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로 향하는 길엔 곱씹을 추억들로 가득했다

2박 3일 경주여행

by 준구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들 학교에서의 수학여행이 사라졌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설렘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안쓰러워 우리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천년고도인 경주로 향했다. 왜 “경주”인가를 묻는 다면 유구한 신라의 문화유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 때의 필수 코스였던 공간에 대한 추억도 한몫했다.


아무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난 이후 우리의 유적지를 찬찬히 둘러보고 음미하고자 하는 욕구는 높았지만 경주에 쉽게 발길이 닿아지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고 제주도처럼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니고, 열차를 이용하자니 자가용이 아쉽고 차를 몰고 가자니 알짱 하게 막히는 길이라 엄두를 내지 못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엔, 금요일 오전 근무만 하는 아내가 끝나기가 무섭게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가 차에 태워 바로 경상도로 향했다. 9월 2일 금요일, 사상초유의 파괴력을 지닌 태풍 힌남노가 남해상으로 몰려온다는 소식과 흩뿌리는 빗방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려 저녁 무렵엔 마침내 경주에 도착했다. 조선의 왕릉보다도 더 크고 넓은 대능이 평지 위에 솟아 있고, 초록의 잔디와 숲에 어우러진 첨성대 사이로 물드는 저녁놀이 내려앉았을 때 비로소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된 도시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비가 흩뿌리다가도 간혹 개여 햇살을 내비치는 날씨가 이어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건 아니었지만 태풍의 중심이 점차 이동하며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하늘에 켜켜이 싸이는 먹구름과 강해지는 바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경주에 도착한 저녁엔 잠시 무지개가 나타났다가 이내 강한 비를 뿌렸다.


금요일의 숙소는 4인 가족이 묵을 수 있는 콘도로 예약을 했고 토요일에는 근처 보문단지 내에 있는 호텔을 잡았다. 주말 숙박비용이 평일보다 한참 높았지만 가족을 동반한 여행의 잠자리를 구하는 데에는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고 주위 환경도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잘 쉬려고 왔는데 밤의 소음에 시달리거나 혹여라도 잠자리가 불편해서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KakaoTalk_20220907_220100019.jpg 불국사


토요일 아침 우리는 보문단지의 숙소에서 나와 불국사로 향했다.

매표소인 일주문을 지나 반야 연지에 이르니 유구한 세월 속에서 아름답게 가꿔진 연못에 시선이 멈춰졌다. 물에 비친 자연과 흐드러지게 가지를 뻗치고 자라난 나무와 풀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풀내움과 숲의 향기가 사찰의 깊이와 무게감을 더해주는 듯 신성한 기분으로 천왕문의 사대천왕 앞을 지나갔다. 잠시 아이들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면서 나의 선친이 같은 자리에서 나를 촬영해주던 4~5십여 년 전의 어느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수문장들이 오늘은 이다지도 친근하고도 반가운 것인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앞 공터에서 한참 촬영 중인 한 무리의 사람을 발견한다. 고색창연한 석축물과 난간 목조물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는다고 아우성치던 3~4십 년 전의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의 촬영 장소였다. 이제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은 그때 6십여 명의 반 친구들과 선생님의 웅성거리는 모습이 되살아났다.


KakaoTalk_20220907_220830931.jpg 반야연지
KakaoTalk_20220907_220830931_01.jpg 천왕문의 사천왕


대웅전 앞에 서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다보탑을 찬찬히 둘러보니 선과 곡선의 균형과 조형미가 참 잘 어울려진 아름다움이 전해져 왔다. 석가탑에서도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면모가 느껴졌다. 무수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의 혼과 숨결이 여전히 살아있는 듯했다.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유산이다.


대웅전을 지나 무설전과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관음전까지 올라갔다. 계단보다 더 가파르고 높게 설계된 층계를 올랐다. 온몸으로 계단을 오르며 불국사 경내 구석구석을 밟아 보면서 수많은 선현들이 걸었을 그 대지 위에 나의 걸음을 보태어 보았다.


KakaoTalk_20220907_221501828.jpg 다보탑


KakaoTalk_20220907_222256003.jpg 석가탑


다음으론 토함산의 석굴암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구불부불한 산길을 따라 차량을 몰았고 주차를 하고 나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한쪽으로 가팔라지는 낭떠러지 길에 주의를 기울이며 아이들과 함께 우산을 들고 산 위를 향했다.

비가 내려 굽 굽 했지만 산속의 공기는 명징하고 상쾌했다. 십여분 이상을 걸어 마침내 당도한 석굴암 안에는

인자한 미소를 뿜어내는 석가모니 본존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두운 공간을 잔잔히 비춰주는 조명과 더불어진 본존불과 보살들의 부조가 공간감을 극대화시키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제는 본존불에 접근할 수 없도록 유리벽이 설치되었고 사진조차 자유롭게 찍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유리 너머로 조각상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감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버지는 나에게 이 본존불을 보여주셨다.

그때는 유리벽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본존불과 벽면의 부조상에 접근하는 것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나의 생생한 기억으로는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나를 목마 태우셔서 석가모니 본존불 석상의 차가우면서도 거친 표면의 질감을 느껴보라며 손을 가져다 대주시기도 했다. 그때 손과 몸으로 경험한 석상의 질감과 온도를

나는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머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손과 호흡과 체온과 몸의 세포가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절이었다.


본존불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 서 있었다.

꼬마였던 아버지의 아들이,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에 두 자녀를 대동해서 이곳에 다시 오른 것이다. 본존불의 온화한 미소는 그대로인데 유한한 인생사는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은 본향으로 돌아가고 기억만이 추억으로 남겨졌다.


둘러봐야 할 경주의 유적들이 많지만

곳곳에 서린 행복한 추억들의 소환으로

나는 부러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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