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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 오픈 플레이스 Oct 24. 2021

당신의 집은 보호구역입니다.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이층 디자인 도면만 받으면 되는데, 야니스는 굳이 옥스퍼드의 값비싼 베드타운, 써머 타운에 있는 본인의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오늘도 패션피플답게 검은 피케 셔츠에 은 목걸이를 건 야니스는 두 살짜리 둘째가 블루베리를 끊임없이 입에 넣는 모습을 신기한 듯이 한참 바라보았다. 그 사이 우리도 처음 와보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심플하게 차려진 작은 사무실에 큰 책상 두 개, 커다란 프린터가 있었다. 

이메일을 쓸때나 말할 때마다 그는 항상 “저희는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복수로 표현하는데, 우리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본적 없었다는 것이다. 

“직원이 또 있는 거야, 아니면 상상의 친구일까?”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살펴본 사무실에는 그가 늘 입고 다니는 남색 코트 하나만이 걸려있고 커피 컵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다. 그의 옥스퍼드 대학 학위와 RIBA영국건축가협회의 자격증이 벽에 걸려있다. 뜻하지않게 그의 학력을 알게되었다. 


야니스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조사를 좀 해봤어요." 완벽한 영국 악센트로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 그리고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과 좋지 않은 소식을 선택하라는 말을 듣다니. 비현실적인 느낌에 약간 신나는 기분마저 들었다. 


"좋은 소식부터 들을게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좋은 소식은, 엔지니어 의견을 바탕으로 내부 도면을 거의 마무리 지었다는 거예요. 출입문을 열자마자 바꾸기로 결론이 났어요. 전에는 계단을 오른쪽으로 빼서 꺾어져서 이층에  올라가는 형태였다면, 출입문을 열자마자 가운데로 바로 올라가는 형태로 바꾸기로 결론이 났어요. 그게 좋은 소식이에요". 


이건 좋은 소식이 아니다. 이미 계단의 위치가 확정되었다고 믿고, 요티는 주변에 새로 벽을 세우고 미장까지 해둔 상태였다. "엔지니어와 계산을 해보니 철근의 위치 때문에 구조적으로 이렇게 해야 해요. 또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이 많아요. 일단 이층의 방의 크기가 고루 나오고, 그리고 계단은 꺾어지는 계단보다 일자 계단이 가격도 싸고요." 


"나쁜 소식은 뭐예요?"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이 물었다. 야니스는 양 팔을 들며 말했다. 

“진행을 하기전에 여러가지를 조사해 보았어요. 여러분의 집은, 보호구역에 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의 동네가 특별히 시청에서 관리하는 지역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집의 외관을 고치거나 바꿀 때 허가를 받아야 하는 지역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그린벨트라는 것인가? " 문화재지정물과는 달라요. 내부나 창문 정도는 자유롭게 바꿀수 있어요. 주요 외관을 바꿀 경우에 시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는 말을 이었다.보호구역 conservation area. 마치 인디언 문명을 보호하기 위한 구역으로 들렸던 이 용어는 실제로 비슷한 뜻이었다. 자연과 문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시마다 이런 장소를 지정하고 이 구역에서의 개발을 제한하다. 집주인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증축을 하거나 외관을 바꾸면 안 되며, 보호구역 위원회의 평가를 받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내부적인 것은 바꿀 수 있지만, 외부적인 것, 경관에 영향을 주는 것, 집 모양을 바꾸는 것이나, 특히 높이를 높이는 것은 거의 안돼요. 그 지역이 원래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살리려는 것이니까요.” 캐릭터라는 말은 영국에서 키워드 중 하나다. 내 눈에는 오래되고 단열이 안 되어 낡고 추운 오두막이, 지역성과 가치를 지닌 건물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옥스퍼드의 울버 코트는 2만 평의 포트 메도우와 그 주변이 둘러싸고 그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관리하고 있었다. 높은 건물을 허기 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허가는 비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까지는 신고만 할 뿐, 허가는 필요 없었기에 건축 디자인비를 냈지만 이제 등록을 하기 위해, 다시 건축디자인비가 들것이고, 그 허가 과정에 수백만 원의 돈이 든다. "왜 부동산에서는 애초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몰랐을 수도 있을까요?" 남편이 다시 물었다. "글쎄요, 저는 부동산에서 분명히 알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애초에 다락방 공사하라고 했다고 했잖아요". 게다가 보호구역에 있는 집들은 가격이 조금 높게 형성돼요. 대체로 제재를 받다 보니 분위기가 좋은 마을이나 자연이 주변에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쨌든 부동산은 윤리적으로 투명하게 공개를 했어야죠." 그는 약간 위로하듯 덧붙였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보호구역에서 까다롭긴 해도 공사를 거치고 나면, 흔하지 않은 레노베이션을 한 집이라 가격에도 반영이 될 거예요." 

