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and the City 스위스 생루 - 치즈라클렛
독일에 살면서 지친 가족을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이탈리아까지 차로 이동하는 것으로 정하고, 스위스 - 베네치아 - 스위스 - 독일로 7-8일 정도의 일정으로 여행하는 것으로 코스를 잡고, 구글맵으로 확인한 결과 차로 12시간 그리고 거리로는 약 1200km 정도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하루에 5-6시간은 기본으로 운전하던 나에게 1200km 정도는 이틀 정도면 무리한 거리는 아니었고, 체력적이나 심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첫날 스위스까지 가는데 약 7시간 정도 운전을 하는 중 휴게소에 3-4번, 그리고 양쪽에서 스테레오로 들리는 아이들의 투정은 운전하는 내내 나를 피폐하게 하였다. 날씨도 흐려서 비가 내리고 오랜 시간 동안 운전을 하면서 긴장해 있어서 일까 취리히의 호텔에 도착하자 피곤이 몰려왔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휴일이라서 대부분의 식당이나 슈퍼마켓이 닫혀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집에서 가져온 라면과 햇반이었다. 물론 만족스러운 식사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운전을 했던 나에게는 간단하게 먹고 쉴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다음날 날씨가 좋아져서 우리는 루체른으로 이동했다.
빈사의 사자상과 루체른 호수를 보고 나서 차가워진 몸으로 퐁뒤를 먹는데, 20년 전 처음으로 스위스에 왔을 때 먹었던 퐁뒤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먹은 것은 짭짤하고 쿰쿰한 젓갈 같은 냄새가 나는 녹인 치즈에는 마늘이 들어가 있어서 내 입맛에도 맞았다. 그리고 뜨겁게 삶은 알감자를 치즈에 찍어 먹으니 생각보다 맛이 풍부했고, 빵과 감자를 치즈에 찍어서 아이들에게 주니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도 먹었다. 겨울이라서 따듯한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졌고, 잠시 앉아 마신 뜨거운 차와 차가운 맥주는 스위스에 온 것을 더욱 실감 나게 해 주었다.
내가 처음 유럽에 온 것은 20년 전 가족들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패키지여행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서 아버지의 친구 가족들과 서유럽을 여행했다. 기억나는 것은 버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과 도착하고 며칠 간은 바깥 풍경이 한국과는 다르고 신기해서 몇 시간이고 밖을 봤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며칠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을 계속해서 잤다. 그리고 현지식을 먹을 때는 치즈를 먹으면서도 느끼해서 좋아하지 않았던 것과 빵에 질려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역시 한국음식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내 가족과 함께 같은 지역을 여행하지만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느낀다. 나의 아버지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까라고 가끔씩 생각한다.
우리는 맑은 루체른을 거쳐 베네치아를 들려, 다시 스위스로 돌아와, 친구가 머물고 있는 Saint Luc라고 하는 깊은 산속 마을로 다시 운전해서 갔다. 산 아래에는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하지만 Saint Luc는 매우 높은 지역에 위치해서 구름이 밑에 깔려있고, 날씨가 매우 좋았다. 산으로 오를수록 산소가 옅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맑은 하늘과 눈으로 덮인 아름답고 높은 산은 오랜 운전으로 쌓인 피곤을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친구의 시부모님이 사시는 곳으로 집에는 어르신들이 계셨지만, 편하게 대해주셔서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바로 근처에 스키장이 있어서 보드를 타는데 예전과는 다른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내려와서 내 몸안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이 들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움직여 샤워를 하고 나서, 허기도 지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저녁시간이 되어 가족들이 식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와인과 간단한 스낵으로 식전주를 마시는 아페르 티프를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라클렛은 치즈와 고기를 구워 야채 또는 빵 위에 올려먹는 음식으로써 스위스에서는 가정식으로 불리는 유명한 요리이다. 퐁뒤와 더불어 스위스를 대표하는 치즈 요리이고, 단단하게 굳어진 치즈를 불에 직접 구워서 얹어 먹기 때문에 퐁뒤와는 다른 치즈의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유명한 일화로는 북한의 김정일이 좋아했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만드는 방법은 매우 쉬워서 치즈와 고기를 그릴 위에 구워 감자나 빵 위에 발라 먹는 음식이었다. 우리는 토끼고기 소고기 돼지고기와 야채들을 준비했는데, 에멘탈 치즈와 체다치즈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라클렛 치즈를 올려서 그릴에서 굽기 시작했다. 치즈를 굽자 된장 냄새 같은 냄새가 나고, 녹은 치즈들에 더 열을 가하자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치즈의 풍부한 향과 짭짤함은 고기에 스며들어 예상외로 좋은 조합이었다. 고기를 먹다가 질리면 감자를 먹고 오이를 요구르트 소스와 함께 타임을 썰어 넣은 소스를 먹으면서 입안을 리프레쉬했다.
라클렛도 좋았지만 내가 즐겼던 것은 맛이 좋아서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지 못한다는 스위스 와인이었다. 그다지 와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친구의 시부모님이 와인을 잘 알고 계셔서 향이 풍부한 와인을 마실 수 있었다. 특히 라클렛을 먹으면서 먹은 화이트 와인과 내가 이탈리아에서 사간 바롤로 지역의 와인은 마리아주가 좋아서 어르신들도 좋아하셨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가오는 2020년을 맞이하기 위하여 집 밖에 있는 조그만 정원으로 이동하여 연등에 불을 붙이고 조그만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 밤 12시가 되자 여기저기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불꽃놀이의 소리와 다양한 색과 사람들의 탄성들은 내 귀와 눈을 즐겁게 하였다. 별이 밝고 하늘과 가까운 산속의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밤에, 아빠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고 만 내 조그만 딸의 발이 내 코트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내 손으로 약간 차가워진 발을 쥐면서, 올해도 가족들과 함께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올해의 소원을 빌고 있었다.
우리는 새해를 보내기 위하여 원래 일정보다 하루정도 더 머물렀고, 그 다음날 남아있는 친구와 어르신들께 인사를 했다. 차를 타고 밖으로 나오면서 친구 가족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Saint Luc를 뒤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