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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3시간 전에 왔는데 탑승이 거부됐다

옛날 여권을 챙겨 왔다

by 준구

인천에서 해외로 출발하는 오전 9시 비행기라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거동이 빠르지 않은 장모님과 처형의 출국이라 공항까지의 라이딩을 맡았다.

최근엔 성수기가 아니더라도 3시간 전에는 공항터미널에 도착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으니 역산해서

4시 40분에는 일어나 움직여야 했다. 집에서 장모님 댁까지는 8킬로 정도 떨어져 있고 거기서 공항까지는 80킬로의 거리라 1시간은 잡아야 한다. 집을 나설 때가 05시였고 두 분을 만나서 짐을 싣고 출발한 시간은 05시 15분이었다.


지하 주차장이 협소하고 단지 1층에는 이중 주차로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가 있으니 간밤에 앞을 가로막을 수 없는 위치에 차를 세워뒀다. 평소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바짝 긴장해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5시라 어둠이 짙을 줄 알았는데 어스름은 사라지고 제법 주변이 환하다. 두 사람의 짐이라지만 이것저것 가져다 줄 물건들이 많아 커다란 케리어만 세 덩어리고, 이고 지는 짐을 하나씩 더 만들었다. 누군가 태워드리지 않는다면 콜밴을 부르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몸이라도 젊어야 짐을 끌고 공항버스를 이용할 수 있겠다.


새벽 시간이라 의정부에서 공항까지 막힘없는 드라이브를 했다.

아시아나를 이용하는 항공편이라 1 터미널의 첫 번째 A 구역에서 신속하게 짐을 내리고 카트에 실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인파가 몰리니, 경찰차는 빨리 차를 이동하라는 확성기 방송을 수시로 이어갔다. 처형은 태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빨리 일을 보라며 등을 밀었지만, 떠나는 모습을 확인해야겠다는 맘으로 주차를 하고 출국장으로 찾아갔다.

탑승 수속 줄은 길었지만 노약자 수속 라인엔 사람이 적어서 바로 탑승 수속을 밟는 중이었다.

부칠 건 부치고 기내로 가져갈 건 가져가는 작업 중인데 뭔가 길어진다 싶어서 데스크로 가봤다.


아뿔싸, 장모님이 챙겨 오신 여권이 이전에 사용하던 구여권이다.

지난번에도 잘만 사용하셨던 새 여권을 다른 곳에 두고 서랍에 차곡히 쌓여 있던 구여권을 가져오신 것이다.

처형도 화들짝 놀라서 미리 확인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 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어찌할 바를 정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나의 조언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안내 데스크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갈 건지, 출발을 연기할 건지, 임시 여권을 만들던지 선택하라며 난처해한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남미 출장이라 미국을 경유하는 항공편 수속을 밟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여권을 분실한 것이다.

데스크에서 보딩패스를 받으려는 순간에 여권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순간 우리 촬영스텝들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당황했다. 결국 그 스텝은 그날 비행기를 탈 수 없었고 분실한 여권을 바로 찾아내지 못해서 다음날 다른 사람이 대신 출장길에 올랐다. 그날 비행기 값을 날렸을뿐더러 다음날의 비행 편을 예매하느라 많은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예전 경험이 갑자기 떠올라서 다른 날의 대체 항공편으로 다시 예매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임시 여권 발급은 근무시간 시작인 오전 9시에나 가능하고, 혼자 가는 건 아닌 것 같고 당일 늦은 시간대로 옮긴다 해도 그때까지 공항에 머물며 피로에 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이미 엄마와 딸 간에 형성된 팽팽해진 신경전을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여행 보다 먼저인 것처럼 느껴졌다.


“ 내가 한번 더 확인했어야 했는데……”

“지난번엔 잘만 가져오시더니 왜 예전 걸 어디서 찾아왔냐는 둥……”

이미 버스는 지나간 건데 의미 없는 자책과 후회로 서로 생체기만을 낼 뿐이었다.

잔뜩 부풀어 올랐던 여행의 들뜸이 냉랭하고 차가운 원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내려만 드리고 발길을 돌렸다면 어쩔 뻔했을까?’


돌아오는 적막한 차 안에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겸 아침 식사나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자 제안했다.

긴장이 풀리자 허기가 찾아왔고 아침 설렁탕의 뜨거운 국물에 급 피곤함이 몰려왔다.

집에 내려드리고 잘 쉬셨다 내일 새벽 동일한 시간에 다시 뵙자고 인사드린다.

당일 비행 취소와 새 비행 스케줄 예약 비용으로 더 많은 요금이 발생됐다.

그래도 이번엔 트렁크에 실었던 짐을 다시 내렸다 올릴 필요는 없으니 그 수고는 덜은 셈이다.


다음날

어제와 동일한 루틴으로 두 분을 모셔드리고 비행기를 태워서 무사히 보내드렸다.

그게 5월 27일과 28일의 일이었고, 30일에 한번 더 가족을 해외로 보내려 새벽부터 인천공항을 나왔다.

일주일에 세 차례나 새벽에 공항으로 출근한 셈이다.

막히는 시내 출근길 보다 멀지만 빠르게 달리는 공항길이 차라리 낫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외국 출타로 선거도 못하고 해외로 나갈 뻔한 가족들은 공항에서 부재자투표까지 마치고 출발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공항에서 대선투표를 다 해본다.

한 주간에 세 번씩이나 공항을 왔다 갔다 한 나는 덕분에 이번 주말 프리해졌다.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려나?

공항 사전투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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