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내를 출근시켜주려고 시동 버튼을 눌렀다. 모든 램프에 불이 들어오는데 틱틱거릴 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아내를 버스 태워 보내고 다시 걸어보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다.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브레이크 페달이 밟아지지 않는다.
7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잘 타고 다녔다. 어디든 내가 가자고 하는 대로 불평 없이 달려가 주었고, 산골짜기든 고갯마루든 안락한 잠자리를 내주었다. 그야말로 분신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나에게 자동차는 절대적이다. 단순한 이동수단이라기보다는 아늑한 숙소이고, 쾌적한 휴식처이다. 의자를 젖히고 비스듬히 누워 바라보는 하늘, 숲의 상쾌한 시간은 복잡해진 마음을 평안하게 가라앉혀 준다. 뒷좌석 시트를 접고 접이식 책상의 다리를 펴면 어디서든 훌륭한 서재로 변신한다. 발을 뻗고 비스듬한 자세로 책을 읽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쓴다. 자동차는 또 하나의 특별한 생활공간이다.
도시에 갇힌 잿빛 시간을 푸르르고 새뜻한 모양으로 탈바꿈해 주는 자동차는 그대로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런 자동차가 몸져누운 것이다. 기운이 없어 꼼짝도 못 하고,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것이다. 시동을 걸어놓고 환기를 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놓으면 가랑가랑 들리는 숨소리가 좋았다. 내가 살아 호흡하는 것처럼.
카센터를 하고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자초지종을 듣고나더니
ㅡ형님, 배터리 문제예요. 완전 방전이 아니고 모터를 돌릴 힘이 없는 상태. 보험서비스 불러 시동 걸고 배터리 교환하시면 돼요.
안심이 되었다. 배터리만 교환하면 된다고 한다.
아버지는 환갑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암이라고 진단을 내린 대학병원 의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나의 물건에 불과한 자동차는 부품을 갈아 끼우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나는데 세상을 지배하며 사는 인간은 그냥 그렇게 무너져야 하는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사람은 분명 삶을 즐기고, 세상을 누리고 사는데 정녕 필요할 때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인가.
금세 달려온 보험회사 직원은 능숙한 솜씨로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환해 준다. 그리고 시동 버튼을 눌렀더니 부르릉 엔진이 눈을 뜬다. 어디든 달려가겠다며 부르릉부르릉 목소리를 키운다. 이럴 때는 사람보다 낫다.
차는 다시 세상을 이어 놓았다. 평안하고 쾌적한 공간을 살려 놓은 것이다. 언제든, 어디든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배터리를 교환하자 다시 살아난 자등차는 잘도 달린다. 서랑저수지에 차를 세우고 앉아 있는데 마음이 참 무겁다.
인간은 어떤 것인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위대한 생명체'라고 하는가. 그 위대함은 한 번 무너지면 일으켜 세울 수 없는 것인가. 부러진 나뭇가지는 다시 돋아나는데, 사람은 그 아픔을 눈뜨고 바라볼 뿐인가. 인간의 배터리는 무엇인가.
하늘은 푸르고 수면은 잠잠하다. 그 위에 폭염이 쌓이고, 사람의 무능함이 한숨과 함께 쌓인다. 창조주 하나님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