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들이 펼쳐놓은 시즈오카 여행
언필칭 새벽은 소리 없이 다가선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 새벽은 바람과 함께였다. 제법 쿵쾅거리고 다녔지만 날 것 같은 캠핑장에서 텐트 속에 몸을 감추고 밤을 가라앉힌 사람들은 '그깟 새벽'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두들 언제까지 가라앉아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밤을 끌어안고 있을 때, 나만, 홀로 깬 나만 바람이 어떻게 세상을 흔들어대는지를 보았다. 커다란 나무가 온몸을 흔들어야 했던 그 바람 속에서 문득 이방인스러웠다.
시즈오카현 후지미노오카 캠핑장. 관리동 앞에 작은 전망대에 앉아 묽어져 가는 새벽을 보았다. 커다랗게 몸을 솟구친 숲너머로 후지산이 우뚝 서 있었다. 정말 관능적인 몸매를 다 드러내놓고도 후지산은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뒤로 어둠이 빨려 들어가며 새벽은 시나브로 아침이 되어갔다.
ㅡ아버지, 캠핑 갈까?
느닷없이 아들이 전화했다.
ㅡ좋지.
불감청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라는 말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말이었다. 아들과 밥 한 끼만 같이 먹어도 좋은데 캠핑이라니. 그것도 비행기 타고 일본까지 가는 캠핑이라니. 바로 눈앞에 우뚝 서 있다는, 그 아름답다는 후지산을 바라보는 곳에서 캠핑이라니. 복권에 당첨된 느낌이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아들은 내 품을 떠났다. 허전했다. 한 해 전에 딸이 먼저 서울행 버스를 탔을 때보다 두 배는 더 힘들었다. 두 아이가 모두 자기들의 세상으로 떠나갔다고 생각하니 쉽게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픔이었다. 가슴을 움켜쥐고 한동안 아이들 방에서 잤다. 그것이 빈둥지증후군이라는 것도 모르고 도둑을 맞은 느낌으로 밤이면 아들의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잤다. 자다가 잠을 깨어 소리 없는 울음을 울기도 했다.
ㅡ세월이 약이다. 세월이.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ㅡ그게 다 사람 사는 거다. 자식이 언제까지 네 품에 있을 줄 알았어? 놓아버려. 놓아버리고 마라톤이나 열심히 하자. 내가 언제든 동반주할게.
선배는 잊으라 했다. 놓아주라고 했다. 이제 아이들에게서 눈을 돌리라고 했다. 그랬다. 자식은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야 했다. 제 날갯짓으로 나무꼭대기에 오르고, 산꼭대기를 넘어서 하늘까지 날아올라야 한다.
ㅡ형, 알지. 아는데 칼로 긋는 듯 마음이 아프네.
선배는 그렇게 말했지만, 세월은 약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것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아픔의 깊이는 더해갔다.
브런치 인기 작가인 '달숲'님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잖은 패배감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썼다. 그러나 그건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제 가정을 이루어서 별도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나갈 때까지는, 아니 그 이후에라도 곁에 두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 것을. 달숲님의 부친께서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다. "아빠는 말이야, 선물처럼 찾아온 우리 딸이 너무 감사해. 그러니 그런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 어느 부모가 자식을 마다하겠는가. 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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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나고 난 후에 찾아온 건 적막이었다. 그저 집안 가득한 쓸쓸함이었다. 미성년자로 살아가는 동안 지키고 감싸 안으며 길어왔던 아이들. 나의 전부를 던져가며 곱고 바르게 키워왔던 아이들.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모습, 직장인으로서 세상의 구성원이 되어 제 영역을 넓혀가는 걸음을 바라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대학생부터는 동반자의 관계가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가족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지지고 볶는 재미를 맛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것은 분명 재미나는 일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을 떠올렸다가 얼른 지워버렸다. 아이들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더라도 삶의 어느 한 토막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가장 고소하고 맛있다는 참치 '오도로' 같은.
아들은 아직도 한밤중이다. 어떻게든 밥이라도 해 볼 요량으로 부스럭거려 보지만 버너를 피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예전에 알코올로 예열해서 불을 피우던 석유버너에 익숙해 있는 터라, 생긴 것부터 이상하게 생긴 아들의 가스버너는 언감생심, 이미 내 손을 벗어나 버렸다. 괜히 얼쩡거리다가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의 잠이나 깨울 것 같아 다시 전망대로 올라가 말없는 후지산이나 바라본다.
어젯밤은 아들과 술잔을 들고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 무수한 말들은 한 마디도 꺼내놓지 못했으면서. 나도 그랬지만 아들과 아버지는 어딘가 모르게 데면데면하다. 시시덕거리는 이야기쯤은 스스럼없이 건네지만, 무언가 무게가 실린 이야기들은 쉽지 않다. 상담학에서 말하는 소위 라포 Rapport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야영장에서 둘만이 마주 앉아 있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닌가.
참았다. 힘주어 참았다. 나에게는 내일 밤이 남아 있지 않은가. 오늘 어색해지면 내일 일정까지 무너질 수 있을 테니까. 이럴 때 좋은 게 어린 시절 이야기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텐트를 들고 다니며 캠핑을 다녔다. 지리산 화엄사 골짜기 텐트 속에서 열이 나서 구례까지 버스 타고 다니며 통원 치료를 했었고, 강화도 함어동천 야영장에서 머물면서 내가 저수지 부근에 있는 남방식 고인돌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런 케케묵은, 그러나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이야기가 이런 밤에는 제격이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고, 그 즐거운 기분으로 우리는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아침은 아들에게도 찾아갔다. 밤새 잘 익은 빛을 텐트로 들이밀어 아들을 깨워 놓았다.
ㅡ벌써 일어나셨어?
ㅡ더 자지 않고 일어났어?
ㅡ불편하지 않았어?
ㅡ20만 원짜리 매트에서 잤는데 불편하겠어. 잘 잤지.
오른쪽 핸들인 일본차를 아들은 능숙하게 운전하고 다닌다. 나름 준비를 해온 것 같다. 신호등의 체계도 다 알고 있었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아들의 머릿속에 다 저장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둘째 날 여행은 여전히 즐겁게 이어졌다. 온천욕, 후지산세계유산센터, 후지산 본궁까지. 어렵게 찾아간 일본 라멘이 너무 짜서 먹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하루 종일 붙어다니며 이렇게 저렇게 나눈 이야기들이 좋았다.
둘만의 여행이 가져다 주는 진가를 맛보았다. 그리고 즐거웠고, 마음이 넉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