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화 : 피오나의 편지
[지난 줄거리]
필립은 밤새 열이 끓어오르는 시리우스 곁을 지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얻을 수 없었던 필립은 어쩐지 시리우스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필립은 시리우스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를 향한 연모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며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최종화 : 피오나의 편지
—-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그 일이 있은지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상황이 긴박했던 만큼 모든 일을 전할 수 없었어. 이제야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는구나.
아르델 국왕이 죽었어. 너와 윌리엄이 감옥을 빠져나간 그날 말이야.
같이 있던 병사들 말로는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멎었대. 그 이후에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왕의 오른팔에 명중했는데 누가 쏜 건지 범인은 잡히지 않았어.
의원들이 밝힌 왕의 사인은 음독이었어. 널 잡으러 나오기 전에 독을 마시고 나왔는지 널 찾는 도중에 마신 건지는 아무도 몰라.
필립 왕자는 그날 이후로 소식이 끊겼어. 사람들 말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하고 가끔씩 성 주변을 배회하는 필립 왕자를 봤다는 사람도 있어.
지금은 라오스가 아르델 왕국의 왕이야. 본인 스스로도 굉장히 어색해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줄 아는 훌륭한 왕이 되어가고 있어.
참, 친구들 소식도 궁금하지?
파울과 레아와 미뉴에트는 통나무 집에 약방을 열었어. 레아와 미뉴에트는 약초에 정통한 아이들이니까. 파울은 거기서 마을 사람들에게 약초를 공급하고 가게를 운영한대. 듣는 소문으로는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찾아온다더라.
솔르와 도나우는 피오나 왕국이랑 연이 깊어. 지금은 자작나무 숲을 지키는 근위대장으로 있어. 부하도 거느리니 어른스러워지려나 했는데 둘 다 여전히 티격태격 싸우며 재밌게들 지내.
시리우스는 한동안 마음을 못 잡는 것 같다가 시인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 그 아이의 시를 무척 사랑해주는 공작님이 계신데 계속 후원을 해주고 계시나 봐. 젊은 분인데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산다고 하더라고.
백설아, 난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 너랑 윌리엄 왕자는 애초에 결혼이 약속된 사이였잖아.
정략결혼으로 만났다면 지금처럼 서로를 사랑할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이렇게 어렵게 돌고 돌아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표결이 부쳐진 날 백설은 담담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기력을 소진해 제정신으로 버티는 것조차 힘들었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걸 느꼈다.
“눈을 떠라! 눈을 뜨거라.. 제발.. 눈을 떠 보거라..”
“왕..자님..여..긴 ..어떻게..”
“누가 함부로 네 이름을 걸고 죽음을 선택하라 하였느냐. 네 목숨이 그리 가벼운 것이냐. 어디 말 좀 해 보거라.”
윌리엄은 백설을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었다.
“헤이온은 윌리엄을 연모하느냐..?”
“네..왕자님..”
“윌리엄은 백설 공주와 정략결혼을 무너뜨렸다. 그다음은.. 무엇이냐?”
“백설과 윌리엄이 만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한다..”
“왜 그리 눈가가 촉촉해졌느냐?”
윌리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었다.
“피오나에게 온 편지입니다. 그렇게 도망치듯 아르델 왕국을 빠져나오고 너무 걱정되었는데 다들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서…”
백설은 윌리엄의 품에 살포시 안겼다. 한참을 울고 나더니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우리가 정략결혼으로 만났다면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윌리엄은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맞춤으로 답을 대신했다.
백설은 맞은편 탁자 위에 세워진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배 위에 두 손을 포개어 놓고 행복하게 미소 짓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