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and the City 홍합찜 / 짬뽕과 네덜란드 벨기에
태어난 곳이 바다와 가까워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 식탁에는 해산물이 항상 올라갔다. 데친 낙지, 민어구이, 바지락 국, 고등어 무조림, 갑오징어 숙회, 금풍생이 구이, 서대회, 갈치속젓, 전어밤젓, 오징어젓갈, 명란젓, 조기매운탕, 꼬막무침, 멸치 김치찜, 꽃게탕, 주꾸미 볶음, 갈치구이, 굴을 넣은 시원한 뭇국....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대부분 해산물 중심인 것은 어렸을 때의 기억과 자라면서 먹었던 음식이 그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어머니와 함께 아침 일찍 해산물을 사러 오일장에 자주 갔었다. 싱싱한 해산물이 길거리에 놓여있고, 현금을 주고받으며 검은 비닐봉지에 여러 가지를 담아주는 그 순간과 시장에서 나는 신선한 바다내음은 매번 즐거운 경험이었다. 지역 특성상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다른 지역 사람들이 먹지 않는 특별한 별미 들고 많이 먹었고, 아침상에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요리해서 올려주시는 그 음식들이 좋았다.
일본에서 살 때는 슈퍼마켓에 한국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생선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고, 구워 먹을 수 있는 생선도 많았다. 만원 정도면 참치나 참돔 같은 품질의 회도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 맥주와 함께 들고 돌아갈 수 있어서 식생활에 있어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생선이나 조개 같은 음식들이 매우 비싸고 그다지 신선하지 못하며, 그 종류도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네덜란드나 벨기에에 갔을 때 화이트 와인을 넣은 홍합을 처음 먹었을 때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사실 겨울이 되면 제철인 홍합을 먹을 수 있는 게 겨울이 기대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특히 마늘과 파가 들어가고 화이트 와인이 들어가 비린맛을 잡은 벨기에식 홍합은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깊은 바다의 향기와 맛이다. 특히 내가 네덜란드의 홍합을 좋아하는 이유는 냉동이 아닌 조개를 먹는 것은 유럽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네덜란드나 벨기에에 가면 보통 네덜란드식 샌드위치나 홍합찜을 자주 시켜 먹는데, 그 이유는 신선하고 짭짤한 맛이 한국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다.
네덜란드에서는 서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한 것 치고는 해산물을 잘 먹는데, 그 이유는 바다가 가깝고, 뻘이나 모레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넓게 분포하고 있고, 농사나 목축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좋지 않아서, 굶주린 사람들이 바다에서 식량을 조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네덜란드는 여러 왕국들의 지배를 받거나 침략을 받은 못 사는 나라였다. 프랑크 왕국, 신성 로마 제국, 부르고뉴 공국에 이어, 스페인의 식민지로써 오랫동안 고통받는 네덜란드는 언제나 궁핍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더치페이가 네덜란드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고기나 밀가루 같은 것이 항상 부족해서 부족한 음식을 조달하려고 하다 보니, 홍합 같은 조개류를 많이 섭취하게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중세시대에는 종교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착취당했던 서민들이 넓은 해안가에서 추운 겨울에 조개를 줍고 다녔던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것을 집 앞에서 기르던 파와 함께 넣어 먹다 남은 와인과 함께 끓여 먹던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맛있는 홍합을 현재까지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현대에 태어난 나에게는 이제 별미가 되어준다.
내가 사는 독일에서는 보통 해산물의 경우 대부분 냉동이 되어있고, 슈퍼마켓에 가면 대구나 아귀 같은 흰살생선이 대부분이고 1kg에 몇만 원이나 하는 매우 고급식품이다. 반면에 고기는 매우 저렴하다. 하지만, 홍합의 경우 1-2kg 정도 하는 커다란 팩이 4000-5000원이면 살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먹을 수 있다. 네덜란드산 홍합은 한국의 홍합처럼 양식으로 키우는데, 북해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물에서 키워서 알맹이가 크고 식감이 탄력 있는 편이다. 그리고 사전에 세척을 잘해서 홍합에서 나오는 털이나 이물질이 한국의 것에 비하여 적은 편이다. 겨울에 나오는 홍합은 껍질이 단단해서 검은 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나는 보통 홍합을 사 와서 짬뽕을 해 먹는데 그 이유는 한국에서 먹던 짬뽕을 잊을 수 없어서이고, 그 매콤한 국물이 주는 충족감을 다른 유럽 음식들이 채워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사 온 홍합은 하루 정도 냉장고에 보관되었다가, 이물질을 씻기 위해 물에 넣어서 장갑을 낀 손으로 잘 비벼서 씻어준다. 그러고 나서 물에 잠시 넣어서 잠시 해감을 해주고, 야채들을 씻기 시작한다. 파와 양파 배추 그리고 청양고추를 잘 손질하고 냉동해서 파는 믹스 해물을 녹인 다음. 커다란 솥에 파를 식용유에 볶는다. 어느 정도 향을 내고 나서 홍합을 넣고 볶아주는데 그때 맛술이나 청주 대신에 화이트 와인을 넣어 비린내를 잡아준다. 너무 많이 볶지 않고 나서 물을 넣고 가는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하게 끓여낸다. 그러고 나서 굴소스 국간장 소금 등으로 간을 해주고 해물과 배추와 양파를 넣고 나서 가볍게 끓여주면 짬뽕이 된다. 도중에 물에 끓여놓은 중화면을 뜨거운 물로 씻어준 후에 넣어주면 한국의 짬뽕 맛과 거의 같은 맛이 나게 된다.
나는 돼지고기나 마늘을 넣지 않는데, 이유는 깔끔한 국물을 위해서이다. 깊은 맛은 홍합 본연에서 나오는 조개국물로 감칠맛을 잡고, 매콤한 향이 사라지지 않도록 마늘을 사용하지 않고, 색이 변하지 않게 고춧가루도 기름에 볶지 않는다. 이것이 홍합을 최대한 활용한 레시피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심플하게 맛을 낸다.
독일의 겨울은 길고 어둡다. 비도 내리고 습도가 높아서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진다. 집에 와서 짬뽕을 한 그릇 먹으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힐링타임이 되어 월요일에는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오늘 저녁은 어제 사온 맥주와 남은 홍합으로 벨기에식 찜을 해 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