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힘날세상 Oct 21. 2024

하프마라톤의 주로走路가 마음을 휘감아 왔다.

2024. 10. 20

제21회 오산독산성 하프마라톤 대회 하프부문 출발 장면




늘이 파랗게 내려와 있었다. 결승선 주변으로 내려온 하늘은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늘은 손을 흔들었다.  바람은 꼬리를 내리고 햇볕 속으로 숨어들었다. 평안이었다.


결승선은 최대 스피드로 달려들어가야지.

ㅡ보는 눈이 많잖아.

ㅡ힘들지 않은 것처럼 폼 잡고 들어가라고.


 악마의 속삭임처럼 실체實體도 없는 소리가 휘감아 왔다. 악마는 언제나 결승선 근처를 맴돌고 있다. 악마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나의 마라톤은 충분히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란히 결승선을 밟는다. 손주들의 해맑은 웃음이 환하게 맞아준다. 즐거웠다.



엘리베이터에서 안내문을 보았다.


제21회 오산 독산성 전국 하프마라톤 대회 신청받습니다.

종목 4.8km

인원 선착순 50 명

장소 관리사무실



웃음이 나왔다.

뭐야? 마라톤 접수하라는데 웬 웃음이야.



달리기를 마친 지금도 나는 그 웃음의 진면목을 모른다. 그때, A4 용지에 무표정하게 쓰여있던 안내문을 보았던 그때 왜 희미한 웃음이 흘러나왔을까.



ㅡ그래도 연습은 좀 해봐야겠지?

ㅡ4.8km 정도는 하이힐 신고도 문제없지.

하프 정도는 자다가 나가서 슬리퍼 신고 주머니에 손 넣은 채로 뛰었는데.



아내는 4.8km는 건강 달리기라며 그야말로 개무시했다. 안다. 아내가 두려움에 눌려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ㅡ그렇기는 하지. 젊었을 때였지만 우리는 하프 이하는 달려보지도 않았었지. 하물며 5km쯤이야.

맞장구를 쳤지만 은근히 밀려오는 걱정은 어쩔 수 없었다.



날은 더웠고, 기운은 빠지고 몸은 늘어지는 채로 9월이 어깃장을 부리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발장 어느 구석에서 잠들어 있을 런닝화는 내팽개친 채 한 발 두 산길로만 걸었다.

월악산 영봉을 올랐다가 수안보 온천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데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라톤 대회가 열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ㅡ신발이나 신어봐야지.

ㅡ그래야지.


아무리 4.8km라고는 해도 엄청 부담이 되었다. 마라톤화를 벗은 지  20년이 다되어가는데 어찌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몸을 써서 하는 운동은 정직하다.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마라톤의 녹을 조금은 벗겨내야 한다. 즐겁게는 달리지 못해도 힘들게는 달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달려야 한다.


집 앞에 있는 체육공원에는 이미 짙은 가을이 싸늘한 밤공기를 흘리고 있었다.


ㅡ허리를 곧추 세우고, 시선은 15 미터 전방, 발뒤꿈치부터 부드럽게 착지하고, 입을 꼭 다물고 두 번 들이마시고 두 번 내뱉고.


벌써 25년 동안이나 묻어두었던 달리기 자세를 소환해 본다.


 바퀴를 돌았으니 1.3km를 달렸는데 입이 벌어졌고, 여섯 바퀴 2.6km를 지날 무렵에는 허리가 자꾸 숙여졌다. 누가 봐도 지쳤다는 본새가 아닌가. 멈출 수밖에.


3일 만에 호흡은 가지런해졌고, 열 두 바퀴 5.2km를 달릴 때까지 허리를 곧추 세우고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달리기는 8분대였으며  40분이 지나서야 멈출 수가 있었다.


ㅡ도로를 달려보자고. 체육공원에서 갑골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좋겠어.

ㅡ은근한 오르막도 있으니 맛이 나겠지.


마라톤은 도로를 달리는 경기이다. 가장 좋은 코스는 2차선 도로이고 건물이 가로막아 시야를 차단해 주는 것이 안정감을 준다. 평평한 것보다 은근하게 오르내리는 게 좋고, 직선도로는 젬병이고 적당히 구부러지는 도로가 제격이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왕복 1.62km의 직선도로이고 아주 완만한 오르막이다. 밤에 달리는 까닭에 시선이 분산되지 않았고, 세 번째 날부터는 오르막이 주는 짜릿한 맛이 흘러나왔다.


ㅡ오르막이 조금 더했으면.

ㅡ7분대로는 달리고 있는 거지?

ㅡ그래도 달려지긴 하네.

ㅡ몸이 기억하는 건가.


우리는 이야기도 나누며 달릴 수 있었다. 달리기는 몸속 깊이깊이 가라앉아 있었으나 아직 화석이 되지는 않았다.



