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질문하는여자 Mar 11. 2020

내 인생의 질문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10년 동안 일해왔던 방송작가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에게 했던 질문이다. 지금까지 성장해오며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겠지만 유독 이 질문을 기억하고 있는 건, 그때 당시 사용하던 보라색 다이어리 제일 앞장에 이 질문이 적혀 뒀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방송을 제작을 하면서 번아웃 상태였던 나는 더 이상 서울이라는 곳과 방송국이라는 곳이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싫어졌다. 지방으로 내려가 더 이상 방송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글쓰기는 멈추고 싶지 않았기에 그런 질문을 던졌을 거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던 중 sbs <TV 동물농장>을 가장 오랫동안 집필했기 때문에 동물을 소재로 동화를 써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방송했던 아이템들 중에 동화로 쓸 수 있을 것들을 찾아서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 기획안을 완성하자마자 몇몇 출판사로 기획안을 보냈고 그중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싶지 않은 동화책 <인기스타 방울이>가 출간됐다.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나에게 했던 질문은 작가로서 한발 더 성장할 수 있는 작가 인생의 결정적인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 질문의 대한 답으로 지금 질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테니 말이다.

       

  지방대 국문과 졸업을 앞둔 4학년 되자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는 듯했고 같은 동아리 신문방송학과 친구들은 상경 계획을 세웠다. 그때까지 사회에 나갈 구체적인 준비를 해온 게 없었던 나는 한국어문학을 전공했으니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공과 달리 문학적인 토대가 전혀 없었기에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고 신방과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지방대학이라 방송작가가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주위에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막연히 꿈만 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송승헌· 송혜교 주연의 <가을 동화> 드라마를 보는데 하단 자막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예비 방송작가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지나갔다. 방송작가라를 단어를 보는 순간 운명의 남자를 만난 것만큼 가슴이 쿵쾅거렸다. 자막을 단서로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어떤 곳인지 주위에 묻기 시작했고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서 교육원을 가는 게 어떨지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히 주위에 작가협회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간신히 사이비 단체가 아니라는 정보만을 가진채 서울로 올라가 면접을 봤다. 일주일에  한 번의 수업.  4학년 2학기 때 대구와 서울을 오가면서 교육원 수업을 들었고 방송작가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금도 그렇지만 방송작가들은 공채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알음알음 소개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지방에서 올라와 인맥이 제로인 촌아이에게 알음알음이 어디 있으리. 라디오와 케이블 방송, 프로덕션 등 방송국 언저리를 돌아 돌아서 공중파 프로그램을 집필하는 작가가 되었다.

 남들보다 어렵게 방송작가가 되고 난 후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나는 방송작가로의 자질이 있은가?”라는 질문이었다. 제대로 배운 것도 없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영상이나 글 쓰기에 탁월한 감각이 있었던 것도 아닌지라 늘 헤매고 확신이 없었다. 10년 차가 되는 순간까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답이 없는 잘못된 질문이었다. 질문을 달리 해야 했다.  방송 작가로서 자질을 묻는 것이 아니라,  “방송작가로서 자질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좀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방송작가로 자질이 있는가라는 답을 찾기보다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질문했더라면 조금 더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모니터링을 좀 더 열심히 하고, 부족함을 채워가지 않았을까. 캄캄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듯이 시간이 지나야지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나고 주위를 둘러보니 탁월한 재주와 감각이 능력 있는 방송작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길을 걸을 때 능력 있는 작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일들도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끈기’다.  


 사람들은 정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답답하고 막히는 순간이 있다면 질문을 돌아보아야 한다. 질문을 바꿔보아야 한다. 질문이 바뀌면 생각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전 02화 질문은 '관심'이고 '관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