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방학에 들어간 학교

쉼이 필요한 시간

by 준구

두 주간의 시험을 마치고 학교는 짧은 방학에 들어갔다. 1년 3학기의 두 번째 텀을 마친 것이다.

여느 때처럼 8시 전에 교무실에 들어서는데, 학생으로 가득 차야 할 교정이 텅 비어 있어 다소 생경했다.

선생님들도 여유롭게 출근할 수 있는 기간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비어있다. 교직원들은 출퇴근 때에 지문인식기에 엄지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아프리카지만 르완다는 좋은 것에 대한 수용이 빠르다.

우리는 학교소속이 아닌 코이카 NGO 봉사단이라 출퇴근부를 찍을 필요는 없다. 자기에게 맡겨진 시간의

강의와 교과목 준비만 성실하게 담당하면 된다. 자리에 앉아서 다음학기에 배포해서 쓸 교재의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A4 용지에, 활자는 11 포인트로 정해서 140여 페이지 분량의 책을 엮었다.

내가 일일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어도, 커리큘럼에 맞는 내용을 검토하고 여기저기서 가져다 안치는 일도 오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욕심이라면 좀 더 내용을 더해서 두껍게 만들고 싶지만 복사하고 제본해서 엮는 일을 우리 스스로 해야 하기에 가능한 수준에서 멈추기로 했다.

다행히 책을 만들 때 필요한 복사기와 종이 잉크 등의 일절 비용을 코이카에서 지원받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다.


나의 앞과 옆자리에서는 연신 종이 넘기는 소리로 분주하다. 2주간 치렀던 시험을 채점하느라 선생님들은 시험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빨간 펜으로 마킹을 하는 중이다. 동그라미를 그리는가 하면

가차 없이 쭉쭉 작대기 표시를 하며 틀렸음을 표시하고 있다. 수학선생님은 리드미컬하게 작대기를 그어내려 가신다. 답이 틀리거나 하얗게 비어있는 답안지를 쭉쭉 체크할 때마다 나의 마음에 빨간 생채기가 더해지는 아픔이 전해왔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논리적인 사고를 요하는 놀이이고 게임인데, 왜 그때는 그런 체계화의 과정을

즐길 줄 몰랐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나의 학창 시절이 아프게 떠올랐고, 수학을 즐겁게 대하지 못하는 우리 학생들이 생각났다.

수학 선생님께 아이들이 수학을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애써 달라는 부탁의 말을 드렸다.

20대 중반의 젊고 쾌활하며 상냥한 프라하란 이름의 여선생님은 충분히 아이들을 배려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하면서 가르치시리라 믿는다. 우리 학교도 대략 한 반에 30명 남짓이니, 나의 고교 시절처럼 60여 명을 두고 일방적으로 진도만 빼는 식의 지식전달은 아닐 것을 기대한다.

선생님 책상에 놓인 시험 채점지


우기를 통과하는 중이라 비가 많이 오고 있다.

비를 뿌리더라도 20여분 힘차게 내리다 금방 개인 하늘을 보여주기도 하고, 종일 흐리다 간간히 물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날씨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이가 크다. 안에는 반팔을 입고 겉에는 긴 잠바를 둘러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학교의 점심은 2시 30분인데, 어떨 때는 너무 허기지기도 하고 현지 음식으로는 몸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으면 이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오늘은 퇴근도 자유로운 날이라 점심쯤에 봉사단 선생님들과 함께 나왔다.

모자로 빛을 차단하지 않으면 금세 몸이 뜨거워지는 강렬한 태양과 우기의 기온 차가 몸과 정신을 멍하게 만드는 때가 있다. 오늘이 딱 그런 상태다.

간단하게 점심을 차려 먹고 굳이 양치질까지 마치고 나서 잠시 소파에 앉았다.

몸은 눕고 싶지만 소화도 못 시킨 채로 눕는 건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하는 행동이라 그럴 수가 없다.

지난 몇 주 전에 수프를 끓여 먹는데 뜨거운 국물에 잇몸을 데었는지, 금을 씌운 어금니 안으로 염증이 생겼는지 잇몸이 시큰거려서 뜨겁고 차가운 물에 통증을 느꼈다.

현지의 치과나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처럼 마음 편안하게 오가며 진료받을 형편도 아니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듯 의식을 잠재우듯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

낮에 잘 눕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쉴 때도 있어야 한다고 위로하고 달래며 숨을 고른다.

이곳은 해발 고도가 높아서 움직일 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 사실이다.

공기가 맑지만 어떤 때는 금세 숨찬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삼사십 분 남짓 앉아서 조는 듯 잠들었다가 깨어났다.

방전된 배터리에 얼마간의 에너지가 재충전된 느낌이다.

바쁘게 나가느라 아침에 내리지 못한 커피를 생각하며 물을 데웠다.

필터를 걸러 아래로 떨어지는 원액과 갓 볶음 커피 향이 내 정신을 깨우듯 각성시켰다.

이제 석 달째를 맞아 이곳 생활에 적응하며 수업 준비하고 가르치고 예배드리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십여 일간의 브레이크 타임이 그래서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쓰고 있고 더 수고하는 중이니 때론 쉬면서 멋지게 사명을 감당해 보자.'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주문을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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