. 바로 백설과 윌리엄의 정략결혼이었다.


25화 : 필립의 결심


—-



백설과 윌리엄이 사라지기 하루 전.


필립은 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숨을 내쉬고 있는 시리우스의 얼굴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시리우스는 백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이 컸는지 온몸에 열이 끓어올랐다. 필립은 밤새 곁을 지키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몸을 뒤척이다가 시리우스의 손이 삐져나왔다. 필립은 그 손을 펴서 살포시 자기 손에 맞대었다. 사내의 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담했다.


“이 여린 손에도 검을 쥔 군살이 박혀있으니.. 모를 수가 있나..”


그 전날 필립은 시리우스와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가 없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시리우스의 손을 움켜쥐었다.


바로 놓았다면 끝까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립은 그 손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고 시리우스는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필립은 울음이 멈출 때까지 손을 계속 잡고 놓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손바닥 감각 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굴곡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왕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검을  흔적이 느껴졌다.


필립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의 왼쪽 끝 가장 아래에 숨겨 둔 상자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상자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지 못한 물건, 사랑받는 사람에게 빼앗은 물건,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물건이 있었다.


필립은 상자 안에서 피로 얼룩진 리본끈을 꺼내 들고 활과 화살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 왜 윌리엄 형만 주고 나는 안 줘요? 저도 주세요! 주세요..!”

필립이 다섯 살 때 왕비의 병이 크게 악화되었다. 매일 같이 두 왕자는 어머니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 모습이 사뭇 달랐다. 윌리엄은 어머니에게 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면 필립은 어머니에게 무엇을 줄지 늘 고민했다.

윌리엄이 왕비에게 목걸이를 받은 날 필립은 어머니를 위해 밤새 그린 꽃 그림을 가져갔다. 왕비는 필립에게 이마에 입을 맞추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장난을 치는 윌리엄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필립은 그날 어머니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었고 윌리엄은 마지막 선물을 받았다.

—-

“윌리엄 형, 이름이 마리아래. 마리아. 이쁘다 이름.. 마리아..”

“쳇, 유모 따위 필요 없어!”

어머니를 대신해 빈자리를 대신 할 유모 마리아가 왔다. 아르델 왕은 자신의 우울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일찍 어머니를 여읜 아이들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을 붙여주었다.

필립은 마리아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마리아를 사랑한 만큼 자신의 힘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마리아를 위해 웃고 기뻐했다. 비록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마리아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티 내지 않았다.

“형, 마리아 좀 그만 괴롭혀! 또 그러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윌리엄이 한참 마리아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날이면 필립도 힘들어했다. 윌리엄이 치려는 장난을 미리 알아서 마리아가 피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갖은 애를 썼다.

윌리엄이 마리아를 정원 구덩이에 빠뜨린 날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데 흠뻑 젖어가며 마리아를 찾아다닌 건 필립이었다.

필립은 한참을 누워 지낼 정도로 오래 아팠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필립이 마리아를 발견하고 사람을 부르러 가던 도중에 쓰러져서 마리아 보다 필립이 나중에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윌리엄은 마리아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필립은 마리아와 붙어 있는 윌리엄을 바라보는 게 왠지 싫었다.

필립이 열세 살이 되던 해 마리아 침실에서 윌리엄과 마리아가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는 성에서 쫓겨났다.

—-

“필립, 아르델 왕국과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

윌리엄이 백설 공주를 찾겠다고 이상한 소문을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성 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윌리엄이 여기저기 헤집고 돌아다니는 모양새가 어쩐지 낯설었다.

백설 공주와 내통한다는 명목으로 잡아 온 왕자가 알고 보니 빨간색 머리를 한 계집아이였다. 윌리엄은 그 계집을 왕자로 변장시켜 두 나라에 외교적 압박을 넣고 오겠다고 했다.

떠나기 전날 윌리엄은 이 나라와 아버지를 맡긴다는 말을 남겼다. 필립은 성을 떠나는 날 그 계집아이를 쳐다보는 윌리엄의 눈에서 진심을 읽었다.

필립은 이 지옥 같은 나라를 혼자서 벗어나겠다고 설쳐대는 윌리엄을 증오했다. 부왕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윌리엄을 추격해갔다. 필립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윌리엄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필립은 정체가 드러나 두려움에 벌벌 떠는 시리우스의 두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네 진짜 이름은 무엇이냐?”


“시리우스..”


“시리우스, 지금껏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줄 지만을 생각하며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살았다. 이 모습 누구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지 않느냐?”


시리우스는 백설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의 셈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지 아마? 헌데 너와 나의 셈법은 어찌 그리 닮아있느냐…시리우스, 남자인 네게 연정을 품은 내가 한심해 보이느냐?”


시리우스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전혀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내가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해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필립은 말을 몰아 경사가 진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수색하며 돌아다니는 병사들이 곳곳에 보였다. 망원경을 꺼내 위치를 확인하더니 필립은 화살을 꺼내 활시위를 당겼다.



“이제 끝을 내야지..”



한편 수색하던 경비병이 낯선 움직임을 포착하고 국왕 곁에 서서 보고를 하고 있었다.


“백설과 윌리엄으로 보이는 자가 자작나무 숲길로 통하는 길 어귀에 보입니다. 아니, 국왕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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