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GO May 04. 2021

1884

1화 과거 -1857년 10월 / 갑신정변까지 27년- 굴보쌈

-대경실색-

피카디리거리에서 쓰러지고 나서 다시 일어난 시간은 신시 (아침 5시 가량)였다. 수탉이 아직도 어두운 하늘에 고개를 곧추세우고 크게 울기 시작했다. 내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눈을 뜨려고 해도 눈이 떠지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살짝 구수하고 콤콤한 향기가 코로 들어왔다. 등은 따뜻했지만, 몸 위에 올라가 있는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눈이 떠지고,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어두운 방 안에서 누워 천장을 거쳐 문쪽을 바라보았다. 문에는 창호지가 붙어있었고, 어렴풋한 빛이 종이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수탉은 3-4분마다 울고 있었다. 한 마리가 울자, 조금 지나 다른 수탉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방 안에 앉아서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종로 3가에서 저녁을 먹고 걷던 도중에 주사기에 찔려서 의식을 잃고, 차가운 도로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방안이고, 아마도 한옥 안에 있는 자그만 방안에 있는 것 이리라.


"일어났니? 어서 문안인사드리고 아침밥 먹게 얼굴 씻고 오너라" 어디선가 중년 여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남색 하늘에 해가 뜨는 하늘 앞에 쑥색 저고리와 회색 치마를 입은 40대 정도의 여자가 나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벙 찐 얼굴로 그 여자를 위아래로 보았다.


"뭐하느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느냐? 그리고 너 바지가 축축해 보이는데 혹시 소피를 본 것이냐?"

나는 바지로 손을 가져가 만져보았다. 그렇다. 아까 코로 올라오던 구수하고 콤콤한 냄새는 내가 싼 오줌 냄새였던 것이다. "이런 벌써 7살이나 된 것이 소피라니, 밖에 나가서 소금 받아 오너라. 게 누구 없느냐? 어서 가서 챙이(키)를 가져와라. 일단을 문안인사드리게 옷을 갈아입고 오너라. 어서!!"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옷을 찾기 시작했다. "도련님. 귀생이 들어갑니다. 옷 갈아입으시지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예쁘장하지만 옷에 먼지와 때가 뭍은 살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계집종이 방으로 들어왔다. 내 바지를 벗기고 차가운 무명천으로 다리와 사타구니를 닦아낸 다음 바지를 입혀주었다. 그리고는 서둘러서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어르신. 옥 겸 도련님 들어갑니다요." 문이 열리고 나는 그 방으로 밀려들어 가 듯 들어갔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하던 와중에, 앞에 있는 60대 정도의 노인이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네 이놈. 저녁에 이불 위에 소피를 봤다고 하더니, 정신이 나가 있는 게로 구나. 어서 정신 차리거라"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여기가 어딘지요?" "어허..... 이놈이 아직도 정신이 나갔구나. 여기가 어디라니. 쯧쯧.. 고향에 있는 가족이라도 꿈에서 본 것이냐? 내가 벌써 연통을 넣어 놨으니 곧 편지가 올 것이야. 조금 기다리거라." 아마도 어리숙하고 멍하게 서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손을 저으며 나가가는 듯한 손짓을 하였다. 나는 다시 방으로 이끌려 나갔다가, 물을 들고 온 귀생이라는 계집종이 얼굴과 손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아까 그 방으로 들어가서 앉아 있자, 밥을 들고 온 다른 여자 종이 노인과 내 앞에 밥을 가지고 왔다.


내 앞에는 내 얼굴만 한 밥그릇에 수북이 담겨 있는 살짝 노르스름한 밥과 어른이 먹는 큰 국그릇에 담긴 감자가 들어간 된장국. 그리고 녹두묵을 얇게 썰어서 소금과 들기름으로 맛을 낸 묵무침. 그 옆에는 미나리나물과 자그마한 그릇에 담겨 있는 물김치가 소반 위에 올라가 있었다. 60대 노인이 먼저 물김치를 한입 먹은 뒤 식성 좋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60대 노인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닌 것 같은데, 크게 입을 벌리고, 커다란 숟가락으로 빠르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숟가락을 들어 밥을 입에 넣고, 미나리나물을 입에 넣고 함께 먹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미나리가 질겨서 놀랐지만, 미나리 향은 강하게 났다. 그리고 참기름 향과 함께 알싸한 마늘 향도 함께 나서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미나리나물과 거의 같은 맛이었다. 그리고 물김치는 생긴 것과 다르게 매우 짜고 매우 새콤했다. 무가 들어가 있었지만, 사각거리는 식감이 아닌 질긴 느낌의 무였다. 하얀 녹두묵은 된장국과 함께 가장 입맛에 맞았는데, 둘 모두 간이 간간하게 되어 있어, 국간장의 향과 소금의 맛이 강하게 났다. 예상외로 나도 배가 금방 불어 오르지 않고, 계속해서 밥과 반찬과 국이 계속해서 내 배속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거의 밥공기를 거의 비운 나는 노인의 식탁을 보았다. 어느샌가 식사를 마친 노인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밥과 반찬들은 반 이상이 남아있었다. 밥을 들고 왔던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 종이 소반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방으로 돌아가던 중 아궁이가 있는 부엌 안쪽을 보았다, 그 안에는 여자종 세명이 앉아서 나와 노인이 먹고 남긴 음식을 그대로 나눠 먹고 있었다. 내가 먹는 소반의 그릇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는데, 나를 도와줬던 귀생이라는 계집종이 양이 부족한 듯 빈 밥그릇과 반찬 그릇을 긁어먹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안에 있는 책과 옷가지 등을 찾아보며, 여기가 어디이고 언제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골똘히 생각했다. 책들은 천자문과 소학과 효경이라고 써져 있었는데, 나는 원래 큐슈에서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자를 읽을 수 있었는데, 그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한자를 읽어 내릴 수 있었다. 천자문을 배운 다는 것은 조선시대이고, 내가 7살이라고 했으니, 소학과 함께 한학을 배우는 것은 양반이라는 것이군. 책 위에는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었는데 김옥균이라고 써져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김옥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지금은 대체 언제인가...


나는 대문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커다란 길이 나 있었고 주변에는 집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었다. 커다란 글자로 길 옆에 운종가라고 써져 있었다. 종로의 옛 지명인 운종가는 종루를 중심으로 동서로 커다란 궁궐과 남쪽으로 남대문으로 보이는 문까지 기다랗게 뻗어 있었다. 그렇다. 여기는 나는 조선시대의 종로에 서 있는 것이었다.


몇초 사이에 드디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었다. 나는 현재 7살이고 종로에서 살고 있으며, 지금은 조선시대이다. 나는 타임슬립 한 것이었다. 어떤 이유로.  




 







작가의 이전글 188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