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봄 Oct 22. 2021

그 여자의 질문

오늘도 잘 쓰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직장인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서둘러 일어나 화장을 하고 쫓기듯 출근 준비를 할 때에는 느긋하게 몇 시간 더 잘 수 있는 것이 더할 수 없이 달콤한 일이었는데 막상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되고 보니 달콤함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직장생활을 대신하는 다른 종류의 무게감 때문에 개운하게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자유로움’과 ‘쓸모’에 대한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마음속을 헤집으면서 일어나는 힘을 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며칠 전에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되풀이하다 늦잠을 잤고 밀려오는 후회로 자책하며 서둘러 책과 노트북을 가방에 쓸어 담고 카페로 향했다. 


 책을 펴 서너 장 읽었을 때쯤 건너편 좌석에서 화내는 듯 울먹이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여자 혼자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맞은편에 고개를 떨군 남자가 앉아있었다. 한산한 오전의 카페에서 울고 있는 여자와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남자. 그들은 원래 사귀던 사이였나 보다. 남자의 바람 때문에 헤어졌다가 다시 믿어달라고 붙잡는 남자에게 분노와 질책을 담아 끝났음을 되풀이해서 선언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눈앞에서 아침 드라마가 펼쳐지는 바람에 늦잠을 만회하려고 잔뜩 가져갔던 책과 무게 때문에 망설이며 넣었던 노트북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그 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여자 그 남자의 괴로움이 건너 앉은 나에게 들려오면서 너무나 뻔한 이야기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아침부터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나의 아침을 힘들게 한 이유 역시 저렇게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겠구나’


 자유로움과 쓸모에 대한 고민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 일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매일을 가꿀 수 있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 내가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지금 필요한 건 나만의 두께를 스스로 갖는 것이고 그것은 반복과 새로 고침을 여러 번 수행해야 가능한 일일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반복하고 갱신해야하는 걸까.


 남자는 아직 테이블에 고개를 붙이듯 숙이고 있고 여자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배신한 남자를 향해 당장 꺼지라고 말하는 대신 힘들었던 마음을 호소하고 있는 여자와 웅크린 자세로 그 말을 견디고 있는 남자. 그들이 원하는 건 새로운 시작일까 완전한 끝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모습에 흥미가 떨어졌고 변덕스러운 드라마 시청자처럼 다른 장면을 보고 싶었다. 나는 책 읽기를 포기하고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팔로우 하고 있는 서점과 크리에이터들은 부지런히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날의 작업, 포착한 장면, 사색의 문장들을 쭉 훑어보는데 매일 출근을 알리는 한 독립서점의 피드가 눈에 들어왔다. 한정된 공간일 텐데도 사진이 매번 다르다. 하이라이트는 퇴근 피드다. 그날 팔린 책이 있을 때만 판매된 책과 함께 사진이 올라오는데 한 권도 팔리지 않았을 때는 퇴근일지가 아예 없다. 그럴 때는 좋아요를 누를 수 없어 안타깝지만 그 마음이 네 시간 떨어진 도시에 가 닿을 리도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날이면 또 어김없이 출근사진과 입고소식과 특강 안내 같은 내용이 포스팅 된다. 빈약한 두께를 채워나가려 조급했던 나에게, 어쩌면 반복의 내용보다 반복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폰에서 눈을 떼고 보니 남자는 떠났고 여자는 다시 노트북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커피 잔을 반납하는 길에 얼굴을 슬쩍 봤지만 울었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 그녀가 나를 지겨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뭐가 궁금한데. 나는 내 할 일 다 끝냈어. 넌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묻는 것 같았다. 지금이야말로 이 자리를 떠나야 할 때다. 드라마도 끝났고 커피도 다 마셨고 무엇보다 써야할 글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드리드 골목에서 와인에 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