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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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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Feb 28. 2024

이 성격 누굴 닮았나 했더니

 이사하며 핸드드립 기구들을 챙겨 온 김에 엄마께 커피 내리는 법을 알려드리고 있다. 평소 커피를 즐기셨기 때문인지 아주 흥미를 보이며 배우신다. 처음에는 조금 헷갈려하다가 몇 번 해보고 난 후에는 제법 흉내를 내신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이것저것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셔서인지 배움이 빠른 편이다. 하루이틀 가르쳐 드렸더니 이제는 아침마다 원두 가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깬다. 알람이 필요 없다.


  가장 무난한 드립 방법을 알려드렸다. 그 방법을 몇 번 해보시더니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원두 분쇄도를 이리저리 바꾸어 보기도 하고 추출량을 바꿔 보기도 하고 원두 양 자체를 바꿔보기도 한다. 오늘은 기어이 새로운 원두까지 주문하시는 것 아닌가. 오랜만에 재미난 장난감이 생기신 기분인가 보다. 사실 커피는 제 입맛에 맛있는 것이 가장 최상품이라 할 수 있으니 바람직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 덕에 나도 옆에서 구경하고 시음하며 경험적 지식을 쌓았으니 윈-윈 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울고 익힐 때에 그 기저를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러 변인들이 작용할 때 결괏값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짚고 넘어가고픈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이런 '집착'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여기 있었다. 왠지 반가웠다.

 여태 스스로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여겼다. 생김새는 부모님의 반반이지만 성격이나 기질은 대부분 아빠의 것을 가지고 나지 않았으려니 했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뜻밖의 상황 덕에 내게 엄마의 피도 절반이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커갈수록 내게서 부모님의 모습을 본다. 그런 순간들마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건 아닐까'라던가, '병원에서 바뀐 건 아닐까'같은 우스갯 염려들 쏙 들어간다.



 내가 제공해 드린 원두가 꽤 마음에 드셨나 보다. 게다가 엄마는 입맛이 까다롭고 예민한 편이다. 엄마의 입맛에 맞다면 웬만큼 맛있다는 방증이다. 뿌듯했다. 평소에는 캡슐 머신이나 드립백 형태로 커피를 드시다가 신선한 원두를 즉석에서 분쇄해 커피를 추출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민수야, 입맛이 높아졌는지 이제 원래 먹던 커피들은 못 마시겠어."

 집에 쌓인 커피들을 다 버려야 할 판이다.






 "내일은 약속이 있어서 같이 아침 커피를 못 내려 먹겠네."

 엄마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나도 엄마도 요즘 함께 커피를 내리고 수다 떠는 아침 시간이 퍽 즐거운가 보다. 아쉬운 대로 나 혼자 커피를 내려 마셔야겠다. 재미는 좀 덜할 거다. 오늘은 알람을 설정하 자야겠다.


  엄마는 곧 엄마만의 커피 레시피를 만들어 낼는지. 요 며칠 엄마의 열정을 지켜보며 배움에는 나이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배운다. 배움의 기회는 애써 찾아다니지 않아도 도처에 널려있음을. 삶을 살아가는 한 평생 배워야 할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아무쪼록 엄마의 커피 개발이 멋지게 마무리되어 아들에게 뽐낼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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