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 없는 현실에 보이지 않는 미래까지 중첩되니 몸의 기운이 슬며시 빠져나간다. 어지럽고 공허하다.
이제 오십 대에 이르렀지만 늘 건강해서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선교지에 나가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섬기고 가르칠 수 있다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가난과 배움에 주린 사람들의 눈빛을 알기에 그들을 보듬고 희망을 밝히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런 바람이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가 싶었는데, 생각지 못한 난관을 만났다.
아프리카는 절대로 갈 수 없다며 딸아이가 반대하고 나섰다.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선진국이 아니라는 이유를 대기보다는 현재의 학교생활과 친구와 어울리는 삶이 만족스러워서 변화를 주기 싫다고 항변했다. 직장생활에 지쳐있는 아내는 이참에 회사 일을 멈추고 아프리카에서 쉼을 가질까도 생각했는데, 딸이 끝내 버틴다면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다. 고등학생인 아들 역시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진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시기인데, 아들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곳에서의 생활을 도전해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물론 이렇게 정리하기까지도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어쩌면 마음 한가운데는 현재에 머물고 싶다는 것도 잘 안다. 그곳의 국제학교는 우리와는 학제가 다르고 학년에도 차이가 있어서 제 학년으로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렇게 학년을 유지한데도 언어의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한 학년을 낮춰서 가는 것도 고려하지만 실제 학교와 상의하며 결정해야 할 문제인 듯하다.
딸은 내게 그냥 혼자 1~2년만 다녀올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가족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유익함보다 견뎌내야만 하는 실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각각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은 비용적 측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감내해야 할 짐이 무거워 보였다. 아프리카 대륙과 르완다는 여러 해에 걸쳐서 다녀온 곳이라 내게는 익숙하다.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고 개발이 더딘 것은 그냥 불편함을 감수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란 대륙을 미디어로만 접했던 가족들이 느끼는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천 개의 언덕 위에 놓인 르완다와 세련된 시내의 집
어쨌든,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키갈리 시내와 내가 일하게 될 학교와 아이들이 다니게 될 국제학교 등의 위치를 파악하고 홈페이지를 살펴보았다. 구글맵으로만 봐도 천지개벽 정도로 변모하고 있는 키갈리 지역의 항공사진과 동네 모습을 꼼꼼히 찾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르완다에 다녀온 지 5년이 지났고, 처음 그곳을 방문했던 20년 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다면 달동네가 비버리힐스로 탈바꿈한 형국이다.
아직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가 받게 되는 생활비와 거주비로는 가족의 생활을 꾸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풍족하게 나가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전문인으로서 기본적인 경제적 필요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주중에는 맡겨진 소임을 다하고 주말에는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할 것 같다. 사도 바울처럼 텐트 메이커와 복음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서 집안의 가장이며 동시에 소명을 받을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현지에서 고등학교 전반을 운영하시는 한국인 선교사님과는 많은 시차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점을 카톡으로 주고받는 중이다. 선생님은 그곳에서 학교에 미디어학과를 설치하고 영상제작을 다음 해부터 가르치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시고 나는 그곳으로 가는 계획을 조심스럽게 수립하고 있다. 아내와 아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사항을 묻고 답을 듣느라 현지 시간이 밤인데도 불구하고 문자를 드리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계신다.
집을 구하는 일에서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차량 구입이나 수송은 어떻게 할지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래도 걱정보다는 감사와 부픈 기대감을 갖고자 한다.
막연한 희망이 구체화되는 과정은 그분의 인도하심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는 듯하다.
막상 떠나게 된다면 집도 정리하고 주위 분들께 알리고 인사도 드려야 하겠다. 행정적인 절차와 일정도 확정되야하는데 그런 과정이 조속히 완료된다면 약간의 붕 떠있는 마음이 조금은 안정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프리카를 좋아하는 이유 하나를 들라고 하면 단순함과 친자연적인 삶이다.
새벽 여명에 눈을 떠서 아침이 밝으면 하루를 시작하고 어둠이 내리면 잠자리에 드는 심플하고 담백한 삶.
사람들과 대화하고 개인적으로 깊이 묵상하며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는 삶.
이방 속의 나그네로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삶.
배움을 향해 눈을 반짝이는 목마른 영혼들을 바라보며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삶.
여전히 넘어야 할 어려움과 장벽들이 존재하겠지만, 의미와 가치 있는 공간과 시간으로 나를 던져보려고
한다. 가족의 전적인 합의와 동의 하에서도 난관은 산적하게 놓여있겠지만 이 모든 것 가운데서도 인도하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