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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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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Feb 21. 2024

이사가 주는 감정들

 2월은 이사 시즌이다. 정확하게는 교사들의 이사 시즌이다.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받아 기존의 터를 떠나는 사람들. 설렘과 긴장 그 어딘가에서 마음 졸이며 3월의 새 학기를 기다릴 테다. 터를 옮기는 데 신경 쓸 것이 어디 직장뿐이랴. 이맘때쯤이면 청년 교사들은 새로운 자취방을 구하는 일에도 여념 없다.


 여태의 2월은 내게도 그러했지만 올해는 사뭇 다르다. 학교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 때문에. 이번에 겪을 이사는 자취하는 터를 옮긴다기보다는 자취를 끝내는 행위이다. 6년 간의 외지 생활을 끝내고 귀향하는 마음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사에 한창인 요즈음 드는 생각들을 짧게 풀어보려 한다.




  버리는 것


긴 자취 생활을 끝내며 이사하노라니 버릴 것이 참 많다. 잡동사니부터 부피가 큰 물건들까지. 여기에다 교직생활 사용하던 것들까지 모아놓으니 생각보다 대작업이다. 덕분에 요 며칠 쓰레기장 단골이 되었다. 어제까지 내 방 한켠을 차지하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쓰레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에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만은 않는다. 고민 없이 버릴 수 있는 것들도 많지만 더러는 버릴까 말까 미련이 남는 경우도 있다. 잘 사용하지도 않지만 버리기에는 괜스레 섭섭한 그런 것들.


 '이 참에 다 버려버리자.'


 한 직업을, 20대를 정리하는 김에 지난 것들 다 정리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간 애매한 것들 하나하나 쌓이다 보니 큰 짐덩이 되었다. 내게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륵 같은 것은 무엇인지를 앞으로 보다 냉철하게 판단 내리며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넘기는 것


 이사 시즌과 함께 중고거래가 한창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애매한 것들은 다 버렸지만 그럼에도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이 있다. 버리기에는 아직 그 쓸모 충분하고 챙기기에는 부피가 부담스럽다. 이번에는 용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승용차로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로 이사 난이도가 높아질까 염려되었다. 때문에 부피가 큰 물건 중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챙기지 않으리라 계획했다.


 그래서 최근 중고거래를 많이 이용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했다. 내 물건을 거래하는 일이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다만 모든 거래가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넘긴 물건이 있었는가 하면,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 것 같은데도 몇 주가 지나도록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쓸모라는 것이 이렇게나 상대적일 줄이야. 내게 쓸모 있는 것이 꼭 남에게도 그렇진 않으며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과연 어떤 쓸모가 있는가. 나의 쓸모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가에 대하여 문득 생각에 잠긴다.



  챙기는 것


 구입한 지 일 년 채 되지 않은 소가구라거나 전자기기, 본가에 가져가도 자주 사용할 물건들은 당연스레 챙기게 된다. 몇 번 오가며 짐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가장 부피가 큰 물건이 옷이라는 것을. 사계절 옷을 다 자취방에 가지고 있던 탓에 생각보다 옷의 부피가 굉장했다. 캐리어를 꽉 채워 몇 번을 옮겨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예상 밖의 수고로움이었다. 이사 초반부터 옷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결국 마지막 번까지도 차에 실린다. 패션에 신경을 유달리 쓰지는 않는 타입인데도 이 정도인 것을 보면 소위 '패션 피플'들은 이사할 때 옷만을 위한 용달 트럭을 한 대 불러야 할 정도이겠거니 싶었다.


 나의 외관을 표현하고 꾸밀 옷이 이리도 많았다. 저마다 색깔도 모양도 재질도 다양하다. 옷이 숨기고 있는 '나라는 사람'은 어떨까. 옷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과연 나를 덮은 모든 천조각들이 꾸밀 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여태 외면만큼이나 내면도 가꾸고 신경 썼던가, 나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에너지를 투자했던가를 반성도 해본다.




 시작을 위한 떠남이기에 큰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정들었던 도시였지만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급함으로 요즘은 되레 답답하게도 느껴졌다. 이곳에서의 기억들, 시간 더 지나고 나면 내게 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지.

 거하는 곳보다 중요한 것이 살아가는 태도가 아닐지 생각도 해본다. 요즘은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기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리란 마음을 매일 먹는다. 현재에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훗날 과거로서 돌아볼 지금이 더욱 빛나고 있지 않을지. 꽤나 나은 사람 되어있을 미래의 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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