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호 Sep 08. 2024

우리나라는 진정한 배달의 민족이다.

배달산업의 시작점

CNN에서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인 50가지 이유’에 음식 배달을 포함시켰다.

주문만 하면 어디든지 배달되는 음식은 한국의 독특한 매력으로 꼽힐 정도로 배달 문화는 외국에선 생소할 수 있는 우리 고유문화의 진화라 할 수 있겠다.

CNN에서 소개될 만큼 한국처럼 음식 배달이 발달된 나라도 없다. 

치킨, 피자, 햄버거부터 한정식까지 거의 모든 음식이 배달이 된다. 


이런 배달문화는 4차산업과 코로나19로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과거 선조부터 이어온 문화의 진화다.

우리나라 음식 배달이 어떻게 태동되었는지 역사자료를 기반으로 보면, 조선시대에서부터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배달 관련 기록은 조선 후기 실학자 황윤석의 '이재난고'에서 볼 수 있는데, 그는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 당시 고급 요리인 냉면은 인기가 좋았고, 입소문이 퍼진 음식점은 배달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1768년 7월 작성된 것으로 최소 250년 전부터 대한민국에는 배달 서비스가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 말기의 인기 배달음식은 해장국 ‘효종갱’이었다.

광주 남한산성 내 경국을 끓이는 갱촌에서 배추, 콩나물, 송이, 표고버섯, 쇠갈비, 해삼, 전복 등을 장에 오랫동안 끓인 뒤, 밤에 항아리와 솜으로 싸서 소달구지로 한양으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려 통금시간이 끝날 때 도성으로 들어와 양반들에게 배달했던 음식이다. 

직역하자면 새벽[曉] 종(鍾) 국[羹]이 된다. 즉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 먹는 탕'이라는 뜻이다.

통행금지 해제 시간까지 술을 마시던 사대문 안 양반들에게 효종갱은 속풀이에 알맞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효종갱은 질 좋은 재료가 많이 들어가고, 또한 배달 품삯을 생각하면 한 끼로는 고가였으리라 생각되고, 당연히 거금을 낼 수 있는 북촌의 사대부가 주된 고객이었다고 한다.

사대문 안 북촌에 새벽 4시에 맞춰 배달하기 위해서는 전날 저녁 9시에 출발해서 7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배달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배달의 민족이라고 생각된다.


조금 더 현재와 가까운 음식배달에 관한 기록은 1906년 7월 14일, 일간 신문인 만세보에 기재되었다.

당시 명월관이라는 음식점이 “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 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연 등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시면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배달 광고를 만세보에 기재하였다.

만세보광고(배달의민족)

인기 음식전문점이었던 명월관은 행사에 필요한 음식을 주문받아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배달을 제공했다. 

다양한 한식을 포장하여 교자상으로 배달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현재의 출장 한식 서비스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19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이주 중국인들이 증가하면서 한국식 중식인 짜장면이 탄생했고, 해방 후 미국의 밀가루 원조 덕분에 짜장면은 한국인에게 인지도 높은 음식이 되었다. 

초기 배달통(배달의민족)

곧 짜장면은 외식, 배달 음식의 유명인사가 되었고 1950년대에는 "신속배달, 중화요리" 등의 단어들이 대중화되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근대화 및 전쟁으로 인한 피해 복구를 목표로 40년간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이러한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한국사람들 사이에는 “빨리빨리”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국민은 경제 발전을 위해 막대한 업무량을 감당했어야 되었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는 한국인들에게 뭐든지 빠르게 해결하고 적응하는 성향을 쥐어줬다. 

이에 맞물려 우리나라에서는 배달 문화가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된 것이다.

80년대 사무실(경향신문)

빨리 먹고 일해야 하는 사람이 많으니 짜장면 같은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주류 배달 음식이 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80년대는 고도성장의 시기였다. 

대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주변에는 밀집된 주민들을 상대로 단지 상가, 공중목욕탕, 배달음식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인구가 밀집되고 주소가 단지화되면서 빠른 배달이 가능해졌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도심 중심의 밀집된 지리적 구조, 치열한 경쟁 및 빨리빨리 문화 등 복합적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만의 고유한 배달 문화가 정착되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배달 원조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4차산업 기반의 배달의 모습은 국내 서비스를 벤치마크한 딜리버리히어로, 어러머 등 해외 사업자들이 먼저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장착하고, 적극적 M&A, 성공적 해외 진출 등으로 산업화에 먼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