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and the city - 일본 오이타현의 달걀과 간장-
갑자기 너무나도 일을 하기 싫어서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데 메일을 쓰면서도 집중이 안되고, 서류를 읽으면서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날. 아마도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일식이 먹고 싶어서 근처 일본 슈퍼에서 사 온 돈가스 도시락이었다. 오랜만에 먹은 돈가스는 그저 그런 맛이었다.
조그만 돈가스 6-7조각. 오이를 절여서 만든 오이절임. 콩줄기와 당근 그리고 튀긴 두부를 볶아서 가쓰오부시 국물로 졸여낸 반찬까지. 몇 가지 음식이 올라가 있는 아주 평범한 점심이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돈가스의 바삭한 맞은 사라졌고, 오이절임이 따뜻해져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따뜻해진 맹맹한 맛의 절임 반찬이었다. 그리고 소스도 부족해서 만족감이 덜했다 보다.. 하기만 먹고 나서 더부룩하게 내 위를 눌러오는 그런 종류의 식사였다.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에 먹은 기름진 음식이라 그런지, 아니면 잠을 자면서 몇 번이고 일어나서 그런지, 몸이 나른하고 정신이 몽롱해서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음악도 들어보고 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서 최대한 미스를 줄이는 등의 일하는 루틴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대학교 시절, 보통 아르바이트를 오후 4시 정도에 시작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밤 8시나 9시쯤이었다. 내가 일하던 주유소는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지역 이름도 하루 키가와(봄의 나무가 있는 강)라고 하는 일본의 오이타현 벳부라고 하는 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해변 근처에 있어서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와서 계절을 느끼기 좋은 아르바이트였다.
그곳에서 나는 주유를 하고 세차도 하고 타이어 공기압 체크하고 엔진오일을 체크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덥거나 춥거나 뛰어다니며 일했었다. 당시에는 일본어를 잘하지도 못했고,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할 때지만 내 인생에서는 두 번째 아르바이트였고, 재미있게 1년 반가량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아직도 생각이 난다. 대학교 2학년 때 기숙사에서 나와서 바다 쪽의 집으로 옮겨 가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일본어도 연습할 수 있어서 내게는 1석2조의 일이었다.
단지, 학교에 다녀와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밤 8시 정도가 되었는데, 배가 고파서 뭔가 식사를 준비해서 먹기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보통은 편의점이나 도시락집에서 사 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간단히 때우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가끔씩 먹었던 계란밥이 생각난다. 계란밥은 날달걀을 갖지은 밥 위에 올려서 비벼 먹는 아주 간단한 식사인데, 일본 사람들은 달걀 하나를 밥 한 공기에 올려서 먹는데, 조금 질척거리는 느낌이 난다.
나는 뜨끈한 밥에 신선한 달걀의 노른자만을 올리고, 살짝 노른자를 깬 다음 그위에 간장을 듬뿍 뿌려서 조금씩 섞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운 김이나 김치와 함께 먹으면 어느새 한 공기가 게눈 감추듯이 사라진다. 다음 공기는 따끈한 밥 위에 버터를 올리고 거기에 간장을 살짝 뿌리고 잘 비벼서 윤기가 나는 밥을 입으로 가져가면 담백하고 짭짤한 맛이 일품이다.
일본의 간장은 지역별로 맛이 다른데, 관동지방의 간장은 짠맛이 강하며, 규슈지방의 간장은 달달한 맛인 것이 크게 차이 난다. 우리나라의 양조간장이 관동과 규슈지방의 중간 정도의 맛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달달하고 진한 맛의 간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콩으로만 만든 간장이 아닌 밀을 첨가 해서 모로미라는 것을 만들고 곰팡이균을 넣어서 만든다. 메주를 만들지는 않고, 반죽에 바로 소금물을 넣어서 오랜 시간 발효하고 숙성을 하는데, 매우 진한 간장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바로 이 달달한 간장이 계란밥에 빠져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이제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더 이상 달걀밥을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먹고 나서 위에 부담을 주는 식사를 하고 나면, 생각이 난다. 하루키가와는 이제 가을이 되어 하늘은 파랗게 물들고, 지금은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 가운데 석양이 지는 바다 쪽을 보면서 잡다한 생각을 하고 내가 있는 아직도 있을 듯하다. 그러다가 주유소에 들어오는 차가 들어오면 달려가서 주유를 하러 가는 내가... 오늘 저녁은 뭘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