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혼도 호수에서 산을 넘어 이웃한 부레라 호수로
불과 10미터 남짓을 이동했을 뿐인데 심장이 요동쳤다.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박동수가 증가했다.
숨이 헐덕거리면서 가슴이 조이기 시작했다. 백팩의 무게가 조금 나가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불과 십여 걸음을 움직인 것 치고는 과한 몸의 반응이다.
가이드가 길을 안내하고 아들이 앞서고 그 뒤를 따라가는 나는 이내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소낙비 때문에 몸을 덮었던 우비를 벗어젖혔다. 가이드의 보폭은 거침이 없다. 경사가 70도에 달하는 가파른 수직 절벽의 길도 장신 마사이족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콜린스는 거침없이 한발 또 한 발을 디디며 산을 올랐고 아들도 제법 그 뒤를 바싹 따랐다.
군에서 30킬로 행군의 말미에 완주냐 낙오냐의 갈림에서 몸부림치던 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행히 20미터쯤 의 중턱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루혼도 호수와 하늘
좀 전 루혼도 섬의 로지에서 점심을 즐길 때까진 마냥 여유만만이었다.
잔잔한 호수를 가르며 배 위에 앉았을 때 일상을 탈출한 여행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선선한 찬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상쾌함이 좋았고, 화산지대의 검고 강렬한 토양에 어우른 푸른빛 풍경이 이채로웠다. 제주에서 많이 봤던 현무암 돌로 밭을 두르고 가옥의 담을 쌓은 모양이 친근하고 정겨웠다. 호수에 비친 하늘이 푸르른데 고개를 들어 바라본 창공엔 뭉게구름 사이로 5개의 화산섬이 하나씩 솟아 있었다.
높은 봉우리를 두른 운해는 화산섬의 신비로움을 더했다.
저 숲 속에는 고릴라들이 살고 있다.
루혼도 섬의 롯지에선 대자 크기의 틸라피아를 구이로 먹었다.
조리해서 나오기까지 한 시간 이상이 걸려서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로지 내의
시설 곳곳을 탐색하러 다녔다. 적당한 허기에 잘 익은 대자 생선 구이가 나오니 가이드와 우리는
생선구이를 손으로 발라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호수에서 갓 잡아서 싱싱하고 살이 통통해서
키갈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선도와 가격이었다. 연신 감탄을 연발하며 허기를 채우고 호기롭게
또 다른 호수로 발걸음을 옮긴 상황이었다.
다시 한번 통통배에 몸을 싣고 산이라고 해야 할지 언덕이라 봐야 할지 모르는 고개를 넘으면 이웃한
부레라 호수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만 20미터도 오르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나의 체력이 이렇게 약해진 것일까? 스스로 자책하며 놀라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 무산제의 평지 고도가 3,000미터이고 5개 화산의 높이가 4,000미터이고 보면,
수직으로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도 1미터와 기압이 상승하는 중이니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헐떡거림은 당연한 이치란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백팩의 무게는 감당하기 힘겨워 콜린스에게 짐을 넘겼다. 그는 히말라야의 셀파처럼 나의 짐을 대신 매고 산길을 넘었다.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호숫가 높은 산에서 잠시 뒤 돌아본 절경을 위로삼아
힘내어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척박한 곳에도 사람들은 밭을 일구었고, 장작을 한가득 머리에 인
여인은 맨발로 이 험한 길을 다니는 중이었다.
30분 정도를 행군하고서야 부레라 호수에 당도할 수 있었다.
루혼도보다는 더 넓어 보이는 이 호수의 맞은편은 이웃나라인 우간다 땅이다.
비바람이 지나는 중이라 파도가 일었고 호숫가 주변에는 자그마한 자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낙오냐 포기냐의 버거운 순간을 견뎌낸 후라서 잠시나마 호숫가에 앉아서 바라본 풍광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미리 대절한 택시가 아니었다면 달리 교통수단이 없는 그 호수를 뒤로하고 무산제 시내의 숙소로 돌아왔다. 호수가의 숙소는 그 경치 때문에 값이 비싸서 시설면에서는 더 안락할 것 같은 도심으로 호텔을 잡았다. 호텔 선택의 우선순위는 욕조가 있느냐 없느냐였는데, 나는 드디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수 있게 되었다.
키갈리에 와서 무려 9개월 만에 뜨거운 탕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탕 안의 스팀처럼 스멀스멀 올라온다.
‘터져버릴 것 같던 심장의 압박을 견디고 나니 온몸이 노골노골하게 평온한 시간도 맞보게 되는구나.’
여행을 통해 도전하고 생각지 않았던 길을 걷게 된다.
우연이지만 필연 같은 만남도 갖는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여서 더 용기를 내본다.
부레라 호수의 건너편이 우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