야니스는 계속했다. "과정은 단순해요. 며칠 안에 오늘 얘기한 대로 도면을 그려서 옥스퍼드 시청에 등록을 할 거예요, 이후 4주 정도 심사기간이 소요돼요. 그러면 저는 3주 정도 있다가 연락을 하죠. 그러면 시청 직원들은 '너무 일러요'라고 하겠죠." 또 그는 꺽꺽 소리를 내며 웃었다. 건축가들의 유머인가 보았다. 


 "즉, 서류를 받아서 4주 동안 심사하는 게 아니라,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3주 반이 되었을 때 꺼내서 하루정도 보는 거죠. 승인이 나면 2층 공사를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동안은 이오 티스와 1층 공사에 집중하세요. 화장실, 키친이나 바닥은 승인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로프트 공사(다락 증축)의 경우는 주로 내부공사이기 때문에 지붕 높이만 높이지 않는 경우 허가가 날 확률이 많아요. 대신 이층 창문 도머을 보수적으로 디자인을 할 필요가 있죠." 


“확률이 많다는 말은, 허가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물론 '저희 팀'은 최선을 다할 것이고,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지만,  네, 허가가 안 날 수도 있어요". 


옥스퍼드 시청에는 우리 마을인 울버코트의 보호구역 안내 지도가 올라와있었다. 우리 집에서 2분 거리인 울버 코트 연못과 포트 메도우 Port meadow 초원을 포함하여, 주변에 그동안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오래된 돌로 된 집들이 모두 보호구역으로 표시되어있었다. "오래된 마을처럼 분위기 있다고 생각했는데, 슬픈 이유가 있었네". 초원 위로 거위 한떼가 날아갔다. "저 집들 좀 봐". 초원을 마당처럼 내려다보며 쭉 들어선 집들은, 새로 근사하게 고쳤음에도 집 뒷면이 아닌 옆면에 다닥다닥 창문을 냈다. "뒷면에 창문을 내는 것을 허가를 못받았나보네." 모든 것이 점점 퍼즐처럼 이해가 갔다. '문화재물'로 분류된 집들은 오래된 나무 창문을 그대로 쓰고 있었고, 이마저도 일중 창이었다. 그러나 측은한 마음으로 보고 있던 중, 그 중 핑크 벽장미가 드리워진 녹색 집에서, 젊은 부부가 즐거운 얼굴로 나와, 소형 전기차를 타고 경쾌하게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보호구역에 산다는건 조금 불편한 것이지, 슬픈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옥스포드의 울버코트 마을에 있는 12만평너비의 초원지대 포트메도우Port meadow.  



뒷집 전경. 아름답지만 왠지 건너가면 안될 것 같은 구름다리가 있는, '울버코트 문화재보호 건물'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워릭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옥스퍼드의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공사업자 요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좀 올 수 있나요.. 집에서 만나요.” 어둑어둑한 집 안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입밖에 내기도 싫은 말, "공사가 안될 수도 있대요"라고 어렵게 얘기했다. “야니스에게 얘기 들었어요.” 그는 우리의 얼굴을 흘깃 보더니, “이봐요, 보호구역인지 뭔지, 그걸로 만약 외부 고치는 게 허락이 안되면, 그냥 창문 도머 내지 않고 계단만 올려서 2층 만들면 돼요. 중간층 같은 느낌으로요. 그러면 이층 공간이 크기는 좀 작고 어두워도 아이들이 놀만한 공간은 나올 거예요. 그렇게 하면 되지. 너무 걱정 말아요.” 

순간 울 뻔했다. 외국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첫 집을 잘 못 산 것 같은 느낌, '투자가능성'이라는 말은 실현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바로 이 집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추운 영국 집에서 알바니안 아저씨가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다.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요티, 이렇게 된 이상, 우리의 계획은 일층 공사만 마치고 이 집에 들어와서 사는 거예요.” 비장하게 말했다. 요티도 고개를 끄덕였다. “키친과 화장실이 끝나면, 거실에 들어와서 살면서 결과를 기다릴께요. 허가가 나면 살면서 이층을 공사 시작하는 거죠." 그는 웃으며 물었다. "얼마나 터프해 질 수 있겠어요?" 그후 몇십분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세컨드 플랜을 짰다. 허가가 안난다면, 우리는 다 뚫어버린 1층을 다시 투베드룸으로 만들어야 한다. 거실은 안방으로 변하고, 오픈 플랜 키친은 다시금 가벽을 세워서 큰 아이의 방을 쪼개 만드는 것이다. 혹시 이층의 중간층 같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놀이방으로 쓰자고 했다. 


또 한 가지, 야니스가 들려준 '좋은 소식'을 전했다. 계단 위치를 바꾸면서, 원래 만들었던 다용도실과 계단 자리의 새 벽을 부수어야한다. 요티는 별 말 없었지만, 이번에는 한 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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