아들이 하는 짓을 따라 해 본다. 희미한 감정이 느껴지는 했는데



운동장은 이미 러너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서둘러 옷가방을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돌아섰을 때는 하프 참가자들이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컥하고 감정이 솟구쳤다.


ㅡ이게 얼마만인가.

ㅡ2006년  동아마라톤이 마지막이었으니 18년 만이로군.

ㅡ감회가 새롭네.

ㅡ천천히 달려서 40분에만 뛰어보자고.

ㅡ8분대는 걷는 속도니까.

ㅡ그래도 대회발 있잖아.  5분 정도는 당길 수 있을 거야.


10km 주자들이 출발하고 출발선으로 간다.

ㅡ너무 뒤에 서면 사람들에게 걸려서 못 뛰니까 조금 더 앞으로 가자고.

ㅡ5km는 처음이네. 70을 앞두고 5km 대회라니.

ㅡ할아버지.

딸이 손주들을 데리고 왔다. 어제 응원하겠다고 집에 와서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지 않았길래 조용히 나왔는데 뒤따라 온 모양이다.

ㅡ오, 아가들 왔구나.

ㅡ아가들 아니라니까요.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입상을 노리고 있는 선두주자들이 총알처럼 튀어나가고 나면 주자들의 대열은 거대한 물결이 되어 흘러간다.

300 미터 정도까지는 그냥 흘러가야 한다.

어린아이들 손을 잡고 달리는 부부, 처음부터 걷고 있는 노파들, 유모차에 젖병을 물고 있는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부모들,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통통걸음으로 달리는 젊은 처녀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 중년의 여자분.

주로走路는 주황색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달리기는, 청명한 하늘을 따라 달리기는 달려보아야 참맛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이 손을 잡고 달려보아야 한다. 연인들끼리, 부부끼리 마음을 이어 달려보아야 한다. 달리다가 힘들면 걷고, 그것도 힘들면 벤치에 앉아서 파란 가을 하늘이라도 바라보아라. 가슴으로 들이치는 은근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리라. 소중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 나와 발걸음을 같이하고, 호흡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달리는 행위보다 앞선다. 전주에서는 해마다 부부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20여 년 전에 대회를 시작한 목표가 부부끼리, 연인끼리 거친 숨을 쉬어가며 힘든 시간을 견뎌보자는 것이었다.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에는 마라톤 대회에 부부완주상이 있었다. 우리 부부도 2002년 제5회 서울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완주상을 받았었다.


오산천을 따라 달린다. 오산대학교 앞 인도교를 건너면 반환점을 돈 셈이다. 주로도 헐거워졌다.

ㅡ어때, 괜찮아?

ㅡ괜찮지.

옆에 달리는 아내의 숨소리가 잔잔하다. 페이스를 조금 올려봤다. 아내가 따라붙었다. 조금 더 끌어올려도 될 것 같았지만, 그대로 달린다. 19분이 지나고 있다. 걷는 사람들이 많다.


넉넉하지 못했어도 큰소리는 내지 않았고, 힘들었어도 탐욕에 빠져들지 않은 아내덕에 평안하게 살았다. 아이들도 탈없이 잘 자라주었다. 그게 우리가 마라톤을 할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그리고 고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손주들의 응원을 받으며 주로走路에 나서게 된 것도 가정의 평안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감사한 일이다.


결승선이다. 대형 아치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얼마든지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멈추라고 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마라톤이나 삶이나 같은 건가 보다. 주로에서 달리는 동안은 내 마음대로 달리는 걸음의 품질을 꾸며댈 수 있지만, 결승선에 이르면 멈춰야 한다. 그것이 마라톤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멈춰야 하는, 반드시 멈춰야 하는.


 1999년 5월에 마라톤을 시작하고, 9월에 하프마라톤에 출전했다. 변산의 해안도로에서 17km  이후에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온몸은 분해되어 있었다. 고통이었다. 육신의 고통이었고, 삶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결승선에서 펑펑 울었다.


20년이 지난 오늘, 결승선을 밟았으나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달리기를 멈추었을 뿐이다. 무덤덤한 시간을 안고 결승선을 나서는데 10km 선두주자가 결승선을 넘는다. 1위의 영광을 안았지만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그의 숨은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죽어버린 듯한 마라톤 세포가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을 보았다. 10km를 넘어 하프마라톤의 주로가 마음을 휘감아 왔다. 어쩌면 좋아. 아무래도 70살에는 하프마라톤에 나서야 할 것 같다. 아들이 동반주해 줄까.


언제나 달리기에는 끝이 있다. 다양하게 달려온 걸음은 거의 같은 방식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끝없는 쉼이 열린다. 그래서 인생은 마라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2화 손주들의 아침 밥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