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작아도 다양한 사람이 산다

세계인이 얽혀서 살아가고 있다

by 준구

안뇽하세요!

인사를 건넨 사람은 아파트 1층에 사는 나이지리아 출신 엔지니어다.

그는 이제 아장아장 걷기를 시작한 아들과 늘씬한 부인을 둔 아기 아빠다.

검은 피부의 청년이 느리고 천천히 또박한 발음으로 안녕이라기보단 안뇽에 가까운 느낌으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프리카 사람이 한국말도 하네’

좀 의아하면서도 타국인이 내뱉는 우리말에 묘한 친근감이 전해진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지나쳤는데 저녁 무렵에 우리 집을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놀라 문을 여니 아까 그 젊은아빠다. 두 손에는 닌텐도 게임기를 들었는데

내 아들을 찾으며 집에 있느냐고 묻는다. 낮에 아파트에서 서로 만났는데 저녁에 같이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게임을 그리 즐기지 않는 아이가 웬일로 이런 약속을 했을까 의아했지만 둘은 자연스럽게 TV모니터에 기기를 연결해서 축구와 격투게임에 열중했다.

간간이 대화도 나누고 과자도 먹으면서 격의 없는 친구처럼 시간을 보낸다.

나이지리아국적인 이 친구는 르완다에서 캐나다인이 경영하는 IT기업에서 일하는 중이다.

한국에 유학 가서 구미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공부를 했고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마치면서 미국의

실리콘벨리에서 구글 관련 회사에서 일했단다. 그리고 다시 아프리카 르완다 키갈리에서 캐나다계 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는데 영어로 말하는 속도가 꽤나 빠른 편이었다.

아무튼 아들과 한참 게임을 즐기다가 밤 10시가량이 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짐작컨대 3살짜리 아들과 아내를 떼어놓고 잠시나마 자기의 시간을 즐기다 느지막이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친구를 보낸 뒤 아들에게 물었다


“별로 게임을 안 하면서 어떻게 사람을 불러서 같이 놀게 되었니?"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 몇 마디 얘기 나누다 보니까 집까지 오게 된 거 같다며

게임 좋아하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말했는데 그다음부터는 말이 빨라서 실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긍정적인 오케이와 예스로 일관했더니 그런 거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면 좋은 거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엔 잇몸이 시리다고 호소하던 아들을 데리고 현지 치과에 갔다.

나를 치료하던 의사는 2층 룸을 사용하는 르완다인 남자였는데 아들을 맡는 건 1층에서 진료하는

인도계 여의사였다. 치과에 오기 전에 아들은 자신의 증상을 영어로 표현하려고 열심히 표현을 찾아보며 치과용어를 외우고 있었다.

제법 자신의 불편한 곳을 알리며 의사의 진료에 몸을 맡긴다.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인도인 특유의 긍정을 의미하는 제스처는 낯설면서도 정겹다.

인도인은 언어 특유의 엑센트도 있지만 몸동작을 보면 더 확실한 구분이 간다.

다행히 치아는 좋으니 민감한 치아를 위해서 특별한 치약을 사용하라고 처방해 준다. 아들은

의사의 말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 눈과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해서 듣었고 핵심적인 내용은 거의

캐치한 느낌이었다.


치과 근처에 이발소가 있어서 이번엔 내 머리를 정리할 겸 들렸다.

파마를 해서 더 멋져 보이는 필리핀 출신의 이발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을 건낸다.

머리를 길게 기른 아들에게 음악 하는 사람이냐고 묻다가 BTS를 좋아하느냐로 시작해서 자기 친구들 중에는 한국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로 이어졌다.

나의 머리를 자르면서 나와 대화하다 아들과도 얘기를 나누었다. 외국인 고객이 많은 필리핀 이발사는 한국인 오너 밑에서 일을 배워서 상고와 짧은 머리스타일의 커트에 능했다.

나의 앞 손님은 마케도니아로 복귀하는 르완다 파견 근무자였는데 오늘 커트가 마지막이라 아쉽다며

머리를 감겨주고 안마를 해줬던 현지인 스텝들에게 감사의 팁을 남기고 샵을 나갔다.

아들은 잠시 대기하면서 나의 이발하는 모습과 앞 손님이 이발사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그마한 르완다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들은 긴 머리를 짧게 자를 필요를 못 느끼는지라 이발소에 온 김에 30분 마사지를 선택했다.

이 상품은 두피 케어를 중심으로 머리를 감기고 두피를 마사지해서 마지막엔 등근육을 눌러주며 마무리하는 코스로 구성된다. 머리를 감기는 부드러운 손길과 두피 혈을 자극하는 적당한 압력은 긴장된 두뇌에 편안함을 주는 이곳 특유의 서비스다. 물론 현지인이 즐겨 찾을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니 주로 키갈리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주 고객일 수밖에 없다. 유럽의 백인 여성도 제법 눈에 뜨인다.


오늘 하루만 해도 르완다 현지인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 유럽의 다양한 인종을 만나고 서로가 뒤섞여서 살아가는 현실을 경험한다. 국적이 어디이건 상관없이 서로가 소통하는 언어는 영어다.

한국에서 살 때는 언어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살았지만 외국인을 만나서 대화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지금은 딱 그 반대의 상황이다. 늘 외국인을 만나야 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언어가 편안해져야만 한다.


자유롭기 위해선 공부하고 노력해야 만남을 풍요롭게 가질 수 있다.

도전적인 삶이지만 감사함이 넘치고, 이방인으로 살지만 폭을 넓히려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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