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이 지나는 시점에서 몸이 개운하고 목에 칼칼한 기미도 사라져서 조기에 격리를 풀어볼 요량으로 자신감 넘치게 키트 검사를 시행했다. 코를 쑤실 때의 긴장감은 여전했고 훅 들어오는 예리함은 날카로운 소름을 일으켰다. 용액이 테스트지에 순식간에 스며드는 게 어째 불안하더니만 이내 선명한 빨간 줄 하나에 희미하지만 또 다른 빨간 선을 새겨 놓았다.
‘내 몸은 이미 건강해진 느낌인데 바이러스는 잔존하고 있는 것인지?
5일을 어찌어찌 버텨냈는데 나머지 이틀도 여지없이 방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다니.’
그래도 월, 화 이틀 동안엔 가족이 출근하고 학교에 등교한 사이에 잠시나마 거실과 주방에 나와서 홀로 점심을 차려 방으로 가져왔다. 당연히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방 문을 나온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7일 격리에 약 처방은 5일 치를 받아서 3일간 약을 복용하고 나서 약사인 처형이 주고 간 약으로 바꿔 먹었다. 말라리아에 잘 듣는 약으로 코로나 치료에 효과가 빠르다며 권했다.
아내가 받아서 내게 전해주었는데 몇 알을 어떻게 먹으라고 했는지 정확히 알아듣지를 못했다.
문을 두고 오고 가는 대화라 표현이 모호했던 모양이다. 식후 1일 3정을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을 식후 3정씩 세번 하루에 9알을 삼켜버렸다. 3일 치를 하루에 먹어 치운 셈이다.
그날 밤에 샤워를 하려고 보니 하체를 지나는 동맥과 정맥의 핏줄들이 선명한 파랑과 빨강으로 두드러져 나왔다.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었는데 그것 역시 저녁으로 먹은 육개장의 매운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순간
약 복용을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임상 반응을 살피는 맘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내는 내게 염려와 핀잔을 쏟아내며 왜 설명에 귀 기울이지 않았냐며 성화를 부렸다.
처형과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다른 사람들은 약이 쌔서 구토하거나 이상 반응이 나타났을 건데 잘 견뎌냈다며 무던하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프리카를 촬영 다니며 이미 많이 먹어봤던 약이라 그랬을까’ 혼자 생각하면서 어쨌거나 묵묵히
7일을 견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저래 가족의 염려와 정성으로 7일째를 맞았으니 말끔히 나아서 격리 해제라는 표식을 받고 싶었다. 숙제 검사 후에 ‘참 잘했어요’의 도장으로 확인되는 떳떳함 같은.
'진단키트에서 한 줄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신속항원검사나 PCR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고 또다시
약을 받고 7일간 격리에 들어가야 하나?' 불안과 근심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꽃 피는 봄을 야외에서 맞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힘차게 코를 후볐고 조심스레 시약을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