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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GO Oct 14. 2020

달밤 아래 그린 카레

Food and the city - 태국 치앙마이 그린 카레-

2박 3일의 정글 트래킹을 태국의 치앙마이 근처에 있는 산으로 가기로 가기로 한건 태국의 배낭여행이 열흘 정도 남았을 때였다. 2002년도 월드컵이 있었던 해에 수능을 끝내고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태국으로 내 인생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각자 수중에 있는 돈을 여행자수표로 600달러 정도를 환전해 와서 복대에 넣은 후,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방콕에 도착했을 때는 아마도 12월 정도였을 것이다. 1달 정도 여행을 계획해서 갔는데, 우리는 방콕에서 1주일  그리고 치앙마이를 간 다음에 아유타야에서 휴양을 한 후에 푸껫 근처에 있는 피피라는 섬을 가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방콕의 까오산에서 재미있는 여행을 마친 후, 우리가 치앙마이를 간 이유는  정글을 가로지르는 액티브한 경험인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제한되어 있어, 우리는 버스를 타고 9시간 정도 이동을 했다.


치앙마이는 산에 있는 도시인데, 태국의 북쪽에 위치하여 미얀마와 가까운 태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특히 오래된 건축물들이 많고, 정글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트래킹 프로그램이 많이 발달해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 2박 3일 코스를 선택했다. 원주민의 집에서 2박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한국인들을 모아서 8명 정도의 팀이었는데 형들이나 누나들 그리고 한 명의 태국인 트래킹 인솔자가 함께 하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아침부터 걷기 시작해서 오후 4-5시 정도쯤에 첫 번째 원주민 집에 도착했는데, 일단은 모두 씻고 나서 개인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인솔자인 톰 아저씨와 친해져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하였다.

그날의 요리는 그린카 레와 태국 쌀로 만든 밥. 그린 카레는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일단은 마늘이나 파프리카 양파 등을 자르고, 닭고기 가슴살을 먹기 좋은 사이즈로 손질한 후에 그린 카레 패이스트를 마늘이나 레몬그라스 같은 향신료를 함께 볶은 후 각종 재료를 함께 넣고 코코넛 밀크를 넣으면 되는 간단한 요리였다. 


그날의 그린 카레는 파인애플을 넣은 볶음밥이 있어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원주민 집에서 기른 파인애플을 깎아서 넣는데, 껍질을 잘라낸 다음 바깥쪽에 남아있는 돌기 부분을 깊숙이 잘라 빼낸다. 그리고 심을 잘라낸 다음 한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잘랐다. 톰 아저씨는 나에게 한 조각 잘라서 주었는데, 내가 그때까지 먹은 파인애플 중에 가장 달고 향이 강한 파인애플이었다. 샛노란 파인애플을 넣은 볶음밥은 과 그린 카레는 트래킹에 가장 어울리는 식사임에 틀림없었다.


20대의 2명의 형, 그리고 4명의 누나와 함께 우리는 파인애플 볶음밥과 그린 카레를 먹고 형들이 한 캔씩 준 맥주를 마시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하다가 어른이 된 듯한 착각 속에서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어느새 친해진 누나들과 형은 널찍한 원주민의 집에서 서로 짝을 찾아서 방의 구석 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술을 마시고 알딸딸해진 취기를 느끼고 멀쓱해진 나는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산이라서 그런지 약간 쌀쌀했지만, 태국의 무더운 날씨에 지쳐있던 나에게는 좋은 기분이었다. 산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달이 정말 크게 떠 있었고, 눈 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달빛에 꽉 차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새하얀 메밀꽃들이 달빛에 반사되어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흡사 책에서 본 메밀꽃 필 무렵의 느낌이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바로 그 순간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은 인생에서 연애는 한번뿐이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풍경에 압도되어 있었는데, 형들과는 거리를 두던 누나가 내 옆에 와서 같이 메밀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벌써 17-18년 전이라서 당시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나가 20대 중후반이었고, 부산에서 선생님을 하던 귀여운 외모의  여자였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누웠는데, 누나가 춥고 무섭다며 우리 주변으로 와서 누워서 잤는데, 가슴이 뛰어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그때 일본으로 대학을 가는 것이 결정 나서 10월부터 고시원에서 어학을 배우면서 몇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돈으로 여행을 왔고, 3월부터 일본에서 혼자서 생활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애송이었던 것 같지만.


다음날부터 우리는 친해져서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강을 거슬러 내려오는 뗏목 타기와 코끼리 타기를 끝내고,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피피 섬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편도 13시간 걸리는 버스를 탔다가 그 안에서 돈을 모두 털렸던 일. 오토바이를 친구가 잘 운전하지 못해서 내가 누나를 뒤에 태우고 하루 종일 아유타야의 사찰들을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피피섬에 가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를 찍은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등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에는 모두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라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내 인생 최고의 배낭여행이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나의 마지막 10대의 추억을 함께 해준 누나와 치앙마이가 생각나는 시원한 가을밤이다... 오늘은 싱하 맥주에 그린 카레를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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