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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의 포착이 영정사진으로 쓰였다

하늘에서 평안하세요

by 준구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카톡이 왔다.

00 님이 돌아가셨는데, 2024년도 1월 남선교회 야유회 때 찍었던 사진 원본이 있으면 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평소 당 수치가 높으셨던 집사님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를 준비하면서 고인을 기리려다 보니 그때 촬영했던 사진이 생각났다며 동행하셨던 집사님이 내게 문자를 보냈다.

함께 야유회에 갔을 때만 해도 고인의 건강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얼굴이 좀 검게 그을리기는 했어도 아프리카에서 사업하시는 한국인 60대 남성으로서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런 호탕하신 분이셨는데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 내가 촬영한 사진으로 영정액자와 추모 영상을 만들겠다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하늘 가시는 길에 고인을 기리는 목적으로 사용한다니 개인적으로는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다 싶었다.


야유회를 가게 된 시점은 아쉽게도 르완다에서 1년 파견을 거의 마쳐 갈 무렵이었다. 주일에나 서로 얼굴을 보며 얘기 나누는 사이라 비로소 친해지나 싶었는데 헤어져야 하는 시점이었다.

야유회 장소는 나미람보에 위치한 키갈리마운틴으로, 그날 1월 6일 토요일엔 남자들만 오롯이 모임을 갖기로 했다. 아내와 자녀를 동반하지 않고 형제들끼리만 친교를 갖자는 의미에서 홀가분하게 리조트를 찾은 것이다. 남자들은 대체로 르완다에 뿌리를 내리고 가족과 함께 살며 사업하거나 NGO 직원으로 일하고 선교로 섬기는 분들이었다. 나만 단신으로 봉사하는 신분이었으니 여로모로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차량이 없으니 이동할 때면 늘 누군가의 라이딩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날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야유회에 참석한 이유도 내가 잘할 수는 것으로 섬기고 싶었다.

다들 좋은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어서 스틸과 동영상을 언제든지 찍고 서로 공유할 수 있지만 렌즈 달린 하이엔드 카메라가 포착하는 질감은 또 다른 의미일 거라 생각했다.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은 순간을 잘 잡아내서 기념하는 것이라 믿었다.

남선교회 10여 명은 리조트에서 맛난 점심과 차를 마셨고 말을 타거나 집라인을 즐기는 액티비티를 즐겼다. 잠시 쉬는 시간에 개인별로 한 컷 씩의 사진을 남겼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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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Photo_2025-02-07-16-04-12 006.jpeg 르완다 주사랑한인교회 남선교회


피사체로 사진에 찍히고 담긴다는 것은 때로 멋쩍은 일이다. 나 자신만 봐도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지 누군가 나를 찍어 줄 때면 포즈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어색해지기 일쑤다.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 보지만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아 어렵다.

그날 집사님은 빨간 모자와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내고 오셨다. 우간다를 거쳐 르완다에 정착하시면서 사업으로 다져진 구릿빛 피부가 멋져 보였다. 3~4십대의 젊은 집사님들은 사진을 찍는 포즈와 미소가 자연스러운데 그 이상 윗분들은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생을 살다가 다시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걸 더욱 선명하게 절감하는 날들이다. 서로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지구상에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 알고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인연인지 모른다.

함께 사진에 담긴 모든 분들에게는 건강과 평화가 넘쳐나길 기원한다.


나의 사진이 당신을 기리는 한 컷으로 쓰일 수 있어서 큰 영광입니다.

이재봉 집사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KakaoTalk_Photo_2025-02-07-16-04-12 001.jpeg 이재봉 성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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