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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GO Apr 03. 2020

단순간단 자루소바

Food and the city 치노 (일본) - 소바


일본에서 생활한 게 14년 정도, 내 인생의 절반 정도를 일본에서 생활했다. 그렇게 오래 일본에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 없이 살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로써 10년을 일하고 있다. 


대학교 입학하기 1주일 전, 학교 기숙사까지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는 15분가량 이동하면서 이런 산골에 학교가 있다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특히 시내까지 가는데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가야햐는 것은 내가 생각한 대학생활과는 다른 4년이 펼쳐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통 밤새 놀 수 있는 곳 자체가 없어서, 우리는 방에 모여 술을 마시고, 아무도 없는 학교로 가서 핸드폰으로 크게 틀어놓고 논다던지, 큰 맘먹고 시내로 나가더라도 밤 9시에서 10시에는 기숙사로 돌아와야 하는 생활이 1학년 시절 내내 지속되었다. 내가 대학생활을 보냈던 곳은 온천이 유명한 도시로 공짜인 온천도 많았고, 자하에서 올린 그대로 올린 40-5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계속해서 넘쳐흐르는 고급 온천이 사우나까지 포함해서 5000원 정도면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 중에 차를 가지고 있는 친구 차를 빌려 타고 산에 있는 자연온천을 밤에 들어가는 것은 특히나 즐거운 추억이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조그만 차에 4명이 들어앉아, 20-30분가량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달려 온천에 몸을 담그면, 밤하늘에는 별이 손으로 휘저으면 흘려내려 올 듯하고,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뜨거운 물로 빨갛게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었다. 그 와중에 꿈은 다들 많아서, 물과 바람 사이에서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도 산이 많아서, 어렸을 때부터 뒷산으로 친구와 함께 등산을 하며 놀아서 그런지, 나는 자연이 좋았다. 


"좋은 메밀은 좋은 물과 산이 만든다"

군생활 후에 복학하고, 그러고 나서 취업준비. 동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연이었다. 언제나 산과 바다가 주변에 있어서 당연한 줄 알았던 그 편안함이 동경 생활을 하면서 결핍되어 있었다. 전철을 타고 1시간을 이동해도 주택과 빌딩 밖에 보이지 않는 회색도시. 그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나는 매일같이 그 바람과 물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주말에는 아침 일찍 짐을 싸서 산으로 가서 산을 타고난 후, 온천에 들어갔다가 그 주변의 음식을 즐기는 일일 산행을 취미로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느낀 건, 물과 공기가 맑은 산으로 가면 맛있는 소바가 있다는 것이었다. 메밀은 밭에서 재배하고, 쌀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산에서 많이 재배된다. 


소바는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뜨거운 국물이나 차가운 간장에 무·파·고추냉이를 넣고 찍어 먹는 일본 요리이다. 메밀을 면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부터 이다. 그전에는 메밀을 뭉쳐서 소바가키라는 우리나라의 개떡이나 절편 같은 음식으로 먹었다고 한다. 면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조선의 원진이라는 승려가 면으로 만들어 먹는 법을 전파했다는 것이 유력한 설이다.

면으로 만들기 시작한 메밀국수는 메밀이라는 뜻을 지닌 소바라고 간단하게 불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국민음식이 되었다. 어느 나라라도 그렇겠지만, 일본에서 무언가를 소리 내면서 먹는 것은 식사예절상 매우 실례되는 것인데, 소바는 후루룩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를 내면서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게 맛있는 소바를 먹는 좋은 방법이라고 일본인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네 명 정도가 소바를 다 함께 먹으면 매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귀가 아플 정도이다.


내가 어렸을 때 메밀국수라는 건 만두집이나 분식집에서 쫄깃쫄깃한 검은 면을 어묵 국물 같은 육수에 넣거나, 쫄면 양념으로 버무려 먹는 어른들의 음식이었다. 아마 그때 먹었던 메밀국수는 지금 우리가 흔히 아는 소바라는 것과는 다른 음식이듯 하다.


"나가노의 치바"

일을 하면서 나가노현에 있는 세이코이라는 회사에 자주 방문하였다. 우리에게는 시계로 많이 알려진 회사인데, 이제는 잉크젯이나 프로젝터 그리고, 첨단 디스플레이 등의 신기술을 그 회사의 연구소가 위치하여 동경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 정도 서쪽으로 달리면 산을 몇 개나 지나서 치노라는 곳에 도착한다. 사실 정말로 산밖에 없는 지역이라 어떻게 최첨단 기술집약적인 산업이 이곳에서 발생했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깨끗한 물과 공기가 반도체나 시계산업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요소라서라고 생각한다.


메밀도 역시 물과 공기가 깨끗한 지역에서 키운 것이 맛있어서 매번 치노에 가는 출장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내가 보통 소바집에 가서 먹는 소바는 모리소바나 자루소바로 가장 흔하고도 심플한 국수이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100% 메밀로만 만든 것으로 보통 껍질을 잘 까서 깨끗한 가루로 만든 소바는 밝은 회색빛을 띤다. 면을 위한 반죽을 만들 때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에 거쳐서 조금씩 물을 첨가하며 만들어야만 뭉쳐지기 때문에 매우 기술을 요한다. 좋은 메밀로 만든 소바의 향기는 매우 정제된 느낌이며, 씹으면 씹을수록 메밀 자체의 단맛과 곡물 특유의 고소한 향이 난다. 이 나까(시골) 소바라 고하여 껍질까지 넣은 소바의 경우 메밀 자체의 향과 맛이 더욱 강하고, 두껍고 넓게 투박하게 썰어 나와서 소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별미이다.


실제로 소바를 먹을 때는 쯔유라는 가다랑이(참치류)로 만든 검은 육수에 적셔서 먹는데, 간장과 발효한 생선의 진한 감칠맛이 메밀과 어울려서 면과 함께 혀와 식도를 자극한다. 특히나 목 넘김을 할 때 은은하게 퍼지는 메밀의 향과 쯔유의 향이 소바를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쯔유와 함께 나오는 파, 깨, 고추냉이는 소바와 쯔유로 반 정도 먹고 나서, 남은 반을 먹을 때 쯔유에 넣어서 먹게 되면 입맛이 리프레쉬되어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나가노의 경우 유명한 절임 종류가 많다. 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봄에 따서 간장이나 된장 그리고 소금에 절여서 반찬으로 사용해 와서, 보통 소바를 시키게 되면 야채를 절인 것이 보통 함께 나온다. 이것도 별미라서 항상 나가노에 가서 소바를 먹을 때는 아껴서 먹었다.


"단순함과 복잡함"

나는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해서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없애는 편이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아무 매우 사천음식이나 짬뽕, 육개장 같은 것으로 속을 후련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고. 차분하게 진정을 시키는 경우에는 혼자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으로 작은 행복을 느끼기 위해 소바 같은 단순하고 정갈한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독일에 사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모든 식당들이 문을 닫아, 밖에서 점심을 못 먹지만,  여름이 오기 전에 시간이 나면 밖에 나가서 소바 한 그릇 먹으며 여름에 갈 수 있는 산들을 차분히 정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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