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서의 심층부에 저장된 정서는 여러 가지 경험으로 형성된다. 그중 맛을 빼놓을 수 없다. 설날에 먹는 떡국 맛은 특별한 정서를 불러온다.
떡국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다. 그 옛날 먹었던 떡 만둣국 맛을 뇌가 재현할 수는 없었지만, 세 식구가 말없이 흠흠 먹었다. 간식으로 한과와 커피를 마셨다. 만질 수 없는 맛과 한 순간이 마음 밑바닥에 저장되었다.
거실에서 내려다보니 밤새 눈이 내렸는지, 온 세상이 하얗다. 상서로운 기분이 들었다. 쌀가루 같은 눈이라고 하지 않던가.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드르르 커튼을 걷으며 괜스레 강아지 이름을 자꾸 불러 보았다. 녀석이 황송한 지 꼬랑지가 떨어져라 살랑대었다.
빳빳한 것으로 준비해놓은 신권을 강아지에게 줄 수는 없는데, 아들이 세배할 생각을 안 한다. 벌써 25살 되었구나. 내 나이 세어서 무엇하리.
간소한 명절이지만 마음만은 충만했다. 문득 어머니 만둣국 맛이 생각났다. 신포기 김치를 다져서 고기를 넣어 빚은 김치 손만두. 떡은 얼마나 매끈하게 목구멍을 타고 쏙 내려갔던가.
충만이 결핍이 되지 않기를.*
설날
설날에 떡국을 끓여 먹으며
내 나이 대신
아들의 나이를 헤아려 본다.
벌써 25살
화살처럼 빠르게 가는 시간
잡을 수는 없지만
매 순간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하늘의 선물
2022년 설날,
밤새 눈이 살포시 내려
세상의 시끄러움을 잠시 덮었다
새둥지에 눈까지 품은
겨울나무가
살 에는 추위에
꿋꿋하게 서 있다
작은 불만을 말해 무엇하리
모두 건강하니 감사하다.*
설날 아침에 ㅡ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