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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만성온달이 Feb 02. 2024

이스탄불의 예레바탄-물에 잠긴 궁전을 방문하다

동로마시대에 건설한 지하 물저장소

이스탄불에 유적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땅 밑 지하에 대리석으로 수놓은 거대한 물저장 시설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진입하는 입구가 좁아서 큰 기대감이 없었는데 드넓은 공간을 접하니 순간적으로 입이 턱 벌어졌다. 사람 둘이 껴안아야 감싸일 것 같은 대리석 기둥이 높고 길게 솟구쳐 9미터 높이의 천장을 떠 받치는데

기둥만 무려 336개나 된다.  


“80,000톤의 물 저장 용량을 갖춘 예레바탄 저수조는 도시에서 가장 큰 지붕이 있는 저수조다.

약 10,000제곱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은 길이 140미터, 너비 70미터의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가 건설한 이 거대한 지하 수조는 물 위로 솟아오른 수많은 대리석 기둥으로 인해 대중들 사이에서 "예레바탄 사라이"(물에 잠긴 궁전)라는 별명을 얻었다.”  http://yerebatansarnici.com


규모만으로도 압도당하는데, 동로마제국인 6세기의 작품이라니 더욱 놀라게 된다. 식수의 중요성을 알고

도시주민들에게 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이런 거대한 공간을 만들었다니 그 혜안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에는 수도꼭지로 물을 잠그거나 가둬 놓는 것이 불가능했던 터라 각 가정으로 전달되는 배수로에는 늘 물이 졸졸 흘러내렸다고 한다.  지하 저수 공간에는 지금도 여전히 일정량의 물이 채워져 있었고 대리석 기둥과 테두리의 벽 사이에는 석회로 처리된 방수층이 보였다. 대리석 기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과 세월에 휩쓸린 물방울 모양의 무늬들이 눈에 띄었다. 각 기둥은 4.80m 간격을 유지하며 질서 정연하게 서서 무게를 지탱하는 중이었다. 기둥의 높이는 대략 9미터지만 9미터짜리 대리석을 바로 올린 것이 아니고 중간을 자른 것을 테트리스처럼 올린 것인데 이는 지진 등을 대비해서 돌 위에 돌을 올린 것이라고 하니 그 지혜로움에 더욱 감탄했다.


기둥이 여러 조각으로 나뉜 모습
물과 세월의 흔적이 남은 대리석
조명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저수 공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조명은 수시로 색을 달리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두운 빛은 신비로움을 선사하다가도 분홍빛으로 바뀌자 황홀한 궁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초록빛으로 바뀌고 잠시 환해졌을 때 기둥의 기초석으로 장식된 메두사의 머리를 발견했다. 로마시대의 멋진 조각술이 가장 하단부의 아랫부분을 수놓고 있는데 메두사의 머리 하나는 옆으로 뉘었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박혀있다.  



“메두사 :보석과 같이 빛나는 눈을 가졌으며 보는 것을 모두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가진, 혹은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얼굴로 하여금 본 자를 공포에 빠트려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가졌다고 전해 온다.”  – 위키백과-


옆으로 누운 메두사
거꾸로 누인 메두사


아마, 메두사와 눈을 마주치기 두려워서 옆으로 누이고 거꾸로 조각한 후 대리석으로 짓눌러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번 투어에서 만났던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직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설은

지금 우리 현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한 규모와 수준의 건축물이라며 6세기의 시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성도를 보인다고 했다. 그의 전문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문외한인 내가 봐도 놀라운 공간이었다.  

지하라 축축하고 습해서 일반카메라로는 촬영이 어려워 핸드폰으로 사진을 대신했다.

아야소피아의 건축술도 그렇고 이곳 지하공간을 궁전처럼 꾸며 놓은 혜안이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밖으로 나와 길에서 파는 군밤을 사들고 궐하네공원 쪽을 향해 걸었다.

공원의 입구에선 그 끝이 바다로 이어져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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