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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 오픈 플레이스 Oct 24. 2021

가장 영국적인 공간은 어디일까?

나의 새로운 다락방.

토요일 아침, 우리의 집은 이제 공사장이 되어있었다.

스킵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쓰레기 트레일러가 앞마당에 들어와 있었고, 그 안에는 이미 깨진 타일과 나무 등이 가득했다. 후드를 입은 요티는 다른 후드를 쓴 사람들과 함께 망치로 힘차게 시팅 룸의 벽을 때리고 있었다. 그 안에 단열재, 전선들이 드러나고, 뽀얀 먼지가 일었다. "집을 부수는 건 금방이네요." 남편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요, 쓰레기 치우는 게 더 오래 걸려요".

남색 더플코트를 입은 금발머리의 키 큰 남자가 공사장 안으로 경쾌하게 들어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야니스'라고 합니다. 그리스로 휴가를 다녀오느라고, 늦게 만나게 되었네요. '이오티스'와는 오랫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같이 해봤죠. 의사소통도 잘되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죠."  

"저, 요티 말씀하시는 거죠?"

"엄, 엄..." 그는 허밍 같은 노래를 부르며 이곳저곳을 빠른 걸음으로 금방 둘러보았다.

"봅시다, 그러니까 이미 1층 공사를 시작하셨지요?


그렇지 않아도, 1층의 전체적인 계획은 세워진 상태였다. 이웃에 비슷한 방갈로를 고치고 있는 친한 언니를 하우스 과외선생님으로 모시고, 거의 매일 만나 일대일 과외를 받은 참이었다. 그녀가 곁에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도면을 볼 줄 몰라 하나하나 "이건 뭐예요?" 하는 질문부터, 나름대로 기발하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고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하는 피드백을 들었다. 그 결과, 야니스 없이도 우리는 작은 방 두 개를 허물고 오픈 플랜 키친과 식당을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픈 플랜 키친은 집에서 가장 넓은 8미터와 3.5미터의 공간으로, 기존의 작은 키친과 작은 방 2개를 튼 공간이었다. 남향이라 하루 종일 햇빛이 드는 쪽이었다. 나머지 현관문 쪽에는 북쪽을 향한 시팅 룸(거실), 화장실, 홀웨이(복도)와 작은 보일러 룸을 이용한 유틸리티룸(세탁실)이 생길 예정이었다.  





"요티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어디에 만들 건지 알아야한다고, 빨리 도면을 달라고 좌절하고 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곧 연락드리죠."


"오픈 플랜은 좋은 생각이군요. 열린 느낌을 주는 바이 폴딩 도어도 그렇고요. 제가 그렸어도 그렇게 제안했을 거예요. 물론 집값 상승도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울버 코트는 새로 고 친집이 거의 없는 동네거든요. 테라스하우스나 세미 디테치드가 아닌 단독주택이기도 하고요".


"원래 은퇴자 주택이었어서, 시세보다 좀 싸게 살 수 있었어요." 하고 말하자, 그는

"알아요. 은퇴자 전용을 철회할 때, 동네에서 엄청난 엄청난 반대가 있었더군요." 그는 웃었다. "어쩌면 이 동네에 새로운 파장이 일지도 모르겠어요. 은퇴자들이 사는 보수적인 동네에 와서 집을 완전히 뜯어고치니깐 말이죠." 그는 꺽꺽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야니스, 저희 집의 다락 높이나 면적을 볼 때, 공사 후에 이층의 높이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무래도 고개를 숙이고 다니게 될까요? 경사가 어떨지 상상이 잘되지 않아서요". "여러분 집의 다락 높이는 아주 굿 사이즈예요. 물론, 뭐, 다락이죠. 이층 집 같지는 않을 거예요. 올라가 보면 누구나 다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아시겠지만 로프트 공사란 아주 영국적인 문화예요. 분명 천장이 기울어져있고 약간은 불편하지만, 모두가 '아, 여기는 로프 트니까'라는 것을 감안할 수 있는 범위란 거죠.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집은 아주 괜찮은 보통의 로프트의 높이가 될 겁니다." 영국 문화적으로 혀용 범위 안에 있는 높이의 이층, 그렇다면 한국의 집을 경험해본 우리의 눈으로는 어떨까? 여전히 궁금증은 남아있었다.

