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과거 -1866년 4월 / 갑신정변까지 18년- 두부
-허도세월-
1857년 10월에 조선시대로 돌아온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1851년에 공주에서 태어나 한양에서도 유명한 안동김 씨 세도가의 조카인 김병기의 아주 6살에 양자로 들어와 한양에서 살기 시작했다. 7살이 되던 해의 10월에 21세기의 내가 조선시대의 김옥균이 되어 종로에 있는 양반가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게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현대에 34살이었던 나는 16살이 되어 매일 글을 읽으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하루의 반복되는 생활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옥균이 방에 있는가? 내 종우일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들어오시게."
홍종우는 별채의 사랑방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와 앉아 최근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요즘 경복궁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네. 대원군께서 다시 쇄국정책을 시작하기 시작하셨어. 유럽은 제국주의를 통해 식민지를 만들고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네. 일본도 흑함사건을 계기로 개항 후에 근대적 개혁을 실시하고 있어. 청나라에서는 한족을 중심으로 동치중흥이라는 한족의 통합을 개혁을 목표로 움직이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쯤에 배웠었던 여러 역사 이야기가 다시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역사나 세계사보다는 수학이나 과학에 관심이 있어, 과거에 관련된 일에 관해서는 대부분 알지 못했다. 단지 김옥균이라는 사람이 갑신정변을 성공시켜 조선의 근대화를 성공시켰고, 그로 인하여 내가 조선시대에 온 지 7년 후에 왕위를 계승한 고종은 그에 힘입어 입헌군주제의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전 세계 2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대국이 되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것과 시간적인 상관관계에 관해서는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다. 홍종우의 이야기를 들은 후 무언가 맞장구를 쳐줘야 할 듯해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유럽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로 많은 사람들이 건너간다고 들었네. 몇 년 전에 일어난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에서 북쪽의 오랑캐가 이겨서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고 하네. 그 나라에서는 실리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땅도 넓고 철도 많고 그 외에도 모든 것이 풍족하여 공장이라는 것이 만들어져서 한양의 모든 아낙내가 하루 종일 만드는 무명천의 10배에 가까운 양을 1 식경만에 만들 수 있다고 하네. 그리고 청나라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도 철도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어르신께 들었네." 나는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될 즈음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시기적으로 언제인지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지 1시간 반 정도 지났을 즈음 허리를 느낀 나는 어느새 저녁시간이 된 것을 깨달았다. 귀생이에게 저녁찬을 사랑채에서 친구와 먹을 테니 식사를 준비해라고 이야기했다.
보통 5끼씩 먹는 조선인들은 새벽부터 먹는 죽을 비롯해 아침 점심 저녁과 함께 자기 전에 야식까지 챙겨 먹는 대식가 중에 대식가였다. 사실 양반들이 많이 먹는 이유 중에 한 가지는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노비들이 자신들의 식사를 따로 챙겨 먹을 수 없어서였다. 주인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 그들이 먹는 것의 대부분이었고, 곳간을 노비들을 위해서 열 수는 없다는 치졸한 조선의 양반들의 고집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불편하고 안타까워 어르신께 몇 번이고 부탁을 드렸으나,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한 끼에 먹는 양을 줄이면 노비들이 배가 부를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뿐이었다. 그 후로 나는 먹는 양을 21세기의 내가 먹었던 양을 기준으로 매일 먹는 양을 조절했다. 내가 먹는 식사량은 다른 양반들이 먹는 양의 1/3에 불과한 양이었다.
저녁식사로 나온 음식은 곰삭은 황석어 젓갈과 계란을 집간장으로 조린 계란 조림. 그리고 고춧가루가 조금 들어가 아주 조금 붉은색의 김치에 오늘의 주인공인 두부였다. 두부는 양반만이 먹을 수 있는 고급 식재료로 두부 한모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콩을 전날부터 오랜 시간 불려서 새벽부터 부엌에서는 불려둔 콩을 맷돌로 갈아 콩물을 낸 후에 가마솥에 무명천으로 걸러낸 콩물을 넣고 계속해서 저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몇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는데, 그러고 나서 잘 끓인 콩물에 들기름을 넣은 후 다시 한소끔 끓여내고, 몇 달에 걸쳐 받아놓은 간수에 식초를 조금 넣어서 순두부를 만든 후 맷돌을 위에 올려 판에서 물을 빼내고 나면 우리가 흔히 먹던 두부가 되었다. 2-3명의 여자종들이 아침부터 오후 2-3시까지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집약적인 매우 힘든 일이었으나, 나는 이 시대의 두부 맛에 매료되고 말았다.
날콩의 향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콩의 단백질에서 느껴지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아무 미묘하게 느껴지는 들기름 향과 식초 향. 사이다가 들어간 듯한 북쪽 지방 특유의 배추김치와 함께 두부를 먹으면 두부의 입자가 부서지면서 고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칠맛에 모두가 고생할 것을 알면서도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큐슈지역에서 먹던 두부의 맛을 떠올리게 되었다. 부드러운 실크 같은 두부. 거기에 일본식 간장과 생강을 살짝 올려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년간의 답답한 생활에 실증난 나는 장난반 진담 반으로 내 벗인 홍종우에게 물었다. "일본의 두부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우리 일본에 두부라도 먹으러 가보는 건 어떤가?" 두부를 한입 가득 물고 씹고 있던 홍종우는 씹다 말고 대답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일세. 다음 주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