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GO Oct 16. 2020

단맛의 추억

Food and the city - 오스트리아 비엔나 자허토르테

사업부장과의 유럽 출장은 처음이었고, 며칠간 부장님을 케어하고 밤에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격무에 시달리던 나는 리프레쉬가 필요했다. 그날은 주말이었지만, 주중까지 머물었던 독일에서 하루정도 일찍 오스트리아로 이동한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미술관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나는 미술관까지 가는 길에 있는 카페에 들려 10년 전에 먹어서 생각보다 맛있지 않아서 실망했었던 초콜릿 케이크인 자허토르테를 먹기로 결정했다.




-자허토르테??-

자허토르테와 유사한 레시피는 18세기 초 두 가지 요리책에서도 이미 소개된 바 있다. 1832년 오스트리아의 외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후작은 중요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그의 직속 요리사에게 특별한 디저트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몸이 편치 않았던 요리사는 자신의 아들이자 수습생이었던 프란츠 자허에게 일을 맡겼다. 프란츠 자허의 토르테는 귀족의 방문객에게 큰 호평을 얻었지만 바로 더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그 후 수습 기간을 마친 프란츠 자허는 브라티슬라바와 부다페스트에서 생활을 하였고 마침내 고향인 빈으로 돌아와 육가공품, 와인을 파는 가게를 열어 정착했다.


그의 첫째 아들인 에두아르트가 그의 식품 사업을 이었고 그 자신 또한 빈의 데멜 베이커리에서 수습기간을 거쳐 초콜릿 요리를 공부하며 프란츠 자허의 자허토르테를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자허토르테는 데멜에서 처음 시중에 나오게 되었으며 그 후 에두아르트가 1896년 설립한 호텔 자허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허토르테는 가장 유명한 빈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가 이야기가 끝이 아니다. 호텔 자허 사장의 딸과 데멜 과자점 사장의 아들이 결혼하면서 데멜 쪽으로 조리법이 새어나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낭설로 밝혀졌다. 사실은 이 케이크로 대박을 쳤던 호텔 자허는 에두아르트의 아들 에드문트가 사장을 역임하던 1930년대에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이때 황실에 과자류를 만들어 진상하던 유서 깊은 과자점 데멜(Demel)에서 호텔 자허에 회생 자금 지원을 대가로 자허토르테의 조리법과 판매권을 사들였다. - 위키백과-


-비엔나의 추억-

나는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자주 먹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단 것은 그다지 먹지 않고 식사에 더 집중한다. 그날따라 초콜릿이 먹고 싶었던 것은 비엔나커피를 마시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커피도 사실 즐기지 않는다. 예전에는 자주 마셨었지만, 커피를 마시면 잠을 깊게 자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마시지를 않는데, 하지만 그날은 우유 거품이 올라간 향기로운 비엔나커피와 함께 아주 진한 초콜릿과 달콤한 잼이 들어가 있는 자허토르테를 먹고 싶었다.


길을 걷던 우리는 자허토르테를 파는 카페 앞에서 줄을 섰고, 약 30분 정도가 지나자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카페는 2층으로 되어 있었고, 고급스러운 장식에 잘 진열된 초콜릿과 쿠키들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의 하나에 온 것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그런데 회사 상사와 함께. 그것도 남자 둘이서 팬시한 카페에서 앉아서 달콤한 케이크를 먹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경험이다. 우리는 둘 모두 비엔나커피와 자허토르테를 시켰고, 잠시 후 내 앞에는 10년 전에 먹었던 것과 같은 자허토르테와 커피가 놓여 있었다.


커피에는 담백한 우유 거품이 올라갔지만 안쪽에는 진한 향을 가진 커피가 단것과 잘 어울리는 맛이었고, 자허토르테는 매우 달지만 농축된 맛이라서 피로로 입맛을 잃어가던 나에게 입을 통해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자극적인 맛이었다. 10년 전보다 훨씬 맛있어지고 고급스러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10년 전 내가 처음으로 오스트리아에 왔던 것은 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왔을 때이다.  당시에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정식으로 일하기 전에 집에서 하던 식당일을 도와주고 받은 3달간 모은 월급으로 배낭여행을 했는데, 회사를 들어가기 전 대학교 후배와 함께 터키를 여행한 후에 서로 헤어져서 각자 여행하고 싶은 곳을 여행하는 여정이었이었다. 


나는 터키를 여행한 후 슬로바키아로 들어가서 비엔나를 들렸다가 체코를 여행하는 여정이었다. 비엔나에서는 한인민박에서 머물렀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서 버스를 타고 비엔나로 들어가던 중 야간 버스를 탔는데, 거기에서 키가 크고 비니 모자를 쓴 얼굴이 하얀 이상한 남자가 버스 안에서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다가 중간쯤에 앉은 젊은 아시아계 여자들에게 계속해서 장난 비슷한 시비를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았는데, 내가 제지를 하자 내 뒷자리로 오더니 나를 뒷자리에서 노려보기 시작했다. 큰 가방을 가지고 있어서 가방 안에 칼이나 둔기 같은 것을 숨겨두지는 않았을까 계속해서 걱정했었지만 여자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어두운 버스 안에 여자 둘, 사이코 같은 남자 하나 그리고 나까지 승객이 4명이었는데, 약 1시간 반 정도 계속해서 나를 노려보던 사람은 비엔나에 도착하자 나에게 욕을 한 바가지 (아마도) 하더니 자기가 갈 곳으로 사라졌다.


매우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싸움까지는 번지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그 뒤 여자 두 명과 나는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내 쪽에 앉았었던 여자들이 한국인이고 내가 머물 예정이던 한인민박에 머물고 있었다. 둘 모두 나보다 5-8살 많은 누나들이었고, 누나들이 그 이상한 남자의 장난을 멈춰준 보답으로 저녁을 사주기로 하여 우리는 와인을 몇 병이나 함께 마셨다. 그러고 나서 다시 민박집에 들어와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새벽 몇 시까지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로 고주망태가 되도록 많이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기는 힘들었지만 다음날 비엔나에서 유명하다는 자허토르테를 함께 먹으러 가기로 약속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모였다.


셋 다 숙취에 힘들어하며 숙소에서 카페까지 열심히 움직여,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먹었는데, 아마도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맛이나 향이나 맛이 잘 느껴지지 않고, 느끼하게만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비싸기만 하고 별거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 여행지로 발을 옮겼다...


그게 벌써 10년 전인데 이제 다시 돌아와 직장상사와 함께 추억의 카페에 들어와 당시 먹었던 추억의 음식을 먹으며 그 당시의 인연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긴장감 속에서 만난 인연들과의 즐거운 추억...

이제는 더 이상 배낭여행을 하지 않지만, 당시의 긴장감과 즐거움은 그대로 남아있다.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서 특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달지만 씁쓸하고 그래서 계속해서 원하게 되는 초콜릿이나 커피처럼 중독성이 있어 내가 하는 일도 출장이 많은 직업을 고르게 되었다. 부장과 함께 먹는 자허토르테와 비엔나커피는 매우 맛있었지만, 아마도 10년 뒤에 다시 생각난 만한 추억이 되지는 못할 거 같다. 

이전 02화 달밤 아래 그린 카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