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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Aug 31. 2024

아쉬운 그때

솔이의 암치료 -3일

한 달째 복통을 호소하는 솔이가 지역에 있는 소아전문병원에 입원한 때이다. 이유 없이 배가 아프고 계속 열이 나던 때, 솔이는 독감도 아니고, 감기도 아니지만 장염도 아니고, 변비도 아니었던 그때, 솔이는 먹을 것도 잘 먹지 못했고,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솔이가 얼마나 배가 아픈지도 모르고, 솔이가 일단 장염은 아닌 듯 하니 밥을 억지로 먹였었다. 병실도 1인실로 얻어 솔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우리는 솔이를 잘 재우고 잘 먹이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도 생각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도 그냥 그렇게 우리 솔이가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던 게 아닐까? 의료붕괴가 시작되던 때 온갖 병원에 전공의들이 남아 있지 않던 때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방치된 우리는 전문간호사에게만 솔이의 상태를 호소할 수 있었고, 이후 솔이에게 전달된 약은 변비약정도... 였다. 당시 솔이가 입원했던 시기가 주말이었으니, 아마도 그녀가 모든 걸 책임지고 있던 상황일지도 모른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잠시 나선 산책에서 솔이가 잠깐 쉬어가겠다고 바닥에 주저앉으면, 솔이가 응가가 마렵거나 단순히 다리가 아파서였다고 생각했다. 난 솔이에게 빨리 일어나 걸으라고 다그쳤고, 빨리 가자고 뛰기도 했다. 솔이의 배에 엄청난 크기의 암덩어리가 있고, 그 암덩어리가 솔이의 위를 누르고 있으며, 솔이 엉덩이뼈에 그 암이 퍼져 다리가 아팠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난 그때 어땠을까? 


그때 병원에 입원한 동안 우리는 병원에 시티를 찍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병원에서는 솔이가 너무 어려서 진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더 이상 이 소아전문병원에 머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소아전문병원에서 퇴원하여 곧장 지역에서 가장 큰 응급실을 찾았고 간청하듯 시티를 찍었다... 그리고 그때, 솔이 몸속에 있는 그 큰 덩어리를 보게 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소화불량, 감기, 장염 등으로 오해되어 질병의 발견이 늦어진다고 한다. 특히 의료현장이 엉망징창이 되어버린 지금의 시대는 더 많은 아이들이 조금 다른 병, 조금 심각한 병에 걸린 사실을 더욱 많이 놓치게 될 것이다.  


더 나은 의료 시스템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절대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아이를 환자로 돌보며 현장에서 느낀 현재 정부의 의료 개혁은 무조건 정부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적절한 공청회 따윈 없었고, 환자로부터 또는 수많은 의료진들로부터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있었다면, 의료개혁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이 어이없게 방치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솔이의 암치료를 하다 보니 알겠다.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작다. 지역에서 서울까지 가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니고 조금 고단하긴 해도 솔이의 치료를 위해 왔다 갔다 하는 건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특히 서울에 있는 병원의 병실의 상태, 간호사들의 친절과 전문성, 뭔진 모르겠지만 엄청난 의료기기들을 본 순간 지역의 병원을 선택하진 않을 것 같다. 


서울에 있는 병원엔 좋은 그리고 정확한 장비들이 있다 보니, 의사도 간호사도 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느끼는 특급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곳에서 내 아들이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역에 있는 아이들이 의료장비의 부족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의료진들과 함께 질병의 발견을 늦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 소아전문병원이라고 외쳤던 그곳에서 솔이가 가지고 있는 질병을 처음부터 의심해 줬더라면 어땠을까? 시티를 찍어도 되는 상황이고, 시티로 인해 아이를 재운다고 해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대응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요즘 세상에 난무하는 의료개혁이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의료는 장비빨이다. 장비가 완비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는 것이지, 의사만 존재한다면 병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요즘 사람들은 AI와 장비를 찾아 서울의 병원으로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보다 서울은 멀지 않다. 


그때, 솔이가 첫입원을 하던 그때, 바로 서울로 왔더라면, 우리 솔이의 치료는 조금 더 빨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지역의로 #소아암 #항암치료 #의료개혁 #전문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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