집안을 조금 더 둘러보던 야니스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나 저러나, 프로젝트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프로젝트 매니저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자재를 언제까지 가지고 오고, 다음에 뭘 주문하고 하는 게 착착 되지 않으면 공사기간이 더 걸릴 수 있어요. 주로 그런 것 때문에 공사기간이 많인 늘어나고 그래요." 나는 굳은 마음으로 대답했다. "야니스,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바로 그 프로젝트 매니저예요."


야니스와 그리스어로 한참 대화를 나누던 '이오 티스', 요티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화장실은 배치를 어떻게 해요?" 화장실은 원래의 위치와 크기를 그대로 두고, 내부 타일과 시설만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길이 2미터와 폭 1.80센티, 크지 않은 화장실이어서 원래 있던 욕조를 빼고 샤워룸으로 할 생각이었다.  "전면에 변기와 세면대가 차례로 놓이고, 오른쪽에 샤워기가 달리는 것으로요. 변기와 세면대 위로 큰 거울을 놓으면 화장실도 넓어 보일 것 같고요". 요티는 끄덕이더니, 햄버거라도 시키듯이 말했다. "그럼 이제 화장실 타일을 사야 해요. 한.. 내일모레까지 가져다주면 되겠어요". "내일모레요? 지금 주문해도 며칠은 걸릴 텐데요". 급히 사이즈를 수첩에 적으며 다급하게 말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야니스도 나를 안됐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면 뭐 다른걸 먼저 하면 되지만. 타일이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되고요." 이것이 바로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그 자재 수급의 문제였다. "요티, 혹시 타일 다음에 뭘 사야 하는지 알면, 미리 알아보고 주문하도록 할게요." "그다음에는 화장실 라디에이터, 변기와 세면대와 샤워기가 필요할 거고요". 줄자로 능숙하게 재고 말했다. "너비는 최대 40센티짜리 세면대로 사고요, 그리고 변기는 매립식으로 할 건가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굿. 매립 식이 깔끔해요. 그러면 전면에 박스를 하나 짤 거예요. 그 박스 안에 변기의 물통이 들어가고, 그 위에 변기와 세면대를 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가 한동안 화장실을 이리저리 재고 살펴보다니 장난스레 눈을 깜빡였다. "선물을 하나 주려고요."


요티는 우리에게 웻룸Wetroom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영국의 전형적인 화장실은 바닥이 방수가 되지 않기에 욕조나 샤워룸 밖으로 물이 새면 '재양'이 되는 구조다. 화장실 바닥은 세제와 물걸레를 가지고 청소해야 한다. 심지어 바닥이 나무나 카펫으로 된 화장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내가 살던 집도 베이지색 카펫이 깔려있었다. 아이가 불덩이같이 아팠던 날, 세면대에 물을 틀고 급히 아이에게 달려갔다가 잠그는 것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날에 그 화장실 카펫 위에 큰 물 웅덩이가 생겼고, 수건으로 아무리 찍어내고 짜내도, 창문 하나 없는 화장실 안에서 카펫이 축축한 것은 며칠이 갔다. 그런 영국식 화장실 문화에 웻룸wetroom은 새로운 변혁으로, 바닥에 방수처리와 개수 처리를 해서 트레이나 욕조 없이 바닥에서 샤워를 할 수 있고 물이 '어느 정도는' 흘러도 되었다.



그날 저녁식사는 한 그릇에도 영양이 충분히 있어주기를 바라며 온갖 채소를 넣은 카레였다. "엄마, 나는 화장실에 큰 욕조가 있으면 좋겠어. 도준이랑 같이 목욕하면서 수영하고 싶어." 열 살인 첫째는 이런저런 자기의 의견을 피력했다. "내가, 내가!" 둘째도 지지 않고 뭐라고 소리쳤다. 남편은 "난 화장실은 심플하고 화장실다운 게 좋더라, 초록색 타일에 금색 수전을 하는 그런 화장실은 나에게 투머치야." 묵묵히 카레를 입에 넣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한번 들은 요청사항들은 잊어버려지지도 않았다. "뭘 그렇게 고민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남편이 참으로 의미없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내 마음 같아서는, 누군가에게 달려가 묻고 싶었다. "뭐가 제일 좋아요?" 얼른 답만 받아서 착착 진행하고 싶었지만, 그런 유명 학원을 찾아가는 접근으로 몇걸음이나 더 갈 수 있을까? 이제는 나의 하우스 과외선생님에게도, 요티에게도, 야니인지 야니스에게도, 누구에게도 확증을 받을 수 없는 일들이 막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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