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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 오픈 플레이스 Oct 24. 2021

화장실: 스타일과 함께 양치하기

그렇다면 나는 이제, 타일을 구하러 어디로 가야 할까? 


알고 보니 영국은 핸드메이드 타일의 메카였다. 

전통을 자랑하는 말보로 타일 Marlborough, 부티크 호텔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버트 앤 메이 Bert& May, 옥스퍼드의 작은 공장으로 시작해 이제 타일계의 사넬이라 할 화이어드 어스 Fired earth 등에서, 흙을 구워서 글레이즈를 입히고, 손으로 일일이 그림을 그린 테라코타 타일들을 판다. 

정말이지 아메리카노와 한 조각 먹고 싶을 정도로 갖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타일을 구경해 보았지만,

문제는 이 예쁜 물건을 가지고 집에가서 어떻게 붙여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타일 브랜드의 SNS를 참고하면, 과감한 색의 타일위에 브라스로 된 수전과 호랑이 발 앤틱 욕조로 완벽하게 스타일링 되어있다. 세면대 거울 아래부분은 핑크색, 녹색, 자연의 오묘한 색깔의 타일을 육각형이나 조개 모양 타일로 포인트를 주었다. 벽등은 내가 전에 알던 반투명 화장실 등이 아니다. 금색, 빨강색, 녹색으로 힘을 주었다. 또다른 현대적인 화장실 스타일링을 보면 세면대는 핑크색 콘크리트고, 수전은 검정색이다. 바닥은 최신 유행인 점무늬 테라조 타일을 붙였다. 

"흐헥, 이게 뭐야" 남편은 내가 보고 있는 사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의 테니스 수업을 참관하며 동네 친구에게 스타일링과 실용성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인스타그램을 슬쩍 보기만 해도, 어떤 스타일이 '와우 팩터'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부티크 호텔 같은 화장실에서 장미 목욕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편안하게 이를 닦을만한 수수한 화장실을 원하는 거거든. 그리고 궁금한건, 타일이 오각형이면 사이사이 물때도 오각형으로 낄까?" 친구는 타일 사이마다 분홍색으로 끼는 영국 물때에 강한 공감을 보이며 함께 고민했다. "아, 그라우트를 핫핑크색으로 하면 어때요? 아예 펑키하게."


초보 레노베이터로서, 예쁜 타일 하나가 아니라 화장실 전체를 먼저 그려보아야 하는 지금, 우연히 터제토Terzetto라는 타일 가게를 지나치게 됐다. 쇼윈도에는 먹고 싶은 케이크 같은 타일은 없고, 지루한 회색과 베이지색 타일들 뿐이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문을 열자 '띠링' 종이 울리고, 마른 체격에 거의 하얀색에 가까운 금발머리를 한 남자가 나타나서 미소 지었다. 


그는 마틴이라고 소개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하는 그의 말에, 나는 드디어 마음속 고민을 터트렸다. "저희 화장실 타일이 필요해요. 그리고 복도 바닥 타일도요. 최대한 빨리요. 어떤 타일을 할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좋아요."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많이 보았다는 듯이 침착하게 말했다. 

"아이들이 있으신가요? 그러면 미끄러지지 않는 바닥을 해야 하겠네요". 

그는 여러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는 동유럽과 터키에서 타일을 수입하는 회사예요. 저희가 다루는 타일은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포슬린 타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라임스톤이나 대리석 등 자연석이죠."

라임스톤 타일은 자연스러운 굴곡이 있고 군데 군데 화석도 붙어있어 마치 고대 로마의 목욕탕같이 분위기 있게 보였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연적인 색이나 멋은 있지요. 그런데 어떤 게 지금 눈으로 보기 좋은 지도 중요하지만 타일은 '보는 물건'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물건'이에요. 나와 어떻게 같이 살지를 생각해봐야 하죠. 예를 들면 얼마나 바닥을 닦고 관리할 시간이 있는가,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나올 수 있죠. 바쁜 가족이라면, 저는 포슬린 Pocelain 타일을 추천하고 싶네요. 포슬린은 도자기 타일의 한 종류예요. 차이가 있다면 이건 백색 토로 훨씬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서, 일반 테라코타 타일보다 훨씬 강하고 얼룩은 거의 남지 않아요. 그위에 원하는 패턴이나 색을 프린트하는 거죠".



제일 위의 오리알색duck egg 타일은 세라믹 메트로 타일, 지하철에 붙이는 타일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 아래는 대리석 타일의 미묘함을 담아낸 포슬린타일. 




마틴은 요즘 영국의 유행인 흰색 대리석, 카라라 마블 carara marble을 재해석한 포슬린 타일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의 타일을 보고 샘플도 받아보았지만, 이곳의 타일은 왠지 마음에 들었다. 

