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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여자 Mar 13. 2020

질문은 '관심'이고 '관계'다

 대학시절 가능한 멀리하고 싶은 선배가 있다. 요즘 말로는 ‘투 머치 토커’ 정말 말이 많은 선배였다.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마치 라디오를 켜놓은 것 마냥 줄줄 줄. 단 한 번의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한 시간은 붙잡혀 있어야 하는 그야말로 토크에 쉼표가 없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쓸데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질문과 답이 서로 오가는 것이 아니라 소나기 쏟아지듯 퍼붓는 이야기는 듣고 있자면 지치고 소위 치고 들어갈 틈도 주지 않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가까이하고 쉽지 않은 선배가 되었다. 비단 그 선배뿐 아니라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상하게 이런 유형은 남자들이 많다. 아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소통의 스킬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런 사람에게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언제 만나도 좋은 동생이 있다. 그 동생과 가끔 연락을 하거나 만나면 나의 안부를 묻고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지, 일이 힘들지 않은지, 남편의 안부까지 묻는다. 한동안 남편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그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내가 힘이 들 때는 동생에게 먼저 연락을 하게 됐다. 먼저 말하지 않아도 상황을 물어봐주니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지금은 미국에 있지만 언제나 가까이에서 지내고 싶은 그리운 사람이다.

사람들은 자기 말만 하는 사람보다 자신에게 묻고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나를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했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질문을 했다. 호감이 가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질문을 했다.  달달했던 연애시절을 생각해보라. 그 사람에 대해 궁금했던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조심스러워 다 하지 못해 마음속으로 얼마나 수많은 질문을 했는지, 물론 결혼을 하면 또 다른 국면을 맞지만 말이다. 관심에서 시작해서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비결이 바로 질문이다.      


 “김성해? 한자는 어떻게 되지?”

 “이룰 成에 바다 海요”

 “이룰 성에 바다 해라... 이름이 참 좋네. ”

 대학시절 시 창작 수업을 들어갔는데 교수님이 출석 체크를 하면서 나에게 했던 질문이다. 시인 이성복 선생님과의 인연은 그 질문으로 시작됐고 그 질문은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줬다. 문예창작학과 수업을 듣는 내내 교수님은 나의 이름을 불러줬고 그 수업만큼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몰입했다. 시 창작은 물론이고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이해하기 힘들 만큼 문학적인 토양이 없었지만 이성복 시인의 수업을 들으면서 문학과 창작에 대한 맛을 보았고 어릴 적 단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던 작가가 되어 있었다. 언어 감수성이 남다른 이성복 시인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질문이었고 그 뒤로 나의 이름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그 질문을 받았지만 그의 수업이 재미없고 지루했다면, 교수님께 배울 것이 없는 수업이었다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복 시인은 가르침에 열정적이었고 수업 중에도 학생들에게 틀을 깨는 질문을 던졌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지금은 글 쓰는 맛을 아는 조금 아는 작가가 되었으니 그 질문이 내 인생을 바꾼 셈이다. 방송작가가 된 뒤에도 난 가끔 선생님께 이멜로 안부를 물었고 선생님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책을 보내주면서 제자의 작가 생활을 응원해주셨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관심이고 관계의 시작이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 탁월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으로 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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