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두 주간의 수업

by 준구

멀티미디어과 고1반의 4시간과 고2반의 4시간을 할당받았다.

일주일에 8시간 강의라 좀 여유로울 것 같았지만 월, 화, 금요일로 나뉜 시간의 강의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멀티미디어과를 담당하고 있는 루키와 잭 선생님을 만나 전반적인 커리큘럼을 확인하고 서로의 교과 분담을 논의했다. 미디어라는 장르가 다양하기도 하고 넓어서 중복을 피해야 하고 서로 잘 가르칠 수 있는 분야가 있으니 때로 협업하고 분업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해 보였다.

교육당국은 교과에서 가르쳐야 할 핵심적인 내용의 아웃트라인을 내려주고 교사들은 그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스스로 교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통된 교과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쯤 되고 보니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전달해야 할 교육 내용을 PPT로 정리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멀티미디어교실을 사용하는 날엔 나의 노트북을 TV모니터에 연결해서 바로 보여주고 넷플릭스등을 바로 링크해서 활용하지만 시간이 중복되면 교실에 빔 프로젝트를 들고 들어가서 일일이 연결해서 사용해야 한다.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이 소모된다. 수업은 두 시간씩 연강인데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무언가를 부연해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면 여간 애를 먹는다. 맛갈나는 설명을 하기가 버겁다.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을 기대하며 강의를 시작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똑같이 밀레니엄의 신세대라 열심인 아이들과 눈을 게슴츠레 뜬 아이들 그리고 가끔은 책상에 엎드린 아이들도 있다.


수학선생님인 프라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서 아이들을 깨우고 북돋워주는 스타일이라면

영어 선생님인 페이션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근차근 진도를 나가는 분위기다.

내가 이곳에 5년 전에 와서 2주간의 특강을 진행했을 때는 정말 영상제작에 갈급한 학생들과 월드미션프런티어 주변국의 스텝들이었기에 유달리 열심이고 눈빛이 살아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곳 르완다도 코로나로 인해 1~2년의 교육 공백을 겪은 터라 고등학생이 된 학생들의 생활 규범을 조금씩 강화하는 분위기다. 학생들도 영어를 제법 잘하는 친구들도 있고 표현이 서툴러서 수줍어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면서 학습의 효율을 높여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두 주간의 이론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학생들은 빨리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실습에 들어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장비가 귀해서 마음대로 손에 쥐어볼 수도 없는 것들이라 나의 등장과 더불어 더 큰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터였다. 학교에는 아쉬운 데로 캐논, 니콘, 소니 등등 다양한 경로로 들어온 후원 장비가 있으니 다음 주부터는 바로 야외 실습을 병행하기로 했다.

금요일은 오후가 체육수업이라 약간은 들뜬 날이기도 해서 금요일에 수업을 몰아서 실습을 갖기로 했는데 시간표가 잘 조정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20대 중반의 루키선생님은 후반작업에 해당하는 포토샽 강의를 맡기로 했고 나와 잭은 기획과 촬영을 협업하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는 실습이라는 말에 학생들이 두 눈을 번쩍 뜨고 환호성을 지른다.


지난 주간에는 학교의 행사도 있었고 이웃한 신학대학에도 중요한 집회가 있어서 주변나라의 목회자들 150여 명의 집회로 학교가 들썩였다. 9일 목요일에는 카욘자라는 외곽지역에 방문해서 교회입당예배를 드렸다. 미국 산호세에서 오신 김광일집사님은 70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건물내외벽의 페인트 도색을 위해서 오셨다. 키갈리 신학교의 4층 건물과 카욘자 예배당의 도색비용을 본인과 소속교회 성도들의 후원으로 오셨으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10여 명의 인부와 몇 주간의 동고동락 끝에 예쁘게 색을 입히고 맞이한 입당예배이고 보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세리머니였다. 시골동네의 꼬마와 마을사람들이 예배당에 모여 함께 축하 잔치를 즐겼다. 그리고 바로 돌아와 10일 저녁엔 우리 고등학교에서는 작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시험을 마친 졸업자들의 축하자리를 가졌다. 화려한 전통복장을 입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자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학부모와 교육계 사람들로 자리가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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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시험은 대게가 주관식이라 시험을 치르고 성적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대략 1년의 공백이 생기고 그 기간이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하는 시기가 된단다.

작년 대학수능에 해당하는 시험에서 우리 학교는 16명에 해당하는 학생이 만점을 받았다.

게 중에는 르완다와 유럽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동시에 입학원서를 낸 학생이 있다고 하니 내심 놀랐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문을 연 학교로 출발해서 교사 월급도 못 줘서

폐교위기를 넘기며 겨우 버텼던 학교가 3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world mission의 사명을 잃지 않은 결실을 거두는 중이라고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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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잘 분별하지는 못하지만 비버리힐스의 대 저택 같은 곳에서 사는 아이들과 달동네의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공존하는 학교다. 누군가에게는 학비가 버거워서 장학금이 아니면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눈부시게 발전한 르완다의 성장도 경이롭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함께 더불어 적정한 재화를 공유하며 잘 살아가는 가치를 나눠야 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는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나며 나에게 집중했다.

이러한 가치를 어떻게 공유하고 현실화해 나갈 것인가?


오늘 저널리즘의 기본을 이야기하면서 새삼 강조한 것이 있다.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저널리즘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저널리스트와 피디 영화감독을 꿈꾸는 너희들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절대 권력자나 거대기업과 파워엘리트와 너희들의 오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르완다의 시민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시민을 향해 충성을 다하는

제작자로 자라주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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