다른 곳이 천연석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노력한 느낌이라면, 여기서 본 타일은 대리석을 오마쥬 하여 새롭게 해석한듯한 매트하고 신선한 느낌이 매력이었다. "포인트 타일은 어때요? 다른 색을 전면에 넣을 수도 있어요." 그는 오리알색, 회색을 가져와 매치해 보였다. 마음으로는 포인트 타일을 해보고는 싶었으나 깨끗한 느낌을 깨고 싶지 않아서, 같은 패턴의 타일로 모양만 다른 것을 골랐다. 지하철에 붙이는 듯한 길쭉하고 작은 메트로 타일이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복도hallway에 깔 바닥 타일도 필요했다. 연한 회색, 베이지색, 진한 회색의 콘크리트 느낌의 타일을 사진을 찍어서 남편에게 전송했다. "미안, 근데 뭐가 다른 거지?" 

나는 베이지색 콘크리트 타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질감은 차가운데, 색은 따뜻하다는 것이 신선한 느낌이었다. 영국 인테리어에서도 그레이가 대단한 유행이었지만, 그랬기에 베이지가 오히려 새로워 보였다.


콘크리트을 모티브로 한 포슬린타일. 샌드, 그레이, 화이트 컬러 마다 느껴지는 온도와 질감이 조금씩 다르다. 내가 복도 바닥을 위해선택한 것은 제일 위에 있는 밍크색의 베이지타일.



"그렇다면, 타일을 어떻게 쌓을 건가요? 빌더에게 맡기기 전에, 어떻게 쌓을지 대강 생각을 해야 해요. '벽돌 쌓기' 스타일로 붙이면 안정감도 있고 더 길어 보여요". 그는 또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모든 게 넓어 보이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지루한 베이지색이 회색 사이에서 새로워 보인 것처럼, '벽돌 쌓기'로 쌓은 타일은 너무도 많이 보아서, 열을 맞춰서 일자로 붙이기는 기법이 지금 내 눈에 더욱 새로워 보였다. 결국 큰 타일은 가로로 열을 맞추고, 전면의 메트로 타일은 세로로 열을 맞춰서 붙이기로 했다. 결국 보수적인 것도, 획기적인 것도 상대적인 것이었다.


마틴의 도움으로, 타일 고르기를 끝내고 뿌듯했지만, 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했다. 

그라우트 판을 꺼내놓고 마틴의 설명이 계속됐다. "타일과 비슷한 색으로 그라우트를 하면 타일의 경계가 뭉개지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죠. 그렇지만 하얀색 타일에 검정이나 진한 회색을 한다고 생각하면, 타일의 모양이 드러나면서, 모던한 느낌을 줘요". 그는 유능한 "모던하고 과감한 느낌이 대유행이긴 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당신은 절제되고 미묘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군요." 하며 연한 회색을 권했다. "절제된 스타일링이요? 제가요?" "네" 그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자세는 기본 아이템을 고를 때, 좋은 전략이긴 하죠." 



마틴의 말에 힘을 얻은 날, 그동안 열 군데의 사이트를 비교하며, 누구에게 물어볼지 몰라 전전긍긍했던 라디에이터를 전부 주문했다. 슬림하고 납작해서, 밀크 초콜릿처럼 벽에 녹아서 없어질 것 같은 흰색 물건을 고른 참이었다. "라디에이터는 굳이 눈에 띄게 바라보는 물건이 아니니까, 옆에 그림을 걸 때 충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지나갈 때 발에 걸리지 않았으면 해서." 누구에게 물어보지않고 고른 첫번째 물건이었다. 


드디어 타일이 배달되던 날, 요티에게 보여주며 설명하자, 요티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열을 맞춰서 붙이려고 해요? 벽돌쌓기로 지그재그로 붙이면 훨씬 길어 보이는데". "요티, 길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타일이 주는 느낌처럼 신선하게 새로운 느낌으로 쌓고 싶어요" 

 "그나저나, 어쩌다가 이걸 산거예요?" 요티가 벽에 기대 놓은 라디에이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정말 냉장고 문인 줄 알았어요." 




'함께 살 물건'을 고르기에 열심히 훈련받던 중, 드디어  '바라보고 싶은 물건'을 하나 샀다. 몇 주 전에 세일 중에 참지 못하고 주문했던 조명 하나가 덴마크에서 도착한 것이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브라스로 되어, 네 개의 전구를 달면 별자리같이 빛나는 펜던트 조명이었다. 그날 저녁 나의 하우스 선생님이 찾아왔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램프를 박스에서 꺼내 함께 감상했다. "좋네요. 이걸 보니까 벌써 다 끝난 것 같아요. 내일 아침, 이 조명을 딱 달고 현수 씨네 새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참고

말보로 타일 Malborough tile https://www.marlboroughtiles.com/

버트 앤 메이 Bert& May https://www.bertandmay.com/

화이어드 어스 Fired Earth https://www.firedearth.com/

터제토 타일 https://www.terzettostone.co.uk/

레이나 라지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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