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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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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Feb 10. 2024

퇴사를 앞두며 마지막 회식을

 브런치 북에서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회식을 잘 즐기지 않으며 참석하더라도 잠깐 얼굴만 비추었다가 일어나곤 한다고. 그래서 초임 시절 이후로는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에 한 번도 따라간 적이 없었다. 진솔한 인간관계 없이 인스턴트성 대화와 웃음만이 오가는 자리를 나는 퍽이나 진부하다 여겼다.




 어제는 종업식이었다. 6학년 아이들은 졸업식을 하고 후배들은 지난 일 년간 신세졌던 담임선생님을 떠나는 날이다. 종업식 날은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별의 날이다. 정든 제자들을 떠나보내는 날이기도 하며 함께 일하던 동료 교사가 다른 학교나 지역으로 전근을 떠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졸업식과 종업식이 모두 끝나고 난 오후에는 공식적인 송별회 자리가 마련되었다. 우리 학교 모든 교직원이 모여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고 인사 나누는 자리. 떠나는 사람에겐 어쩌면 시원섭섭함이 들 법한 그런 자리다.


 의원면직은 교직생활 중 보기가 아주 드물기 때문에 면직에 대한 관심이 없는 교사들에겐 굉장히 화제성 있는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일종의 구설수라던가 질문 공세에 대해 지레 피곤함을 느낀 탓에 나는 끝끝내까지 의원면직 사실을 동료 교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물론 좁은 공직 사회에서 소문이 금방 돌 것을 예상 못 한 것은 아니지만(결과적으로 그러기도 했고) 여하튼 나의 면직 소식을 처음 공식적으로 알리고 작별을 해야 하는 자리로서의 송별회였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도 되었다.


 올해는 우리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아쉬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무던한 사람도 있다. 떠나는 한 사람씩 마지막 소감을 말했다. 하고픈 말 많았는데 막상 차례가 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떤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선생님들께서 지지와 응원의 말씀을 보내주셨다. 다소 멋쩍게 인사 나누다 보니 괜스레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울컥했다.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마지막 회식은 참여해 볼까, 생각을 했다. 늘 그랬듯 송별회 이후에는 뒤풀이가 마련되어 있었다.



 보통 회식은 가벼운 1차 자리와 그 이후로 나뉜다. 1차 자리가 끝나면 바쁜 사람들은 이때 모두 자리를 뜬다. 나도 '도망 단골'이었기 때문에 늘 이 타이밍 즈음 함께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회식에 끝까지 함께 하리라'고 해놓은 말도 있고 해서 도망 않고 마련된 2차 장소로 함께 향했다. 작은 포차였고 손님은 거의 우리뿐이라 조용히 대화 나누기 좋았다.


 몇 년씩 같이 일하면서도 이날 처음으로 업무 외의 대화를 나눠 본 선생님들이 있었다. 이제 완전히 떠나는 사람이 되어 그런지 이전보다 편하게 서로의 마음들을 터놓았다. 감사하게도 서로를 좋게 보았던 관계가 있었는가 하면 업무 관계로 얽혀 조금은 편치 않은 구석이 있는 관계도 있었다. 술잔을 나누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누니 그 작은 응어리들은 순간에 사라졌다. 진심을 서로 오해하며 지냈던 시간들 되짚으니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가면을 썼던 우리 모두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여리고 선한 집단이 왜 악착같이 굴게 되었는지. 작은 이해관계들에 왜 그리 예민하게 굴게 되었는지.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기였다. 떠날 때 되니 이 싫었던 분위기가 되레 정겨워 피식한다. 각자의 이야기들을 나누다가도  어쩔 수 없는 화젯거리의 제공자인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진다. 여태 지인들에게 여러 번 했던 말을 또 한 번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는 진지했고 누군가는 별 관심 없었다. 누군가는 하고픈 말 많았겠지만 입밖에 내지 않고 조용히 응원해 주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간 정말 멋진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싫어했던 회식 문화. 하지만 문화에 대한 호불호보다 앞서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동료들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선생님께 이런 낭만적인 면모가 있었구나, 이 선생님의 가치관이 정말 멋지구나. 떠날 때 되어서야 이것저것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보다 깊은 인연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 영원한 떠남은 없다. 이 직장과 지역을 떠나더라도 인연이라면 언젠가 더 멋진 자리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을 가지는 것은 혼자서 가능할지라도 오래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옴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여기에서 스친 굵고 가는 인연들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일말의 부끄러움 없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또한 기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너그러움을 가지며 스쳐간 모든 사람의 축복을 빌어줄 수 있는 멋진 사람 되리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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