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훌쩍 넘긴 차량을 바꿀 때가 되었다.
이리 재고 저리 재다 드디어 가닥을 잡고 차종을 결정했다. 듣자 하니 반도체 수급이 용이치 않아서 차량 계약을 하더라도 인도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들 했다.
타던 차를 카센터에 수리 맡기고 주변에 있는 K 대리점으로 향했다. H사의 동급 차량도 대안으로 생각해 두었으니 가급적 빨리 출고되는 차량으로 계약할 요량이었다.
K 대리점의 간판을 보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전시된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는 모양이구나’ 생각하며 돌아 나오려는데 카매니저 한 분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물으니, 차량 공급이 원활치 않아서 대리점에 전시할 여력도 없이 차가 팔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차량의 경우도 내부 디스플레이 모니터 등을 최첨단으로만 하지 않으면 3개월 안에 인도가 가능하다고 했다. 반도체 공급의 불확실성 때문에 완성품이 늦어지는 것이니 무난한 옵션을 선택하면 당겨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계약을 진행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혜화동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보성고등학교를 나는 경신고등학교를 다니며 혜화역에서 내려 혜화여고 앞을 지나 오르내리던 학교 길에 대한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었다. 특히 학교 앞에 자리 잡고 있었던 한옥 가옥의 라면집에 대한 맛난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청결은 좀 거리가 있었던 곳이었지만 배불룩한 주인아저씨가 끓여내 온 기막힌 라면에 대한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성균관대학 쪽에서 날아오르던 87년도 최루탄의 매캐한 기억과, 주말이면 대학로 근방에는 얼씬 거리 지도 말라며 단속에 나선 선생님들을 피해서 거닐었던 마로니에의 해방감까지도.
그렇게 계약을 마무리 지을 무렵 내 신분증을 받아 들고는 그가 다시 한번 놀라며 의아해했다.
자기랑 주민번호 앞자리가 같다며 어디서 살았고 초등학교를 어디 나왔느냐고 물었는데,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에 이웃 동네에 살았던 친구였다. 그는 등굣길엔 우리 집 앞길을 지났기에 내가 어떤 집에 살았고, 나도 그의 동네를 기억하기에 서로가 살았던 마을의 골목 구석구석을 너무도 잘 아는 이웃 동네 친구 사이였다.
동창들의 안부를 물었고 확인하는 사이에 누군가는 건강이 안 좋아졌음을 알게 되었고, 또 누군가는 과로사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나누었다. 여전히 직장에 남아 사회생활을 하는가 하면 , 조기에 은퇴해서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학교 주변에서 카페나 공방을 하는 친구로 인해 코로나 전에는 그래도 자주 모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40여 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했고 같은 기억의 퍼즐을 맞추며 잠시나마 과거를 소환해보기도 했다.
6학년 때는 60명이 넘는 한 학급 수에 18반까지 있었고, 저학년 때는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교실 복도 안팎을 왁스로 광내느라 애쓰던 기억과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던 선생님의 사무적인 태도와 이와는 달리 우리를 너무도 행복하게 해 주셨던 선생님에 대한 사랑을 추억해냈다.
수유초등학교는 40년 전에 학교에 수영장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급식도 실시했던 학교여서 친구들에게 그때 얘기를 하노라면 사립학교도 아닌 곳에 그런 시설이 어디 말이나 되냐며 거짓말한다고 안 믿더라는 하소연 같은 넋두리도 풀어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금세 친밀감이 일었다.
동시대를 같이 부대끼며 살아낸 동지를 만난 반가움이 컸고, 열심히 가장의 자리를 지켜내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이어서 기뻤다. 시간보다 길게 대화 나누며 헤어졌지만 그래도 다음에 또 한 번 만나서 식사나 차를 나누고 싶었다.
대리점에 진열된 차량이 없었기에 그냥 지나쳤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만남이었다. 어쩌면 만나게 될 인연이었던 것 같았다. 그도 형제가 많아서 어쩌면 나의 누나와 형이 그들과 친구 사이였을 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면 다른 친구들의 안부를 더 묻고 싶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는 그 친구의 인생은 어떠했을지 궁금했다.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과 가치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누고 싶었다.
차량을 정하고 이런저런 옵션과 사양을 선택했는데, 뒤돌아서 생각해보니 미처 정하지 않은 부분들이
생각났다. 나는 퇴근 후 늦은 시간까지 문자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친절하게 답해주던 친구는 그런 디테일한 부분은 자기가 다 챙기려던 사항들이었노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반가웠다.
차량이 나오기 전에 친구를 한번 만나러 가보려 한다.
사진-by: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