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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GO Jul 23. 2020

스마트폰과 밥 한 그릇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나를 찾아 떠나 본다.


19살에 순천에 위치한 집에서 나와, 지금까지 해외에서 생활한 지 15년이 되어간다. 일본에서 13년 그리고 2년 정도 독일에서 살고, 이제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내 인생에 존재한다. 필자는 인생의 절반을 해외에서 바쁘고 치열하게 살면서 주변에만 시선이 팔려서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특히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라는 좋은 주제와 기회가 있었기에 나를 위해 한번 글을 써보고자 생각했다.


10년이 넘게 멀리 살아서 자주 못 보는 불효하는 아들. 언제나 출장이 많아서 고생만 시키는 남편. 자주 혼내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 아버지. 자주 연락을 하지 않고 자주 못 보는 대면 대면한 친구... 모두 나에 대한 정의로 맞는 설명이지만 모두 3인칭의 입장에서 나를 정의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주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기준이나 그 상황과 역할의 나를 정의하고 평가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스마트폰을 보고 티브이를 보고 컴퓨터를 보고.. 하루 10시간 이상 무엇인가를 보면서 생활한다. 요즘 사람들은 3인칭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익숙해져서 자기 자신도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을 책의 등장인물이나 게임의 NPC 같은 존재로 보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조금만 창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너무나도 자세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비치는 3인칭의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고 비관하며 비교 평가하여 삶에 의욕이 없어지는 경우도 주변에 많이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30대가 소외받는 세대라고 하여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관해서 더 비교하고 비하한다. 그래서 요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소확행이나 힐링 같은 우리 세대에게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유행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어떤 곳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를 하는지를 찾는 것 그것이 나답게 해주는 것을 찾는 여정에 있어서 아마도 좋은 실마리이지 않을까?


나를 위한 무언가 : 식사


식샤를 합시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 심야식당 같은 드라마에서는 원초적인 먹는 행위라는 것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한다. 특히나 요즘 드라마에서 먹는 것은 빠지지 않는 트렌드이다. 드라마를 전부 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을 봐서는 음식과 얽힌 사람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면서 스토리를 진행하리라 생각된다. 서로 다른 환경이나 장소에 있는 각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로서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매우 사용하기 쉬운 도구이다. 모든 것은 밥 한 그릇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밥을 영양가 있고 잘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긴 조리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몇만 년간 밥을 먹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다루었고, 밥 먹는 시간만큼은 불 앞에 친구나 가족들이 같은 시간에 모두 모여 함께 식사를 해왔다. 이것은 우리의 유전자나 문화에 남아있어서, 밥을 먹을 때만큼은 보통은 경계심을 풀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된다. 우리 안에는 불 앞에서 가족들과 모여 외부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식사를 한 인간의 시간이 몇억 시간에 걸쳐 쌓여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명절에는 할머니나 어머니가 해주시는 명절 음식을 먹으면서 가족들이 모였던 기억. 대학교 때는 기숙사에서 모두 모여 음식을 만들어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매일 저녁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 여자 친구와 때로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낸 기억. 불만이 찬 나를 보고 회사 상사가 데려가 준 꼬치구이 집의 기억. 친구들과 밤하늘을 보며 바비큐를 하면서 새벽까지 맥주를 마시던 기억. 그 시간과 기억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중요한 추억이 되어있다. 기억 안에서 나는 3인칭의 내가 아닌 1인칭의 나라는 사람이 된다. 


밥 한 그릇.


오랜 해외생활에서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음식을 하는 요리와 그것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실 먹는 것만 아니라 요리하는 과정과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 모두를 즐겨하는 사람이다. 보통 주말마다 친한 사람들을 불러서 음식을 해서 함께 즐기는 것을 즐겨할 정도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여유가 없고 힘들 때 익숙함을 주는 음식들이나 내가 만든 음식이 나에게 만족을 줄 때이다.


동경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었다. 기숙사에는 회사 선배가 많이 있고, 밥은 식당에서 급식처럼 나오는 식사를 아침과 저녁에 먹었다. 예를 들면 닭튀김과 토란 조림 샐러드 그리고 된장국과 밥이 함께 저녁에 나온다고 하면, 아침에는 생선구이 낫토 그리고 미역국과 밥이 나오는 전형적인 일본 음식을 먹게 된다. 처음에는 바쁜 회사생활에 지쳐 요리를 할 의욕이 없었지만, 일에 익숙해지고 점차 기숙사에서 나오는 식사에 지쳐갈 무렵, 나는 한국의 집밥이 너무 그리워졌다.


1년 정도를 기숙사에서 생활한 후 나는 기숙사에서 나와서 집을 빌려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함께 해서 먹은 음식은 삼겹살에 된장찌개 그리고 따뜻한 밥이었다. 우리는 함께 정육점에 가서 삼겹살을 두껍게 썰어와 프라이팬에 올려 노릇하게 굽고, 나는 두부와 감자를 넣고 마늘을 한 스푼 넣은 후 된장과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은 후 양파를 넣어 된장찌개를 만들었다. 밥은 전기밥솥에서 꺼내서 뜨거운 밥과 함께 삼겹살을 먹고 나서 소주를 한잔 마시며, 그날 우리는 스마트 폰을 보지 않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회사생활이나 대학 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보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일본에서 보내고 독일의 뒤셀도르프라는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가까운 도시로 부임받아 나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독일에 도착한 첫날이었던 토요일에는 선배가 나를 위해 비빔컵이라는 식당에 데려다주었다. 식당 이름도 난해한 한국 식당이었지만, 내가 시킨 제육볶음 역시 내가 생각했던 제육볶음의 맛이 아니었다. 

일단 고추장의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으로 매운맛을 내고 파프리카나 양파 그리고 양송이버섯이 넣어 독일 사람들이 원하는 양을 위해 타협한 맛의 독일식 한국음식이었다. 그리고 밥은 퍼슬퍼슬해서 내가 항상 먹던 쫄깃하고 따뜻한 식감의 밥도 아니었다.


온몸과 정신이 긴장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머물던 자그만 방에는 전기로 쓰는 인덕션과 냉장고 그리고 싱크대가 있었다. 휴일인 일요일에는 슈퍼마켓이 닫혀있어서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월요일 일이 끝나자마자 쌀 양파 독일식 소시지 고추장 김치를 사 와서 일단은 양파 껍질을 벗기고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볶은 다음 양파와 함께 볶아냈다. 밥은 냄비로 해서 조금 탔지만 먹을만했고, 소시지 양파볶음은 노릇하게 구워졌다. 나는 고추장을 밥에 비비고 소시지 양파볶음과 김치를 먹으며 나는 내가 가진 시간을 만끽하며, 외지에 와서 지쳐있던 나에게 힐링을 선물했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요리를 하고, 먹으면서 그때 느낀 만족감이란, 외국인 노동자인 나에게는 큰 만족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고 먹어온 밥 한 그릇 한 그릇은 나에게 양분이 되고 기억이 되고 우정이 되었고 나 자신이 되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그 시간이자 경험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만들어 주시고,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해온 시간과 밥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하루에 몇 시간씩 자신과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밥 먹는 시간은 나를 거쳐 내 아이들의 기억과 유전자에 남을 것이고, 내 아이들은 또 다른 내가 되어 나와 같은 경험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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