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골에서의 하룻밤

어둠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

by 준구

방안에 불을 끄니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렸다.

강원도의 첩첩산중에서 이삼십여 호가 듬성듬성 모여 사는 마을이고 보니 고요와 평온이 밤에 짙게 깔렸다. 도심이라면 불가능할 검은 먹물이 사방을 두른 것 같은 캄캄함이다. 흐린 날의 밤이라 또렷한 별 빛을 볼 수는 없었지만 가로등 불 마저 드문 농가의 저녁은 맑고 영롱한 공기만큼이나 깊고 적막한 평안에 싸였다.

이런 암흑과 고요함 때문이었는지 이내 깊은 잠에 빠져서 새벽녘에 깨어났다.


은퇴 후에 강원도 홍천의 두메산골에서 새로운 삶을 펼치고 계시는 집사님 댁을 방문한 것은 오후께였다.

홍천강의 상류쯤에 해당하는 내를 따라 1차선의 좁은 길을 통해 다리를 건너니 작은 산들 사이로 펼쳐진 마을이 보였다. 각양각색의 집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지어진 듯 깔끔한 모양의 주택은 담도 없이 개방된 공간에 현관이 놓였고 거실의 큰 창으론 마당을 드나들 수 있었다.

은퇴할 즈음에 황토집을 짓기 위한 목공을 배우시고 귀농학교에서는 농사법 익히시면서 발품을 팔아 땅을 보러 다니시던 끝에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 강원도 홍천의 산골이었다. 오백여 평의 너른 땅을 구입해서 집의 설계를 구상하고 밭을 조성해서 세밀하게 관여한 끝에 이루어낸 공간이다.

목수들의 세심함이 엿보이는 집 내부의 마감재와 높은 천장이 주택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고, 거실에서는 널찍하게 펼쳐진 평야와 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집 안에 들어서니 아랫집에서 수확해서 가져다주었다는 고구마와 윗집에서 먹으라며 가져온 파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분주하게 살아가던 도심의 생활과는 다르게 이웃을 찾아가기도 하고, 누군가의 방문을 받으면

반가워하며 서로 차를 마시며 대화 나누는 여유로움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도심의 밀집 주거 형태가 아니기에 층간 소음과 같은 예민한 문제들이 없어서 음악도 크고 자유롭게 들으시며 생활하고 계셨다.

물은 지하수를 파서 끌어올린 것이라 달고 맛있었다. 점심과 저녁으로는 밭에서 따온 호박에 양파를 두르고 그 위에 고등어 한 마리를 조렸는데 맛이 담백했다. 몇 가지 반찬도 생협에서 가져온 싱싱한 채소와 약한 간으로 대친 것이라 자연의 맛 그대로와 절제된 양의 식사를 차려 주셨다.

주변을 보여주시겠노라며 함께 둘러본 마을과 산은 임도로 잘 닦여진 길에 밤나무와 대추나무의 열매들이 붉게 익어 사람의 방문을 반기는 듯했다. 가을의 들녘은 추수를 마쳤고 배추는 아름드리 속이 알차게 영그는 중이며 코스모스는 가을의 운치를 부추겼다. 산 중턱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산의 신령한 기운을 세상으로 뿌려주는 듯 신성하게 전해졌다.


KakaoTalk_20221004_184332482.jpg 산골의 주택
KakaoTalk_20221004_184332482_05.jpg 마을 어귀의 소국


KakaoTalk_20221004_184332482_01.jpg 무르익은 벼


KakaoTalk_20221004_184332482_06.jpg 수확한 들판


도심에서의 분주함이 두메산골의 고요와 평온함을 만나 가속을 멈추고 쉼을 깨우치는 중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도 이른 밥상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식사를 했다.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은 더 깊은 대화를 위한 매게일 뿐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었다. TV에 연연하지 않았고 핸드폰에 매이지 않았으며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시간을 즐겼다.

아내는 집사님과 함께 고구마 줄기를 손질했고, 딸아이는 마당으로 나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먹이를 주며 즐거워했다. 나는 책을 뒤적거리다 밭으로 나가 알맞게 자라난 탐스러운 호박을 하나 따서 들어왔다.


면사무소와는 조금 떨어진 곳이라 인근에 학교와 병원 등의 편의 시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자연히 젊은 층의 인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나이 드신 어른들과 은퇴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심처럼 사람이 밀집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길을 가다가도 간간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물론 제한적인 공간이라 이웃 간에 앙금이 싸이면 서로 등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집사님 댁은 윗집과 아랫집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먹거리를 나누고 흉금을 터놓는 중이라고 하신다.


서울에도 집이 있지만 이제는 점점 이곳 산골에서의 삶에 푹 빠져 깊은 정이 들어가는 중이고

고요한 중에 묵상하고, 단순한 삶을 즐기면서 자연과 가까워지시는 모습이다.


하루를 묵어가는 것뿐인데, 아주 맑은 기운과 명료한 깨우침을 얻고 서울로 향했다.

두 손에는 갓 따온 호박과 고구마순이 주워졌다. 대추와 밤은 마실 삼아 걷다가 얻게 된 수확물이었고

한 보퉁이 푸성귀에는 집사님의 정성이 담긴 것이었다.


가을의 농촌은 풍요로운 빛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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