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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GO Jun 08. 2020

우한아래 빨간가재

Food and the city 우한 (중국) - 마라롱샤 (매운가재)

지금은 코로나의 발원지로 국제적으로 유명하지만, 얼마 전까지 우한이라 하면 한국인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였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후베이성의 성도로써 매우 유명한 도시이다. 우리가 잘 아는 양쯔강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물이 많아 강에 사는 물고기로 유명한 곳이다.


필자는 출장으로 중국 담당으로 5년 정도 연간 7-8번 정도는 중국을 방문했는데, 상해 북경 청도 우한 등을 자주 방문했다. 우한에는 디스플레이 업체가 있어서, 그곳에는 한국에서 일하던 각종 기술자와 설비업체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 음식점도 많고, 도시에도 활기가 넘치는 상업도시로써 인상적인 도시였다.


-마라롱샤-

하지만, 언제나 습도가 높은 날씨와 공장의 매연으로 인한 희뿌연 하늘은 내 마음을 개운치 못하게 하였다. 특히 미팅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을 경우에는 더 마음이 찌뿌둥했다.

그럴 때는 매운 음식이 당기는데, 중국의 매운 향신료의 복합체인 마라로 양념한 음식을 먹는 것을 즐겼다.  우한의 경우 주변에 연못이 많은 만큼 민물가재가 명물로, 한국에서 유행하는 마라샹궈와 같은 양념으로 국물을 자작하게 매콤하게 볶아낸 우리나라의 해물 찜 같은 형식으로 음식이 나온다. 

우한에는 유명한 가재 가게가 많이 있고, 유명한 가게 같은 경우에는 2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일반적일 정도로 맛집이 많다. 가게 앞에는 아주머니들이 가위를 가지고 몇천 마리나 되는 가재를 손질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애완용으로 키웠었던 미국 가재와 같은 색과 크기였다. (물론 미국에서도 가재를 먹으니,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주 간 가게는 그 지역에서 3번째 정도로 유명한 가게였는데, 다행히 가게가 커서 언제나 바로 들어가서 먹을 수 있었다.


마라롱샤

르깐면


항상 매운 가재 볶음 그리고 그지역의 유명한 면요리인 땅콩소스를 뿌린 면(르깐미엔)을 시키고 맥주를 몇 병 추가했다. 가재가 나오면 비닐장갑을 끼고, 머리를 뜯고, 배에 있는 껍질을 전부 벗겨낸 후 살을 발라내어 입으로 가져가면 후추와 산초의 향이 코와 혀를 자극한다. 한 개를 먹으면 입안이 기름지고, 두 개를 먹으면 매콤함이 입안을 감돌고, 세 개를 먹으면 혀가 마비되어 얼얼해지고, 4개 이상을 먹으면 맥주를 들이켜도 입술에 느낌이 없어진다. 하지만 그게 더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해서 맥주와 가재를 무한 반복해서 먹게 되는 루프에 빠지게 된다. 


-산초의 향-

사실 산초 자체를 한국에서는 별로 즐기지 않지만, 민물생선을 먹을 때 잘 어울려서 필자는 매우 좋아하는 향신료이다. 어렸을 적에 내가 살던 지방에서는 산초를 조피라고 하며, 초피나무의 열매가 검붉게 익어가면 절구에 빻은 후에 추어탕이나 붕어찜 그리고 김치에도 넣어서 먹었다. 당시에는 보통 먹던 김치와 맛이 달라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맛이다. 할머니가 담아주신 김치를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일본에서는 민물장어를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산초가루로, 장어를 손질하여 찜기에 찐 다음 간장 양념을 바른 후 숯불에 굽고, 도톰하게 잘라서 밥 위에 올리면 우리가 잘 아는 일본식 장어덮밥이 완성된다. 매년 일본의 설날이 되면 회사 선배들과 함께 고객들에게 인사를 간 후, 장어덮밥을 먹으면서 한해를 축하하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그때도 산초가루를 장어 위에 뿌려서 산초 향을 숯불향에 더해 먹었던 기억이 남는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고향에서 먹었던 산초와 일본이나 중국에서 먹었던 산초는 같은 맛이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른 음식과 다른 추억과 함께 내 안에서도 자리 잡아갔다. 어렸을 때 처음 먹었던 산초는 입과 목을 자극해서 음식에 들어가면 그 향만 맡아도 싫어했다. 하지만, 음식과 함께 추억이 쌓여가며, 그 향과 입을 따끔 따끔 하게 자극하는 산초의 매력이 좋아서 산초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은 산초가 들아간 음식을 먹으면 여러 가지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향.. 그리고 몇 년이나 생활한 일본... 중국... 내 나이 마흔까지 몇 년 남지 않은 오늘은 또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떠올리게 될까?


내 아이들은 내가 먹던 음식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아 평생 그 음식을 그리워하고, 그 음식을 먹으면 내가 이 세상에서 언젠가 사라지고 나서도 나를 그리워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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